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리나라의 성평등 수준이 세계 100위 밖으로 밀려났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6월 20일 세계경제포럼(WEF)이 내놓은 2023년 세계 젠더 격차 보고서에 한국의 젠더 격차지수는 0.68로 전체 146개 국가 중 105위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동안도 별 다를 바는 없었지만 2019년 108위, 2020년 102위, 지난해인 2022년 99위로 수년째 상승하고 있던 것이 올해 6계단이나 하락해 105위를 기록한 것이다.
참고로 젠더 격차지수는 1에 가까울수록 성평등이 잘 이뤄져 있다는 의미이다.
세계경제포럼은 “피지와 미얀마, 한국 등은 정치권력 분배 부문에서 가장 퇴보한 국가들”이라고 꼬집기까지 했다. 정치권력에서 젠더 격차가 심하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책을 만들고 중요한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그만큼 여성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젠더 격차를 가장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노동이다.
지난 6월 22일 최저임금위원회 전원위 표결에서 부결되기는 했지만, 현재 진행 중인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사용자위원들은 숙박음식업, 편의점, 택시업종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줄곧 주장했다.
최저임금제도는 ‘국가는 모든 노동자에게 적정임금을 보장해야 한다’는 헌법 제32조에 따라 시행되는 말 그대로 최저임금, 가장 낮은 임금이다. 그런데 가장 낮은 임금보다 더 낮은 임금을 정하자니, 이건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가.
바로 대다수의 여성이다.
호텔 등 숙박업과 식당 등 음식업에서, 전국 곳곳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지금 현재도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대다수 노동자는 여성이다. 최저임금 투쟁을 하면 여성인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다수를 이루는 이유이다.
최근 독일, 호주, 영국, 스페인 등에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한 이유가 바로 이 성별 임금격차의 해소였다. 코로나 기간 여성의 일자리 및 임금의 상당한 차별이 존재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정책 수단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 27년째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심각한 나라이다.
OECD가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입국 중 항상 성별 임금격차 1위로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여성노동자의 임금이 최저임금에 맞춰진 저임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은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202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남성의 평균임금을 100으로 볼 때 여성은 64.9% 수준이고 비정규직과 단시간 노동자 비율 역시 남성보다 훨씬 크다. 이 중 월 166만 원 이하를 받는 저임금노동자의 비율 또한 남성은 9.9%인데 비해 여성은 29.3%나 된다.
성별 임금격차는 성별 임금의 차이라는 의미를 넘어 입직부터 시작되는 유무형의 성차별과 공정한 기회를 차단하는 유리천장, 돌봄으로 인한 경력단절에, 여성노동에 대한 저평가, 일터에서의 각종 성희롱과 성폭력까지 노동의 전반에 만연한 우리나라의 구조적 성차별의 실태를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다.
일례로 민주노총 금속노조 KEC지회는 20년, 30년 넘게 일한 여성노동자가 여전히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나라에서 정하는 최저임금이 그들의 월급기준이다.
성별 임금격차를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은 남녀가 일하는 직종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직무, 직종, 사업장이 같은 남녀 간 임금격차도 주요국 중 최상위권이다. 2005년 대학 진학률에서 여성이 남성을 앞섰고 이후 18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성별 임금격차가 줄어들고 있지 않은 것은 같은 일을 해도 임금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교육 수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성별격차가 왜 노동과 임금, 정치권력에서는 확연히 드러나는 것일까?
경향신문에서 13개 국회 상임위를 통해 350개 공공기관의 4년간의 채용데이터를 입수하여 분석한 바에 따르면 면접자 수에서부터 남성이 여성보다 1만 8천여 명 더 많았고 채용 결과도 남성이 여성보다 6,714명 더 채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4년간 공공기관이 진행한 1,425번의 채용 가운데 한 차례라도 간접차별(특정 집단이나 성의 채용 합격률이 다른 집단이나 성 합격률의 80% 이하일 경우)이 의심되는 채용이 있었던 기관이 216개로 전체의 77.7%에 달했다. 그나마 여러 법의 저촉을 받아 상대적으로 성별에 따른 차별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공공기관이 이 정도니, 민간기업은 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이런 채용에서 성별 격차, 성차별은 여성이 생애 가장 높게 달성할 수 있는 평균임금이 남성이 28~30세에 받는 평균임금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는 통계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여성은 30~39세에 약 209만~293만 원으로 임금 생애 최고점을 찍지만 남성의 평균임금은 28~30세에 이미 약 214만~304만 원으로 여성 임금 최고점을 넘어서고 여성의 임금은 최고점 도달 이후 계속 하락하면서 남성을 한 번도 추월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렇듯 성별 임금격차는 단순한 성차별의 문제가 아니다.
2023년 현재, 우리나라의 성별과 계층 간 문제가 점점 더 악화하고 있는 것은 채용부터 임금까지 노동에 만연한 성별 격차가 전 사회적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선진국이 고용과 임금의 불공정성을 줄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제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라고 현실감각 없는 망발을 하는 자들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너무나 견고한 구조적 성차별을 겪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감히 누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한단 말인가.
채용에서, 고용에서, 임금에서, 돌봄에서, 전 사회적으로 차별을 겪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더 크게, 더 자주, 더 많이 구조적 성차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성평등수준이 매년 세계 3위안에 있는 핀란드의 한 여성활동가는 성평등 수준이 세계 상위권인데도 왜 여성들이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꾸준히 이야기해야 바뀝니다.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쇠귀에 경 읽기 같더라도 우리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