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막혔던 하늘길이 뚫렸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들은 3년 만에 고대하던 현지 활동을 재개했다. 우리는 서안지구 최남단의 마을 마사페르 야타로 갔다. 1,150여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강제 이주 위기에 처한 마을이다. 우리나라 기업 ‘현대’ 로고가 적힌 굴착기는 이곳에서 이스라엘 당국의 과업을 수행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을 부수고 있다. 사실 이곳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전 지역을 통틀어 ‘현대’ 굴착기를 이용한 강제 철거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4월, 총 20일간의 일정으로 우리는 HD현대건설기계의 굴착기가 부순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의 터전을 보고 왔다.


비행깃값이 유독 저렴했던 이유를 늦은 밤 텔아비브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슬슬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착한 밤은 마침 유대인 유월절 전야였기에 저녁부터 이미 휴일이 시작됐고, 대중 교통수단은 물론 일반 택시도 평소 가격표로 운행하지 않기에 웃돈을 얹어 이동해야 하는 상황. 1인당 220셰켈(약 8만 원)을 내고 첫 숙소가 있는 하이파로 갔다. 다음날 주변 도시 아카에서 현지 활동가를 만나기로 한 참이었다. 특히, 두 도시 하이파와 아카는 이스라엘이 “유대인과 아랍인이 ‘공존’하는” 모범사례라 자랑한다. 초행이라면 서안지구로 가기 전 이 도시의 분위기도 찬찬히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슈가 낯선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팔레스타인이 어디 있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땅의 ‘경계’는 어디인가’다. 내 경우에는, 하이파나 아카 같은 도시에 와서 빠르게 이해됐다. 구글을 비롯해 온 세상이 ‘이스라엘’이라고 지도에 표시해 두거나 일컫는 그 땅덩이, 그게 다 팔레스타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점점 더 쥐가 갉아 먹은 스위스치즈처럼 변해가는 땅이 그나마 국제법적으로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영토’라고 퉁쳐서 불리는 서안지구, 가자지구다. 여기에 이스라엘이 1980년 불법적으로 영토를 병합해 아무런 합법적 통치권을 갖고 있지 않은 예루살렘의 동쪽 부분, 동예루살렘까지가 국제사회가 말하는 지금의 팔레스타인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팔레스타인인들은 세상이 ‘이스라엘’이라 부르는 땅을 1948년에 빼앗긴 팔레스타인, 즉 ‘48년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에 군사점령을 당했기 때문에 ‘67년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48년 팔레스타인과 67년 팔레스타인 모두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곳이다. 이스라엘의 구조적 차별과 군사점령 하에서, 내부 실향민이라 불리건 난민이라 불리건 이곳에서 터전을 일구고 살아간다. 중요한 건 원래 집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반가운 점령 - 아카

하이파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은빛 모래사장 해변이 있는 휴양관광지 아카(Akka). 예루살렘이 해변을 끼고 있는 느낌 같달까?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의 주요 구성원이던 혁명가이자 작가 가산 카나파니의 고향이자 팔연대(팔레스타인평화연대) 멤버들이 후에 팔레스타인이 해방되면 은퇴하고 살고 싶은 도시 1순위로 꼽을 만큼 아름다운 도시다. 그러나 아카의 현재는 이스라엘 내 가장 뜨거운 젠트리피케이션 사례다.


오토만(오스만) 시대의 벽과 천장 페인팅,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전쟁을 겪어낸 돌벽을 갖춘 부티크 호텔이 2010년 이후 여러 채 생겨나고, 팔레스타인의 공예나 전통 음식을 이스라엘 것으로 둔갑시켜 소개하는 크고 작은 소품샵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가운데, 이곳에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은 각종 규제와 감당할 수 없는 임대료로 동네를 떠나고 있다.

이는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경제적 격차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보일 수 있다. 비교적 낙후된 지역이 활성화하면서 부동산 개발업자 등 외부인과 돈이 유입되고, 결국 땅값이 상승해 오래 살아오던 원주민이 밀려나는 범세계적 현상 말이다.

