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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표 범죄와의 전쟁', 그리고 이에 맞선 갱스터들

[비문명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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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조차 탈 수 없는 '사회적 강자'들

1978년 7월 5일, '19인의 갱(Gang of 19)'이 미국 덴버 시내의 도로 한가운데에 나타났다. 이들은 차량으로 붐비는 콜팩스 가(Colfax Avenue)와 브로드웨이(Broadway) 교차로를 점거하고, 돌연 승객들이 탄 버스를 막아섰다. 얼마 후 또 다른 버스가 정류소에 도착했지만, 이 버스 역시 곧 갱들에게 가로막혔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갱'이라 호명되건만, 어째선지 이들의 손에는 총이 들려 있질 않았다. 수기로 적힌 초라한 피켓 몇 개와 휠체어들만이 버스를 둘러싸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휠체어를 도로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 두고 버스 앞에 드러누웠다. 이내 현장에 나타난 경찰들은 이 기이한 광경 앞에서 어쩔 줄 모른 채 우왕좌왕했다. 갱들은 경찰들이 뭘 하던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구호를 외쳐댔다. "우리는 버스를 탈 것이다!"

이로부터 45년쯤 지난 한국에서도 총 들지 않은 갱들이 도심에 나타났다. 장애인 권리예산을 요구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라는 '갱들'을 상대하겠다며 유력 정치인들, 주류 언론, 서울교통공사, 경찰, 극우 청년들까지 앞다퉈 갱들과의 전투에 참전했다. 그리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겨울을 기점으로, 이 전투의 선봉장 자리를 꿰찬 것 같다. SNS를 통해 이미 전장연에 대한 날 선 공격을 이어오던 오세훈은 지난 2월 2일, 결국 이 사안과 관련해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공개 면담을 진행했고,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하철을 지연시켜 철도안전법을 위반하는 중범죄를 저질러도 전장연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이렇게 법을 대놓고 무시해도 되는 사회적 강자는 없다."

그렇다면 덴버의 저 갱들은 오세훈에게 어떻게 평가될까? 만약 그들이 비장애인이었다면, 경찰은 바로 그 자리에서 갱들을 상대로 물리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그들이 이름 그대로 정말 '갱'이었다면 곧장 권총을 뽑아 들었을 것이고, 이어지는 총격전 끝에 결국 그들을 체포했을 것이다. 그러나 덴버 경찰들은 그러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암묵적으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오세훈이 설파한 '법 앞의 평등' 원칙에 따라 생각해 보자면, '19인의 갱'은 정말로 일종의 '치외법권' 지대에 머무르면서 불체포 특권을 누리는 '사회적 강자'였던 것이다. 버스도 못 타는 이들이 강자라니…. 어쩐지 좀 초라하지만, 그래도 강자는 어쩔 수 없는 강자다.

오세훈은 마침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서울시는 어려운 분, 불행한 분, 결핍을 가진 분들께 극복의 지지대가 되어 드리고 싶다. 그것이 약자와의 동행 정신이다." 장애를 결핍, 불행으로 보고, 그것을 극복하라는 인식이 얼마나 차별적인 것인지와는 상관없이, 이 인식을 그대로 수용한 이들만이 오세훈에게 '사회적 약자'로 여겨진다. 그가 원하는 약자가 되면 어떤 정책적 지원을 적절하게 받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럴 때만이 서울시와 '동행'할 최소한의 자격이 부여된다. 한편 이 차별적 인식을 거부하고, 그러한 인식을 재생산하는 이 사회의 구조 변혁을 요구하는 것은 오세훈에겐 이미 그 자체로 '사회적 강자'의 징표가 될 뿐이다. 심지어 전장연은 이를 위해 깡패와도 같이 '초법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은가. 약자에게는 결코 반대의 목소리를 낼 힘이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약자에게는 그저 순응적 태도와 못난 자기 존재에 대한 극복 의지, 그리고 미담만이 어울릴 뿐이다.

이러한 오세훈의 '약자관'은 애초부터 그의 의도야 어쩌건 상관없이 그것을 거부한 이들에게 협박으로 작동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전장연에 "지난 1년 동안 많이 기다려 드렸다"고 말하는 오세훈의 온화한 표정 너머, '범죄와의 전쟁'을 불사하는 이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다. 혹시 나만의 착각일까? 그러나 서울시가 과거 여느 '범죄와의 전쟁'이 그러했던 것처럼 보통은 '사회적 약자'로 여겨지는 이들을 '사회적 강자'로 둔갑시켜 이들을 '범죄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는 단순히 착각만은 아닌 것 같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범죄화'를 치안 권력의 유효한 통치 수단으로 삼아 온 유구한 전통은 이 민주화된(?) 시대에도 이토록 충실히 계승되고 있다.

