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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한 채로 살아남을 것입니다

[이슈]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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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는 구조화된 위험들의 교차점에 자리한다. … 피해자는 자신의 신체와 삶에 새겨진 폭력의 흔적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사회적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피해의 ‘위치’에 정박된다. 따라서 피해자가 재난이 발생한 과거에 붙들려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는 취약함이 아니다. 어떤 재난참사 피해자들은 스스로가 과거의 사건에 자신을 묶어 두면서 그러한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집단적인 노력을 촉구한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재난참사에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지속적인 증언이자 항변인 셈이다.”(1)

이태원 참사 발생 200일을 하루 앞둔 5월 15일 오후 2시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조사 보고서-10.29 이태원 참사, 인권으로 다시 쓰고 존엄으로 기억하다> 보고회가 개최됐다.

들어야 할 말들은 차고 넘쳤다. 작년 12월부터 10개 인권단체 활동가 13명이 희생자 유가족과 지인, 생존자, 상인 등 지역주민, 구조자 26명을 만났다. 진실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에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덕분에 166쪽 분량의 보고서는 이들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58명의 삶이 사라졌던 2022년 10월 29일.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조사단>은 “참사의 시작은 그날 밤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수많은 재난참사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이 10.29 이태원 참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0.29 이태원 참사는 어쩌다 일어난 불운이 아니다.

피해자들은 참사 발생과 대응 과정에서 생명과 안전·존엄·진실·필요한 지원·애도와 연대의 권리를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빼앗겼다. 결국 이 과정에서 잃지 말아야 할 소중한 삶, 159번째 희생자마저 떠나보냈다. 이것이 인권실태조사의 결론이다. 재난과 참사가 일상이 되는 시대, 생명·존엄·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10월 29일을 경험한 우리는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보고서에 담긴 10.29 이태원 참사에서 빼앗긴 권리의 목록을 피해자의 목소리로 정리했다. 우리가 복원해야 할 권리의 목록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기억한 채로 살아남을 것이라는 생존자의 목소리도 함께 전한다.

《워커스》는 우리 사회의 집단적인 노력을 촉구하는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의 증언이자 항변을 담았다.

① 10.29 이태원 참사, 빼앗긴 권리의 목록들
②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한 채로 살아남을 것입니다


(1) 전주희, ‘생명안전’, 질라라비 237호(2023.5.)

저는 서울 시민 이주현입니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의 생존자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생존자 그리고 피해자.
혹은 살아남은 사람.
이 단어들은 과연 누굴 지칭하는 것일까요.
지옥에서 숨이 붙은 채로 돌아온 사람들만을 뜻하는 것일까요?
죽어가는 수십의 얼굴들, 살려달라 내뻗는 수백의 손들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닌 건가요.
일 년 중 가장 북적이는 성수기를 기대하고 준비했지만,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닌가요.
밖에 어떤 상황이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어딘가에 갇혀있다 죽은 사람들과 갑작스레 마주해 버린 이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닌가요.
(가족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시신을 급히 수습해야만 했던 이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닌 건가요.)
이 참사 소식을 전해 듣고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닌가요.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참사로 인해 고통받아야 했는지 모릅니다.
그저 예년과 같은 안전행정만 유지되었어도 이 모든 피해와 상실은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뚜렷한 피해를 겪고 있음에도, 피해자로 분류되고 인정받은 이들은 저 많은 사람들 중 극히 일부입니다.
제 지인들 또한 압사 위기 속에 있었음에도 도중에 구조되어 몸에 상처가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로 분류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는 그때 당시부터 200일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여전한 데도요.
이렇게 외면당한 피해자들이 많은 것은 이 참사의 책임자들이 그 책임과 질타를 회피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피해의 숫자를 줄이는 데에만 급급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같은 이유로 피해 규모를 조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참사의 모든 것을 급히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참사로부터 고작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1년은커녕 200일도 되지 않았습니다. 후유증은 물론이고 아직 치료도 끝내지 못한 피해자들이 남아있습니다.
국정조사에서의 진실 규명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앉아있는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았고, 지금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책임자와 주최자가 따로 없을수록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일진대, 그 책임을 외면하고만 있습니다.
책임을 가진 자리에 앉아 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또 어떻게 이런 참사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제대로 된 조사를 해야 함이 옳을 텐데, 오히려 그 자리에 앉아 회피와 무시 그리고 조롱으로 피해자들을 짓눌러가며 권력을 자랑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수많은 피해자들 모두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이 나라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는 시민이고 국민입니다.
그러나 다수의 책임자들은 이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다 못해 조롱합니다.
이에 일부 대중들은 피해자들을 비난하고 혐오하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사회입니까?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공공안전과 올바른 행정을 잃어버린 시민과 국민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전 거의 맨 밑에 깔려 있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나는 왜 살았을까,
라는 의문을 떠올려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에 대해 이 한마디 외에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159명은 왜 죽어야 했습니까?

제가 운이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럼 159명은 그저 운이 나빠 그렇게 되어야만 했던 것입니까?
이 참사가 그저 운으로 생사가 갈려야만 했던 일이었습니까?
당연한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목숨을 잃은 것을 그저 운이 나빴다 라고만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사람이 많은 곳에 왜 가냐고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서울이란 도시 속에서 그런 비슷한 상황을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겪어 왔습니다.

출퇴근길의 지옥철, 수십만 명의 시위 행렬, 각종 페스티벌, 스탠딩콘서트, 불꽃축제 같은 서울시 내의 행사 때마다 보이는 바글바글한 모습들….
특히나 코로나 이전의 그것들은 더더욱 활발했지만 우린 그런 일상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본 적 없습니다.
공공안전의 마지노선이 지켜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많아서 참사가 일어났다는 말은 도저히 성립되지 않습니다.
국가의 안전행정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요?

그보다 더한 인파들도 우리는 겪어봤습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참사는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날은 어째서 예년과 같지 않았는지, 왜 다른 곳들과 같지 않았는지,
그 누구도 확실히 조사하지 않고 알려주지 않지만, 그것이 안전 부재의 원인이고 그 참사의 원인일 것입니다.

참사 직후 입원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한 책임자가 병원에 찾아오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전했습니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때였습니다. 거절했습니다. 그분이 그 당시나 지금이나 해야 할 것은, 피해자 한 명에게 건네는 사과가 아니라, 이 모든 피해자들에게 하는 공식적인 사과일 것입니다. 또 그분 본인을 포함해 이 참사에 대한 책임을 가진 이들이 그것을 오롯이 지도록 하며, 피해자들의 회복을 돕는 것은 물론 대책 방안까지도 정확히 마련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국가와 도시에 대해 신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에게도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전체 사회에 대한 믿음을 잃는 날은 없을 것입니다.
사회는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은 공감과 이해를 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대다수는 그런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국엔 그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사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책임자와 피해자, 이 사회의 모두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한 채로 살아남을 것입니다.
일어난 일은 사라질 수 없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당신 곁에 존재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여기 함께 있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첫 주말인 2022년 11월 5일, 청년들이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국가에 묻기 위해 서울 용산 이태원 및 대통령실 인근에서 추모 행진을 벌였다. [출처: 워커스 자료사진]

  서울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추모공간이 있었다. 가득 쌓인 국화꽃 등 추모 기록물들. [출처: 워커스 자료사진]
덧붙이는 말

이 글은 지난 5월 15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진행된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으로 다시쓰고 존엄으로 기억하다> 보고회 ‘생존자 발언’으로, 발표자의 허락을 받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