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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의 ‘타락’

[요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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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문제로 촉발된 전세문제가 점점 전국적으로 커지고 있다. 약 한 달 전 전세사기 구제대책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보증금 회수가 보장되지 않아 피해자들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국토부 장관은 “모든 사기 피해는 평등하다”라는 해괴한 망언을 내뱉으며 더 이상의 구제대책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이에 대해 피해자 대책위를 비롯한 여러 사회단체와 정치권에서 추가 대책과 논의를 이어가고 있어서 올해 내내 전세사기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논쟁적인 사안이 될 것이라 보인다.

그런데 전세사기로 시작된 이 사회문제가 특정 지역의 보증금 강탈사건에서 끝나지 않고 있다. 수년 전 투자를 빙자한 갭투기 열풍이 이제 역전세 폭탄으로 되돌아왔다. 사기인지 투자 실패인지 구분이 모호한 역전세난이 앞으로 1년 동안 여기저기 곳곳에서 터져 나올 것이다. ‘무자본 갭투자’라는 신조어가 만들어 낸 허상이 침몰하고 있다. 그리고 임차인, 임대인 가릴 것 없이 위태롭게 난간에 매달려 있다.

역전세 폭탄의 실체와 원인

불과 3년 전 임대차 3법이 통과될 때, 전세가격을 두고 이상한 논란이 벌어졌었다. 4년 치 임대료를 미리 당겨 받으려는 임대인들 때문에 전세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그래서 지금도 한 편에선 임대차 3법이 전세사기의 원흉인 것처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건 전세거래를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을 사고파는 것처럼 잘못 이해한 인식이다. 전세거래는 일종의 채권채무관계를 맺는 과정이다. 세입자(임차인)가 돈을 주고 집주인(임대인)은 이자 대신 2년 거주 권리를 주는 것이다. 일종의 사적 금융 관계이다. 이것은 안정적 거주를 희망하는 세입자와 이자 없이 거금을 융통할 필요성이 있는 집주인의 이해가 서로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그러므로 임대차 3법 때문에 전세가격이 올라간다는 주장은 집주인이 임대차 3법 때문에 부채를 늘리려고 한다는 주장과도 같다. 이상하다. 아무리 이자를 줄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거액의 부채를 굳이 늘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만약 세입자로부터 받은 돈으로 예금에 넣어두든, 주식 같은 다른 금융자산을 구매하든, 집주인이 뭔가 보증금에 대응하는 금융자산을 취득하고 있다고 한다면, 역전세난은 문제 될 게 없다. 금융자산을 팔아 다시 보증금을 되돌려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의 역전세난이 왜 문제가 되는가? 원인은 매우 단순하다. 집주인이 되돌려줄 돈이 애초 없기 때문이다. ‘갭투기’의 본질은 세입자 전세금을 동원하여 집을 사서 이후 집값이 오르면 되팔아 차액만큼 수익을 거두는 투기방식이다. 집값의 80%까지 전세대출이 되고 이를 100%까지 보증보험이 받쳐주니, 적은 비용으로도 세입자 전세금을 활용하여 집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전세가격이 올라도 전세대출과 보증보험이 있으니, 세입자는 오르는 전세가격을 계속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갭투기자들은 자신의 투자비용을 아끼려고 전세가격을 더욱 높게 부르고 이것이 집값과 연동되어 상호 동반상승하는 스파이럴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서 임대차 3법이 전세가격 상승을 유발한다는 편향된 비판은 집값 상승을 기대하는 갭투기꾼들의 희망 섞인 논리를 만들어주기 위한 불쏘시게일 뿐이다. 22년 임대차 3법 시행 2년이 다가오자 다시 전세가격이 폭등할 것이라는 주장이 난무했다. 하지만 전혀 그런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고, 되레 전세가격은 집값과 함께 동반 추락했다. 이 시기부터 전세사기 문제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예기치 못한 금리인상이 닥쳤기 때문이다. 애초 보증금을 되돌려줄 의사조차 없었던 투기꾼들이 결국 본인들이 벌여놓은 투기판을 감당하지 못한 채 채무불이행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처럼 역전세 폭탄의 원인은 전세대출제도와 전세보증보험의 맹점을 노린 비윤리적인 갭투기에 있다. 2017년 전까지 전세금 보증보험 사고액은 30억 원 수준이었는데, 2018년부터 매년 급격히 늘어나면서 작년 9천억 원을 넘었다. 그리고 올해 3월 작년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사고액수가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완화가 대안인가?

