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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엔 주 69시간 노동, 다른 한쪽엔 주 15시간미만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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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0시간제’가 원칙이다

용어부터 정리하자. 대한민국의 근로시간 관련 제도는 ‘주 40시간제’뿐이다. 제도는 원칙을 의미한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50조 제1항은 “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주 40시간제’는 2003년 9월 15일 개정근로기준법이 공포되고 2004년 7월 1일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돼 현재에 이르렀다. 이미 20년이 된 제도다. 기존 주 40시간 노동 원칙에 연장근로를 1주일에 12시간까지 허용하겠다는 것(현행 근로기준법 제53조 제1항)을 항간에서는 ‘주 52시간제’라 표현하고 있으나, 틀린 말이다.

‘주 69시간’은 무슨 소린가

그런데 지난 3월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 발표 이후 주 69시간제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한마디로 1일 24시간 중 근로일과 근로일간 연속 휴게시간 11시간을 제외한 13시간에서 다시 1.5시간의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남은 11.5시간을 6일 동안 근로시킬 경우 나오는 시간이 주 69시간이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53조 제1항에서 금지하고 있는 연장근로 1주 12시간 한도를 깨겠다는 것이다.

주 52시간, 주 60시간, 주 64시간, 주 68시간, 주 69시간, 주 80.5시간, 주 90.5시간…. 결국 주 120시간까지? 지금 세간에는 원칙인 주 40시간제만 빼고 갖가지 이상한 숫자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불과 1년 전 대선 때 ‘주 4일 근무’나 ‘주 35시간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게 무슨 꼴인가.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이다.


사실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 늘리기, 그러니까 노동자들의 여가시간을 뺏는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3년부터 ‘주40시간제’ 원칙에 연장근로 한도가 ‘주 12시간’이었으나, 고용노동부는 무급휴무일과 유급휴일(가령 토요일과 일요일)은 ‘1주일’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놀라운 발상으로 연장근로 12시간을 포함한 ‘주52시간’에 다시 ‘토요일과 일요일 각 1일 8시간(=16시간)’을 합산하여 ‘주 68시간’을 가능케 하였다.

이에 2018년 3월 20일 개정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7호에서 “‘1주’란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라는 민망한 규정(?)을 공포하며 이른바 주52시간 노동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때부터 “주 52시간제”라는 괴상한 용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며 혼란을 가중시켰지만, 고용노동부의 편법적 주 68시간 노동 허용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물론 이때도 경영계의 반발을 수용하여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유연근로시간제의 문턱을 크게 낮춰주는 입법이 추가로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일반 근로시간제를 다시 주 69시간 또는 주 60시간으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대신 ‘집중적으로 일하고 몰아서 쉴 수 있게 해주겠다’며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연차휴가 사용률도 채 50%가 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할 때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같은 것이 사업장에서 실현될 거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정부가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에서 사용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니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근로자 건강권 보호강화” 같은 용어들은 모욕에 가까운 기만일 뿐이다.

근로시간 운용과 관련한 사업장의 법률 위반을 막기 위해 행정지도 및 감독업무를 수행하고 법률 위반 사용자에 대해서는 엄히 처벌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예나 지금이나 원칙인 ‘주 40시간제’를 깰 궁리만 하고 있으니, 고용노동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부서인지 모르겠다. 최근에는 주 69시간이 과장된 셈법이라며 억울하다는 제스처도 취하는 모양인데, 정부가 원칙을 무시하고 변칙의 물꼬를 터주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과로사 조장하는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

주 69시간 노동은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뇌심혈관계질병 인정 기준을 스스로 깨는 것이기도 하다. 고용노동부 고시는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 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하고,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시간이 길어질수록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이 기준은 당연히 그냥 나온 것이 아니고 국내외의 많은 연구결과에 근거한다. 2018년 안전보건공단의 연구에서도 질병 발생 이전 3개월간 평균 근무시간이 주 52시간을 넘는 경우 심혈관질환 위험이 약 2.3배 정도 높다고 보고하고 있다.

주 69시간 노동이 과로사를 합법화한다는 비판이 일자, 정부는 한 발 물러나 근로시간에 주 64시간이나 주 60시간짜리 캡(모자)을 씌운다는, 모자트릭 같은 이상한 말을 하는 중이다. 위에 언급한 고용노동부 고시의 과로성 질병 판단 기준 시간을 의식한 말들일 게다. 하지만 주 64시간, 주 60시간까지만 노동을 한다고 과로성 질병이 발생하지 않을까. 굳이 말하면 주 69시간보다야 아주 조금은 낫겠지만 주 64시간이나 주 60시간 노동 역시 주 52시간을 월등이 뛰어넘는, 노동자의 건강에 유해한 시간들이다.

한쪽에서는 ‘주 15시간미만’ 초단시간노동

한쪽에서는 이렇듯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는 주 69시간 노동이 추진되고 있는 데 반해, 다른 한쪽에서는 주 15시간미만 초단시간노동자들이 노동법의 보호를 사실상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주 15시간미만 노동자들은 퇴직금, 주휴일, 연차휴가,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노동법의 대부분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제도의 바깥에 있다 보니 심지어 은행 대출 같은 것도 제한된다.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단시간노동자 규모는 2013년 83.6만 명에서 2022년 179.5만 명으로 9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법의 바깥에 자리한 이들의 수가 이렇게 크게 늘어나고 있다. 출생률은 기록적으로 크게 감소하고 있다. 정부의 노동현안 개선 노력도 크게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