오세훈표 '범죄와의 전쟁'

지난 3월 2일, 서울시는 전장연에 소속 단체 160여 곳의 명단을 요구했다. 같은 날, 서울시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전장연 소속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자립생활센터 11곳에 서울시 보조금 지원 내역 13년 치를 '30분 안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바로 또 그날, 서울시는 전장연의 제안으로 2020년 7월부터 시작된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 대한 조사를 감행할 것이라 밝혔다. 이 일자리 사업을 수행 중인 기관들은 서울시로부터 지금까지 작성된 3년 치 자료를 5일 내로 몽땅 제출할 것을 요구받았고, 조만간 이 일자리들에 대한 현장실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통보받았다. 한편 이 실사에 참석한 공무원들 상당수는 탈시설 및 최중증 장애인 노동권 보장이라는 이 일자리의 취지에 대한 이해도도 매우 낮은 상태에서 오로지 꼬투리를 잡는 데만 혈안이 돼 있었다. 심지어 이들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의 주요 직무가 'UN장애인권리협약의 사회적 캠페인'임에도 이 노동자들이 캠페인을 위해 집회를 꾸리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노동자들의 집회 참여 횟수를 조사해 가기도 했다.


절차상으로도, 시기상으로도, 그 의도에 대해서도 의아한 점들이 넘쳐나지만, 이 조사들은 '당신들이 정말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불만 없이 수용하라'란 한 마디로 쉽게 정당화된다. 여당 소속 시의원이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는 알리바이와, '감독기관으로서 그러한 권한 행사는 당연하다'는 한 마디만 덧붙여 주면, 이 조사의 적법성은 절차적으로도 완성된다. 전장연이 이 조사들을 탈시설 운동에 대한 '표적 수사'로 규정짓자마자, 극우 청년들과 보수 언론들이 전장연을 향한 왜곡 선전성 물음을 다시 한번 쏟아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저렇게 난리 치는 걸 보니, 역시나 탈시설도, 탈시설 장애인 공공일자리도 전장연의 이권을 챙기기 위한 것이었네?" 조사 후, 아무런 범죄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다 해도 시 입장에서는 딱히 피해 볼 게 없다. 사실이 아니면 그만일 뿐이고, 이 조사만으로도 전장연과 탈시설 정책에 충분히 압박을 가하는 데 성공했을 테니 말이다. 문서상 실수라도 하나 발견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전장연과 탈시설 정책을 ‘범죄화’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을 자료가 있을까.

심지어 서울시의 '범죄화'는 전장연에 머무르지 않고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는 탈시설 장애인 전체로 확산했다. 전장연에 대한 표적 수사를 공언하고 며칠 후인 3월 6일부터 서울시는 시 추가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장애인 3,475명을 대상으로 갑자기 일제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안내문에는 "대상자에게 맞는 적정한 급여를 지원하기 위한 절차"이며, "조사 결과 급여 증가, 급여 중지 및 급여 감소 등 일부 자격 변동이 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조사가 이뤄진 맥락을 살펴볼 때 다분히 후자에 방점이 찍혀 있는 듯 보였다. 실제로 전장연과 오세훈 간 면담에서 이미 김상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장애인 활동지원에 투입되는 예산이 너무 많다"며, 탈시설 운동과 자립생활 예산에 제동을 걸 필요성을 이미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전장연이 이에 대해 항의하자 서울시는 장애인들에게 과도하게 제공되는 급여를 박탈해야 하는 정당성만을 강조했을 뿐이었다. 한편 '급여 증가'가 필요한 장애인에게 어떻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은 아직껏 제시된 바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 이 조사가 그 자체로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잠재적 범죄자라는 낙인을 덧씌울 수 있다는 점, 조사 과정에서 활동지원 서비스 삭감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별수 없이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이 얼마나 무능력한지를 증명하는 치욕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 따위를 고려했을 리 없다. 서울시 관점에선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모든 이들은 그저 부당하게 예산을 축내는 사람들이고, 그러니 사실상 '잠재적 범죄자'일 뿐이다. 그들이 이 조사를 통해 '범죄화'되건 말건, 활동지원서비스 축소가 상당수 중증장애인들의 삶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건 아니건, 딱히 중요하지 않다. 시 입장에서야 이미 정책의 방향은 정해져 있다. "그렇잖아도 부족한 예산을 당신들에게 더 투입할 수 없습니다. 활동지원이 더 필요하다고요? 그 정도로 장애가 심하면, '부정수급'이란 중대 범죄를 저질러가며 예산을 축내지 말고, 시설로 들어가세요."