하지만 이곳은 이스라엘 관광청 산하의 정부 기관 자격인 부동산 개발회사 ‘올드 아카 개발 회사(Old Akko Developement Company)’이 적극 개입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 개발사는 개인 유대인 투자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아랍식 ‘궁전’ 등을 팔아넘겨 럭셔리 호텔과 레스토랑, 부티크 숍, 아파트 주상복합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중개한다. 2001년 유네스코가 아카 올드시티를 세계 유산 도시로 선언하고 2007년 본격 승인한 이후, 정부 주도의 개발 열풍이 불었다. ‘보존’이라는 명목하에 개발도 하고 추방도 시킬 명분이 생겼다.

작은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못을 박아두거나 자물쇠로 잠긴 팔레스타인 가옥들 수백 채가 보인다. 세계 유산이라며 보존을 이유로 집의 개조나 재건축을 금지해서 결국 떠나거나 거주할 수 없게 된 공간들이다. 가족 구성원이 늘어도 증축할 수 없고, 보존양식 규정에 맞춰 집수리를 하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건들 수 없다. 용도 변경도 어려운데 과거에 크래프트숍 등 문화체험 공간이었다면 다른 용도로 변경해 사용할 수 없다. 여기에 최근 10년간 이 지역에 새롭게 유입된 인구세력들도 가세했다. 서안지구 불법 정착촌에 사는 시온주의 성향의 극우 유대 정착민들이다. 이들은 하이파, 아카와 같은 이스라엘 내 ‘공존의 도시’에 아랍 공동체가 인구의 다수가 되는 것을 저지한다며 아카에서 공격적으로 집을 구입하고 있다. 불법 정착촌과 두 집 살림 오가며 폭력적인 난동을 피우기도 한다.

돈 없어 쫓겨나는 팔레스타인인과 이곳이 원래 삶이 터전이 아닌 부유한 유대인 부동산 개발자라는 구조는 그 자체만으로도 젠트리피케이션의 구조에 맞아떨어지지만 여기에 이스라엘 당국은 도시의 탈아랍화, 유대화라는 큰 그림을 얹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우기’는 48년 팔레스타인이건 서안지구건 여전히 디폴트로 하루하루 자행되고 있다.

편리하고 친절해질 게 아니라 사라져야 할 것 - 칼란디아 검문소

입국 3일 차, 하이파와 아카에서 동예루살렘을 거쳐 라말라로 이동했다. 드디어 본격 서안지구다. 이스라엘 도시에서 본격 팔레스타인 도시로 오가는 길목이기에 물론 군사 검문소를 지나야 한다. 서안지구 내 가장 큰 규모인 깔란디야 검문소다.

보통 동예루살렘에서 대중교통수단을 타면 검문소 도착 전 승객을 내려준다. 사람들은 각자 걸어서 검문소를 통과한 뒤 다시 버스나 세르비스(8인승 합승택시)를 잡아서 이동을 이어간다.

거친 돌자갈이 깔린 허허벌판에 콘크리트벽 조각이 널브러져 있는 공터를 지나 회전문과 철조망을 따라 걸어가면 초소 같은 공간의 검문소가 보인다. 이번에는 전에는 못 보던 구조물이 생겼다. 보행자 검문소에 도달하기 위해 차량 통행 검문소 위로 생긴 흉물스런 구름다리를 건너야 하는 것이다. 바로 직진하던 거리를 횡단보도 없이 육교만 있는 6차선 도로를 건너듯 오르락내리락 이동해야 한다. 캐리어 짐이 있는 나도 이렇게 짜증 나는데, 짐도 많고 챙길 가족도 많고 거동이 불편하거나 바퀴 달린 탈 것을 이용하는 이들은 과연 이렇게 구불구불 가파르고 복잡한 콘크리트 경사로를 어떻게 매일 걸어 일터에 가고 학교에 갈 수 있을까 싶었다.