이처럼 전대미문의 역전세난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지자, 정부가 임대인에게 전세금을 되돌려줄 자금을 빌려주고자 대출규제 완화를 시도하려고 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에 특혜를 주는 방식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세금에 한해서만 빌릴 수 있도록 한다는 제약을 달아, 전세금 반환을 위한 대출에만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대책이다.

그런데 대출규제의 근간을 흔들면서 이미 대출한도가 꽉 찬 채무자에게 다시 빚을 지게 만드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전세반환 때문에 발생한 담보대출이 선순위로 잡혀 있는 전세물건에 다음 세입자가 제 가격에 들어올 리는 만무하다. 임대인들은 가격을 더 낮춰서 반전세나 월세로 바꿔야 한다. 그러면 그만큼 또 모자란 보증금을 채우기 위해 높은 가중금리를 물면서 대출받아야 한다. 만약 은행에서 빌린 담보대출을 후순위로 강제로 미룰 경우, 배임 등의 다른 법적 공방과 제소가 벌어질 것이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정부는 갭투기 임대인들의 대출에 대해 보증을 서 줘야만 할 것이다. 현 시장 논리에 의한 금융시스템상에서 누군가 채무불이행에 대한 리스크를 떠안아만 해결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아직도 비탄에 빠져 있다. 그러면 이들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나게 된다. 장관 스스로 모든 사기 피해는 평등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DSR 규제완화는 실효성을 거두기도 어렵고, 갭투기 임대인들에게 집을 처분하지 않고 빚으로 연명하도록 만들어 이후 더 심각한 부채위기를 키울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정부가 나서 집값 하락을 방어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면 국지적인 투기 양상은 또 벌어질 수 있고, 문제해결의 실타래는 더욱 꼬일 것이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전세가구의 절반이 역전세 상황에 노출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임대인 중에서 자산을 팔아 보증금 반환이 가능한 경우는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 모든 자산을 팔아도 보증금을 되돌려 주기 힘든 임대인이 얼마나 되는지 실태 파악이 시급히 선행돼야 한다. 가령 코로나 시기 빚이 늘어난 자영업자 중에서 임차인에게 받은 전세보증금으로 사업을 연명한 경우들도 있다. 빚을 갚기 위해 사업을 정리하면 생계수단이 없어지는 것이므로 폐업을 결정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DSR 규제완화가 적용된다면 이런 경우에 핀셋 처방처럼 제한적으로 적용돼야 할 것이다.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처럼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임차인들에게 먼저 재정투여 긴급히 시행하여 집값 관리가 아닌 주거권 보장에 더 집중해야 한다.

역전세난 속에 드러난 전세의 ‘타락’

주택은 다른 재화들처럼 거래 이후 소멸하는 재화가 아니다. 그러므로 집의 사용가치를 반영하는 전세가격은 누적적인 입주물량을 통해 그 전망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7년간 수도권에 매년 18만 호정도 이상의 매우 많은 주택공급이 이뤄졌다. 그런데 이 와중에 과도한 전세대출과 전세 보증제도가 갭투기 열풍에 오용되면서 오히려 전세가격은 더 치솟았다. 이제 그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데, 누적된 주택물량을 추산해 보건대 비상식적인 갭투기는 이제 종말을 맞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타락한 전세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전세라는 것은 인위적으로 만든 제도가 아니었다. 민간 사금융으로 시작했지만 국가가 책임져야 할 주거권을 대신 해결해 주는 착한 천사였다. 주거할 집이 필요했던 세입자가 넘쳐났던 시절엔 보증금 회수는 큰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 집 마련을 위한 필수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장기 모기지를 비롯한 주택담보대출 제도가 발전하면서, 전세는 이자 없이 추가대출을 받을 수 있는 도구로 변질했다. 높은 집값을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하향 안정화 되어야 할 전세가격이 집값을 떠받치는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공식이 성립하려면 전세가격도 높게 유지가 되어야 하므로 전세대출과 전세보증이 동반되어야 했다. 이렇게 대출과 대출이 연결되어 쌓아 올린 집값 폭등 속에서 무주택자들의 주거권을 챙겨주던 착한 전세는 보증금 강탈범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집값은 영원히 오를 수 없고, 넘쳐나는 입주물량을 감당해 줄 새로운 사람들이 항상 나타날 순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으나 역전세난에 처한 난민들에겐 매우 괴로운 일이다. 의식주에서 가장 중요한 주(住)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가 개입의 초점은 여기에 맞춰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