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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보도해 형사처벌을 받은 언론인이 있습니다”

[미디어택] 저널리스트들이 피하고 싶은, 대한민국 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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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파워라는 게 있다. 해당 국가의 여권을 소지했을 때, 비자가 필요하지 않거나 간편한 입국 절차만을 거쳐 방문할 수 있는 국가가 몇 개국인지를 수치화해 순위를 매긴다고 한다. <2023년 1분기 세계 이동성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이 순위에서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여권 파워가 높아 해외여행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여권 도난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도 있다. 그런데, 궁금하다. 언론인들한테도 대한민국 여권이 그 정도로 파워가 있을까? 아마 피하고 싶은 1순위 국가의 여권이지 않을까?

지난 6월 23일, 프레스센터에서 <언론의 자유를 위한 「여권법」 위헌법률제청 신청 기자회견: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보도하여 형사처벌을 받은 언론인이 있습니다”>를 개최했다. 그 언론인은 장진영 사진작가다. 그는 이 자리에서 “(여권으로) 저널리스트에겐 갈 수 없는 곳이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말했다.

현행 「여권법」, 언론의 취재와 보도를 ‘허가’ 대상으로 규정한다

2022년 3월 5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 지 열흘째 되던 날 장진영 사진작가는 폴란드를 거쳐 우크라이나로 들어갔다. 그는 키이우와 르비우 등 현지를 취재하고 보름 만에 귀국했다. 그리고 전쟁의 기록을 시사주간지 <시사IN>과 월간지 <워커스>에 게재해 독자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가 맞닥뜨린 현실은 「여권법」 위반 혐의에 따른 입건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지난 3월 28일, 장진영 사진작가는 법원으로부터 벌금 5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외교부 장관의 허가 없이 우크라이나에 들어갔다는 이유였다.

현행 「여권법」 제17조(여권의 사용제한 등) 제1항은 ‘외교부 장관은 전쟁 등이 발생한 국가에 한해 특정 국가나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것을 중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신체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외교부 장관이 ‘취재·보도’를 비롯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허가’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붙어 있긴 하다. 취재·보도를 명확히 ‘허가대상’으로 두고 있는 법률 조항이다.


이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졌고, 하루가 멀다고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학살 소식이 전해지던 때였다. 전 세계 시민들의 이목이 쏠린 그곳, 그 시각 언론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우크라이나였다. 그런데 그 현장에 있던 언론인이 형사처벌을 받게 된 것이다. 저널리즘이 필요한 곳에 저널리스트가 들어갈 수 없게 만드는 「여권법」은 문제가 있었다. 언론연대가 이 사안에 주목했던 이유다.

‘분쟁지역 전문’ 김영미 PD는 이 「여권법」의 문제를 피부로 느끼고 있던 언론인 중 한 명이다. 김영미 PD는 사건 초기 언론연대와 만난 자리에서 “장진영 사진작가가 여권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것은 우리나라에도 손해”라면서 그동안 겪었던 고충과 예측되는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줬다.

“이라크도 그렇고 아프가니스탄도 그렇고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되면 한 번도 풀린 적이 없다. 소말리아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예멘 그리고 이제는 우크라이나까지. 「여권법」 상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되면서 취재하다가 시리아에서 나온 적도 있다. 그래서 벌어진 상황이 뭐냐면, 우리나라가 (시리아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독립적인 채널이 하나도 없다는 거다…(중략)…앞으로 더 많은 국가들이 계속해서 여행금지 국가가 된다면 어떨까. 우리나라가 세계 뉴스를 따라잡지 못하게 될 거다. 이렇게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취재를 위한 정보망 그리고 전문 취재진 등의 모든 인프라가 끝나기 때문이다.”_김영미 PD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국가 간 정보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이다. 김영미 PD는 “그곳에 우리의 사진작가를 비롯한 취재진이 없다면, 서구 언론보도를 받아쓰기 하게 되는 것”이라면서 “취재가 불허되면,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게 된다. 이것만 해도 우리 사회의 엄청난 손실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보에 뒤처질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게 현행 「여권법」이라는 지적이다. 그로 인해 정보 싸움에서 한국의 시각과 관점이 실종된다는 얘기다.