아무런 체계 없는 주먹구구식 검문소에선 겪게 되는 일도 다양하다. 이날 내가 속해 걸어가던 무리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갑자기 차량이 지나가는 차량 통행검문소 차단기 바를 올려주고 이쪽으로 지나가라고 해서 우르르 그곳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원래 차량이 다니는 레인을 걸어서 통과하면 군인은 경고하고 총격까지 가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2020년 8월에 이곳을 지나던 60대 청각장애인 남성이 이스라엘 군인에게 다리에 총을 맞는 일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저쪽 다른 한 무리는 원래대로 검문소에 줄을 서서 금속탐지기에 소지품을 통과시키고 신분증을 보여주는 절차를 거쳐 통과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2019년 중반 대대적인 검문소 리뉴얼이 있었다.⁽¹⁾ 생체인식 출입허가증을 갖다 대는 ‘첨단’ 방식의 자동게이트로 바뀌는 과정에서 이런 이동로도 생긴 거다. 이스라엘은 자동 게이트 설치와 관련해, 당시 원래 1~2시간 걸리던 검문 절차가 10분으로 단축돼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로) 일하러 오가기 편리해졌다고 언론에 선전했다. 검문소 현황을 중개하는 초대형 TV도 검문소 대기실에 달고, 개찰구를 지날 때는 페이루즈 같은 아랍 인기가수들의 음악도 흐른다고. 라마단 기간에는 라마단 장식은 물론 함께 ‘라마단 카림’이라는 축하 인사 음성도 나온다고 말이다.

2001년 임시로 설립된 이곳은 결코 공항도 톨게이트도 아니다. 이스라엘은 마치 일상적인 톨게이트나 공항 입구처럼 꾸며놓고 꿋꿋이 분기점을 일컫는 ‘크로싱’이라고 부른다. ‘환영합니다’라고 써있는 간판도 언뜻 보면 정식 ‘국경’ 검문소 같다. 하지만 깔란디아 검문소는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불법으로 간주한 분리장벽의 일부일 뿐이다. 서안지구에서 동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 도시로 허가를 받고 일하러 가거나 기도하러 가거나 병원, 친지 방문 등을 가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겐 과연 내가 오늘 이곳을 지나갈 수 있을지 운명을 맡기는 심판대다. 더 아름답고 편리하게 만들 게 아니라, 들어내야 하는 곳을 이토록 온갖 기만과 조롱과 새로운 기술 실험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니.

하지만 검문소를 통과한 장벽 건너편에는 또다시 왁자지껄한 삶이 펼쳐진다. 이드 알피트르(Eid al-Fitr)를 앞둔 들뜬 분위기가 역력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헬륨 풍선, 솜사탕, 알록달록 젤리를 팔고, 갓 구운 빵이나 아몬드 열매 등을 쌓은 카트가 즐비하다. ‘10셰켈’ 가격을 뜻하는 ‘아쉐라~(아랍어로 10을 의미)’ 소리가 묘한 안도감을 준다. 이스라엘 도시에서 25셰켈(약 9천 원)씩 하던 팔라펠 샌드위치가 더 푸짐하면서도 1/3 값이 되는 곳, 길거리 수레에서 달디단 가자지구산 딸기를 파는 곳, ‘웰컴웰컴’부터 간간이 ‘언니, 안냐세요’까지 들리는 곳. 라말라에서 우리는 몇 개의 미팅과 인터뷰를 하고, 팔레스타인 통신사 유심도 사고, 출금 수수료가 가장 싼 아랍뱅크 ATM에서 현금도 뽑으면서 본격 마사페르 야타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마사페르 야타 주민들의 증언 - “너네 기계가”

