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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런던프라이드가 떠올랐던 환대의 순간들

[기고] 서로를 응원하던 퀴어퍼레이드 행진단과 세종호텔 해고자들의 마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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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영국에서 마가렛 대처는 산업구조의 변화로 석탄의 중요도가 낮아졌다며 영국의 탄광 노동자 수를 3분의 2로 줄였습니다. 이에 영국 각지의 탄광촌에서 노동조합은 복직을 요구하며 파업투쟁을 이어갔습니다.

같은 해 런던에서 열린 퀴어퍼레이드에서는 LGSM이라는 조직이 탄생하게 됩니다. Lesbians & Gays Support the Miners의 약칭으로, 이 탄광노동자의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성소수자가 조직된 겁니다. LGSM은 탄광노동자 투쟁을 후원할 목적으로 모금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수많은 탄광촌은 이들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후원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던 한 마을에서, 이들이 성소수자 조직인줄 모르고 후원을 승낙했습니다. 이후 성소수자 조직임이 알려지고 마을에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했지만, 성소수자들이 탄광노동자들에게 열띤 연대를 보여주며 차츰 탄광노동자들의 마음을 열고 있었습니다.

‘변태들이 광부를 지지한다’는 비난을 받고 탄광촌 안의 많은 갈등도 있었지만 LGSM의 구성원은 무너지지 않고 성소수자뿐 아니라 비성소수자의 연대를 끌어들이며 탄광노동자들의 투쟁에 열성적으로 힘을 보탰습니다. 결국 탄광노동자의 투쟁은 승리로 끝났고 1985년 런던의 퀴어퍼레이드에 ‘Miners Support the Lesbians & Gays’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수많은 탄광 노동자들이 성소수자를 지지하고자 나섰습니다.

이 이야기는 영국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런던프라이드>의 줄거리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이렇게 길게 설명한 이유는 7월 1일 세종호텔 동지들의 연대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아시다시피 7월 1일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을지로에서 개최되었고 행진은 명동을 거쳐 시청과 종로로 이어졌습니다.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있던 많은 성소수자와 그 지지자들은 이 세종호텔 옆 도로를 지나갔습니다. 그때 농성천막 앞에 세종호텔 해고자들이 “피어나라 퀴어나라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도 지지합니다” “퀴어해방 여성해방 노동해방”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환대와 응원을 보내셨습니다. 그 피켓을 본 퀴퍼 참여자들은 “세종호텔 앞을 지나갈 때 울컥했다. 감동이었다” “영화 런던프라이드가 생각난다”라며 자신의 sns에 환대의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회자되는 sns를 보면서 세종호텔 투쟁에 연대하고 있던 저도 울컥했습니다.

[출처: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조직위원회]

세종호텔 동지들의 연대는 5만여 명의 행진 참여자들이 세종호텔 동지들의 투쟁을 인식하고 다시 곱씹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소수자를 행한 연대는 결국 세종호텔 동지들의 투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모든 약자들의 연대를 꿈꾸며

<런던프라이드>의 LGSM이 노동자에게 연대했던 것처럼 만국의 노동자들이, 성소수자들이, 여성들이, 장애인들이, 어린이·청소년들이, 교차하는 모든 약자들이 서로 연대하고 단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호텔 동지들의 환대와 응원은 정말 소중했고 고마웠습니다.

[출처: 녹색당 이상현]

생각해보면 세종호텔 투쟁문화제는 그런 자리가 종종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란에서 여성들의 히잡시위로 비롯된 민주화시위에도 함께 연대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신당역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가 스토킹으로 살해당한 후에도 여성노동자들을 기리며 젠더폭력을 주제로 한 투쟁문화제를 잡기도 했습니다. 이태원참사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 때도 이태원참사를 주제로 투쟁문화제를 만들어 서로의 고통과 슬픔, 불안과 절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열었지요. 어쩌면 7월 1일 퀴어퍼레이드에서 환대하는 피켓을 들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종호텔 해고자들과 그리고 세종호텔정리해고 철회공대위에 함께 하는 다양한 연대자들이 서로 만나 교류하고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좀 더 많은 성소수자들도 이곳에 오고, 세종호텔 동지들도 다양한 투쟁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연대하며 평등한 세상을 그리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싸우다 일터인 세종호텔로 다시 돌아가길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