문제는 그 결과다. 한국이 국제사회와 동떨어진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된다. 만일,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누군가 잘못된 정보를 흘리고 한국이 그에 휩쓸리기라도 하면 더욱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장진영 사진작가의 「여권법」 위반에 따른 기소 대응 방향은 그날 정해졌다.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그것. 그래, 한번 해 보는 거야!

「여권법」 제17조,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시작이다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번 공익소송을 맡아준 김보라미 변호사(법률사무소 디케)의 요청에 따라, 우크라이나로 들어간 해외 언론인들은 제각각 자국으로부터 어떠한 규제를 받고 있는지 조사하던 때였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곧바로 김영미 PD한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답이 돌아왔다. “언론연대가 못 찾는 게 아니라, 그런 자료는 없어요.”

해외에는 언론인들이 전쟁 등 취재를 위해 국경을 넘나들 때 어떠한 규제도 없다고 했다. 오히려 반대의 사례들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유럽평의회를 비롯한 국제 표준에서 도출된 ‘분쟁 및 침략 상황에서의 저널리즘’ 원칙에 따르면, 분쟁 지역 접근을 포함해 언론인에게 이동의 자유와 정보에 대한 접근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비자를 비롯한 필요한 서류 발급과 전문 장비의 반·출입을 용이하게 한다고도 적시돼 있었다. 해외의 경우, 언론인들의 취재를 폭넓게 보장하고 정부는 그들의 신변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었다.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국경 자체를 걸어 잠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전쟁 초반 외교부는 ‘언론사 소속 직원(외교부 출입 언론사에 한정)’만을 대상으로 ‘▲체르니우치(방문지역) ▲3일 이내(방문기간) ▲4인 이내(방문인원)’의 조건을 달아 우크라이나 취재를 허가했다. 이 경우에도 활동계획서(경호 및 숙소 계약기간 필수 기재)를 제출하도록 했다. KBS 유원중 기자가 <[특파원 리포트] 우크라이나 취재기1 ‘2박 3일’의 전쟁 취재와 외교부의 후진적 언론관>을 통해 “전쟁터 2박3일은 취재인가, 견학인가”라며 비판한 이유다.

외교부가 허가할 때도 ‘차별’이 존재했다. 언론사 소속이 아닌 독립PD를 비롯한 프리랜서 언론인과 종군 사진기자들은 ‘신청자격’도 주어지지 않았던 셈이다. 프리랜서 장진영 사진작가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또한 “모든 미디어 전문가에게 차별 없이 인가를 부여해야 한다”는 국제기준과 맞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유별남 사진작가는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되면 사진작가들은 그냥 포기한다”고 토로했다. 해당 국가에 들어가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 자체를 포기하거나, 정부의 지침을 어기고 다녀와 벌금을 내는 걸 선택하거나. 장진영 사진작가 또한 ‘프리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여권법」 상의 취재·보도의 허가제 폐지가 1차적인 과제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숙제를 위한 새로운 논의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날 모인 27개 단체의 면면이 중요한 이유다. 국제적으로도 우리나라의 「여권법」과 장진영 사진작가 사건에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기자연맹(IFJ)은 “장진영 작가의 근거 없는 형사처벌에 대한 문제 제기를 지지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국제언론인협회(IPI)는 “한국은 분쟁 지역에서 보도하는 언론인에 대한 제한을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자유를 위한 싸움은 이렇게 시작됐다.

*덧)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 장진영 사진작가님의 용기에 감사드린다.

  장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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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언론연대, 기자회견 공동주최 및 공동대응 참여 요청서 전문
- Journalism in situations of conflict and aggression
- [특파원 리포트] 우크라이나 취재기1 ‘2박 3일’의 전쟁 취재와 외교부의 후진적 언론관 - 김고은, <우크라이나 전쟁 취재 형사처벌...여권법 위헌 여부 묻는다>, 기자협회보, 2023.06.23
- 금준경, <우크라이나 전쟁 취재 형사처벌이라니...위헌법률심판 나선다>, 미디어오늘, 2023.06.23.
- IFJ(International Federation of Journalists, 국제기자연맹),
- IPI (International Press Institute, 국제언론인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