이번 활동의 주요 목적지인 마사페르 야타는 20여 개 마을을 아우르는 지역으로, 사우스 헤브론의 끝부분이자, 이스라엘 도시가 되어버린 나깝(네게브) 사막의 북쪽에 있다. 317번 우회도로와 ‘그린라인’이라고 부르는 1949년 휴전선 사이, 서안지구의 60%가 그렇듯 완전한 이스라엘 군정 아래 있는 C지역⁽²⁾에 속한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깝의 도시 베르셰바 및 주변 사막에서 쫓겨난 베두인들이다. 1970년 말, 1980년 초 불법 정착촌이 대거 들어섰고 이스라엘은 마을 여기저기를 문화유적지 혹은 군사훈련지로 지정해 이를 명분 삼아 그곳에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을 40년 넘게 강제 이주시키고 있다. 2022년 5월, 이스라엘 고등법원이 이곳 주민들이 낸 항소를 기각하면서 8개 마을 1,150명의 주민들이 언제라도 집이 철거되고 쫓겨날 위험에 처해 국제적으로 크게 이슈가 됐다. 파괴되는 이곳의 소식을 알리는 보도사진에 ‘HD현대건설기계’ 로고를 박은 굴착기가 주로 등장하기에 우리가 안 올 수 없었다.

우리는 마사페르 야타의 초입 마을 앗투아니(At-Tuwani)에서 묵었다. 어디서나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불법 정착촌 특유의 반듯한 오렌지색 타일의 지붕이 보인다. ‘마온’ 정착촌, ‘하바트 마온’ 정착촌은 앗투아니의 어느 지점과는 몇백 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을 정도로 매우 가깝다. 2017년 설립된 마을청년활동가단체 ‘셰밥 수무드’⁽³⁾를 이끄는 리더인 사미 후라이니네 가족은 아예 집 옆에 활동가용 숙소를 지어놓았다. 물론 이 또한 철거명령을 받았지만 말이다.⁽⁴⁾


맏이인 사미부터 개구쟁이 네 살배기 막내 사베르까지 8명의 자식과 부모로 이뤄진 사미네 가족은 기본적으로 농업에 종사하지만 대대적으로 이 지역을 대표하는 활동가 집안이다. 50대의 농부이자 활동가인 아버지 하페즈 후라이니는 젊은 시절부터 장벽 건설 반대 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다. 지난 2022년 7월, 코로나로 병세가 악화해 9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신 사미의 할머니인 파티마 후라이니 또한, 이스라엘 건국 즉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 생존자로서 1950년대부터 앗투아니에 살며 저항을 이어 나갔다. 파티마 후라이니는 1980년대 유대민족기금(Jewish National Fund)이 마을에 소나무를 심어 불법 정착촌을 확장하려고 할 때, 팔레스타인 토종 나무로 교체해 심는 운동을 주도하는 등 지역 대중저항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다. 우리는 종종 숙소 뒤편 밭과 돌산에 올라 이들의 유산과 발자취가 베어 있는 온 마을을 내려다보며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서 인터뷰도 하고 회의도 했다.

마사페르 야타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뉴스에서 사진과 기사 속 글자로만 접한 마을을 돌아다니고 가옥파괴 피해자들을 인터뷰했다. 이스라엘 군대는 마을 우물부터 간이 화장실, 임시 동굴, 학교, 집을 부쉈다. 무너진 곳에서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대놓고 ‘합법적인’ 집행력을 행사하는 이스라엘 군대뿐 아니라 군대의 보호 아래 온갖 공격을 일삼는 불법 정착민의 폭력을 상시 마주하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강성유대민족주의 정착민들은 총으로 무장한 채, 불법 정착촌과 팔레스타인 마을 사이에 불법 초소까지 세워 정주하고 양치는 팔레스타인 농부들을 위협하고 가축을 도살하거나 곡물창고를 습격해 식량을 훼손하고 야밤엔 각종 시설에 방화를 저지른다. 다니던 학교가 철거당해 매일 3km 이상을 걸어 다른 마을로 공부하러 다니는 어린아이들의 등굣길도 위협한다. 우리가 오기 한 달 전쯤, 60대의 미국 여성 평화활동가에게 불법 정착민이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두개골이 함몰되는 사건도 있었다.