'범죄화(crimination, criminalization)'란 단어는 공교롭게도 '차별(discrimination)'이란 단어와 어원적으로 의미가 통한다. 'crime'은 라틴어 'cernere', 즉 공동체에 해를 가할 수 있을 법한 것들을 '판단'해 걸러낸다는 뜻에서 기원했고, 'discrimination'은 특정 부류의 사람이나 행위를 떨어뜨린다는 의미를 갖는 'dis'와 'crimen'이 합쳐져 만들어진 말이다.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존재 자체가 공동체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진 몸들에는 놀라울 정도로 쉽게 이 ‘범죄’의 낙인이 덧씌워졌고, 이는 곧 이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돼 왔다. 서울시의 전장연과 장애인, 그리고 탈시설에 대한 '범죄화'는 혹시 그 자체로 차별을 재생산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들의 범죄를 막기 위해 '갱'이 될 수밖에 없다면

'19인의 갱'은 버스를 막기 1년 전부터 이미 미국 사회를 향해 어떤 물음을 던져왔다. "달로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나라에서 휠체어가 탈 수 있는 버스를 만들지 못한다고?" 하긴, 우주로 로켓을 쏘아 올리는 위대한 인류사적 업적에 비하면, 이 하찮은 존재들이 버스를 타는 것 따위 뭐가 중요할까. 장애인이 탈 수 있는 버스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한낱 낭비일 뿐이진 않을까.

전장연이 꾸린 투쟁 현장에서도 비슷한 물음이 늘 그 장소를 부유해 왔다. "경제 규모 10위권인 나라에서 아직도 사람들이 이동도 못 하고, 교육도 못 받고, 노동도 못 한 채, 시설과 방구석에 갇혀 살아야 한다고?" 정치인들, 공무원들, 자본가들은 이 물음에 대해 언제나 이렇게 답해왔다. "너희 요구를 다 들어준다면 나라가 망할 것이다." 그런데 전장연은 이미 수차례 목격해 왔다. 어째서인지 수조 원, 많게는 수십조 원에 달하는 대자본에 대한 예산 몰아주기와 부자 감세는 누군가 대놓고 깡패짓을 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그것도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마침 얼마 전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연간 1.4조 원 감세를 해줄 수 있는 〈반도체 특별법〉이 거대 양당의 합의로 너무나도 쉽게 통과됐다. 참고로 전장연이 지난 1년 반 동안 '지하철행동'을 해가며 요구했지만 사실상 묵살된 장애인권리예산 증액 요구안은 연간 1.3조 원이다.

냉전기 우주 경쟁의 산물이건 뭐건, 위대한 업적을 위해서라면 천문학적인 사회적 자원이 소요돼도 무방하다. 그것이 사회와 민중들에게 어떤 비극적 효과를 가져오건 대자본의 성장 신화는 지속돼야 한다. 그로 인해 세계가 얼마간 망가지는 한이 있어도, 이 파국을 향해가는 성장을 지원하는 게 국가의 사명이다. 한편, 저들만을 위한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인권, 시민권의 탈을 쓰고 있건, 헌법의 탈을 쓰고 있건, 국제조약의 탈을 쓰고 있건 딱히 사회적 자원을 투입할 이유가 없다. 단적으로 '탈시설'은 한국 정부가 비준한 〈UN장애인권리협약〉의 핵심 가치로, 이 협약은 헌법에 따라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따라서 '탈시설'을 오세훈처럼 예산 논리를 통해 공격하는 것, 그것도 공개적으로 이 가치를 거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적인 것이지만, 이러한 만행은 딱히 범죄로 여겨지지조차 않는다.

오세훈은 이 범죄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이들을, 이제는 남아있는 방법이 지하철을 막는 것밖에 없어 그렇게 하는 이들을 '사회적 강자'라고 규정했다. 어쩌면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약자가 기존의 차별적 인식에 순응하는 자라면, 우리가 약자임을 자처할 이유는 남아있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가 갱이 돼서야 당신들의 범죄를 막아낼 수 있다면, 차라리 갱스터가 되는 게 훨씬 나으니 말이다. 적어도 '갱'은 무능력하고 쓸모없다 여겨져 온 이들과 달리 사회에 어떻게든 목소리라도 낼 수 있는 자들이니까. 당신들이 드디어 우리의 힘을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니까.

'19인의 갱'이 벌인 범죄 덕에, 결국 덴버는 미국에서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최초의 도시 중 하나가 됐다. 그리고 오세훈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19인의 갱'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 오늘날 단순 범죄자들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훗날 세상이 더 나아진다면 탈시설이라는 가치에 대한, 억압받는 장애 민중들의 저항에 대한 오세훈표 '범죄와의 전쟁'은 훗날 '인류에 대한 범죄'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전장연은 이 범죄에 맞서 싸운 투사들로 기억될지언정, 범죄자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서울시는 선택해야 한다. 당신들은 어떤 범죄와 맞서 싸울 것인가. 당신들의 적은 인권인가? 아니면, 당신들 자신들이 지금껏 저질러 온 '인류에 대한 범죄'인가.


* 이 글은 4월에 작성됐으며, 이 글이 발표되는 5월에는 서울시의 입장 및 서울시의 전수 조사 내용이 변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