가옥철거를 당했거나 목격한 인터뷰이들에게 공통질문으로 철거 정황을 물으면서 HD현대건설기계의 굴착기를 본 적이 있는지, HD현대의 굴착기가 마을을 부술 때 기분이 어땠는지, 최철곤 CEO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를 물었다.

모든 인터뷰는 우리를 안내한 사미가 아랍어를 영어로 통역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인터뷰 도중 현대를 여러 번 언급하다 보니, 종종 사미는 “그때 이제 너네 기계가”, “너네 기계 두 대가 군대랑 같이 왔대” 하는 식으로 통역했다. 기분이 묘했다. 졸지에 HD현대의 공룡 같은 굴착기와 크롤러가 ‘우리’ 기계가 되어버렸다. 집을 하나 철거하는 데에 최소 서너 시간이 걸린다. 군인들 40여 명이 기계 두 대를 앞세워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새벽에 마을에 온다. 철거가 진행되는 몇 시간 동안 쫓겨난 주민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다. 울며불며 달려들거나 그 광경을 망연자실 바라보거나, 모든 광경을 비디오로 촬영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거나…. 그 모든 선택지에 HD현대 로고가 가장 또렷하게 보인다.

결코 지워지지 않을 이름들

우리가 머물던 동안 매일 아침 정확히 8시 20분마다 이스라엘 경찰차가 온 마을을 도는 걸 봤다. 후에 이 지역에 배치됐던 이스라엘 군인들이 훗날 쓴 증언집을 우연히 읽었는데, 정기적인 순찰의 목표는 하나였다고, 이스라엘군의 존재를 날마다 주민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스라엘 건국일인 5월 15일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대재앙의 날, 나크바다. 지난 5월 15일, 뉴욕 유엔 본부에서는 나크바 7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행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인종 청소로 사라진 팔레스타인 마을들의 원래 지명을 전면 대형 스크린에 띄운 퍼포먼스였다. 육중한 멜로디의 바이올린 협주에 맞춰 천천히 영화 말미의 크레딧처럼 오래도록 영어와 아랍어로 적힌 마을 이름이 흘렀다.⁽⁵⁾

그렇다. 우리가 날마다 상기해야 할 것은 마을을 점령하는 이스라엘 군인의 존재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아무리 부수고 또 부쉈지만 잊히지 않고 지워지지 않을 팔레스타인 마을의 이름일 것이다. 이프타르⁽⁶⁾마다 정성껏 팔레스타인 집밥을 요리해 내어주던 사미의 어머니 아이샨 씨의 환대일 것이다. 하페즈 씨가 포도나무 모종을 심을 수 있도록 반나절을 둘러앉아 잡초를 뽑고 새참을 먹던 그 아침일 것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늦은 밤 사미와 동네 청년들과 아르길래(물담배)를 나눠 피며 나누었던 어릴 적 이야기, 차 안에서 스피커를 최대치로 올리고 함께 목청껏 따라 부르던 서로가 좋아하는 노래들, 그것들뿐임을 우리 활동가들은 이번 활동으로 한 번 더 확신하게 됐다.

<각주>
(1) https://www.aljazeera.com/features/2019/6/4/palestinians-wary-of-israels-checkpoint-changes
(2) 오슬로평화협정에 따라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할하는 A구역,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군이 공동 관할하는 B구역, 이스라엘군이 단독 관할하는 C구역으로 구분했으며 각각 18%, 22%, 60%를 차지한다.
(3) 영어로 Youth of Smud, 흔들림없는 청년들이라는 의미다.
(4) “이스라엘의 전쟁범죄-HD현대가 답할 시간”, 《워커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7127&page=1
(5) https://www.instagram.com/reel/CsgHVDvvXqv/?igshid=NTc4MTIwNjQ2YQ==
(6) 라마단 기간에 무슬림들이 일몰 직후 금식을 마치고 먹는 첫 번째 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