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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악인의 존재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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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시시한 적에 의해서 무너지곤 한다.

현실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고난과 역경일 때도 있지만, 생각보다 시시한 일들이기도 하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작디작은 일인데, 이 시시한 일들이 한데 모여 뭉쳐지면 어느새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조금은 허무한 말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그렇게 대단하지 않은 시시한 적에 의해서 무너지기도 한다.

이 글이 근로감독관을 비하하거나, 근로감독관이라는 직업을 폄하하는 것으로 비치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근로감독관에 의해 겪지 않아도 될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 중 경기도 안양 소재 노동청의 모 근로감독관과, 그의 사건 처리, 그리고 그가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위한 출입투쟁, 그리고 그 문을 닫는 어느 근로감독관 이야기

노동자가 특정 사업체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노동력을 제공하더라도 자신이 노동자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현실 노동관계에서 이미 ‘노동자 아닌 직원’으로 (오)분류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비노동계약을 체결한 사람에게 사업주가 근로기준법상 권리인 연차유급휴가, 퇴직금, 동의 없는 근로조건의 불이익 변경 금지,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금지 및 구제 절차 등을 보장할 리 없다.

이처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어야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성 인정 여부에 대한 다툼을 출입 투쟁이라고도 부른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최소한의 기준을 정한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으려면 (오)분류된 노동자들은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 근로감독관은 2022년 12월 학원에서 전임강사의 노동자성을 부인하면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법 위반사항이 없다며 행정종결 처리했다. 대학입시학원 종합반 강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2006년에 나왔는데(1), 16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노동자성을 부정한 결론도 문제지만, 이 사건에는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① 사실관계의 의도적 오인

근로감독관은 사건처리결과 통지서에 “급여 체계가 강사와 학원이 5:5로 비율제로 가져가고, 인원수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는 점 등으로 볼 때 진정인이 주장하는 업무 지시는 위탁계약서에 의한 것으로 판단됨.”이라고 기재하였다.

그러나 진정인이 작성한 계약서에 ‘전임 강사는 비율제로 수수료를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조항은 있었으나 그 아래에는 280만 원의 전임 강사 고정급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고정 기본급을 280만 원으로 받아왔고, 교부된 임금명세서에도 280만 원이 ‘기본급’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게다가 비율제로 받은 것은 고과 기준을 초과한 부분에 대한 성과급이었으며, 기본급의 10~20% 비중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감독관은 진정인의 급여 전체가 비율제로 구성된 것처럼 기재하였고, 이는 실제 노동관계와도 다르지만 계약서의 내용과도 다르다. (그리고 계약서에 5:5라는 비율은 존재하지 않는다. 4:6이다!) 이 정도면 감독관이 의도적으로 사실관계를 오인한 것이 아닌지 심히 의심될 수밖에 없다.

사건처리결과 통지서(위), 진정인이 작성한 계약서(아래)



② 근로감독관의 태도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근로감독관의 태도이다. 근로감독관은 노동자성 판단 징표 중 하나인 ‘강사에게 교재 선택권이 있는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사업장에 방문했을 때 학원에 ‘자체 교재 제작’이라는 문구가 있는 것을 보면서 학원 교재가 차별화되고 경쟁력이 있는 교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정인에게 교재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졌다면, 어떤 교재를 선택했을 것이냐고 물었고, 진정인이 자체 제작한 개인 교재를 사용했을 것이라고 말하니 “어떻게 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교재가 개인이 만든 교재보다 못할 수가 있냐, 전문가들이 만든 교재가 더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라며 선택권이 주어졌더라도 학원 교재로 수업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노동자성을 판단하기 위해 근로감독관이 조사해야 할 것은 진정인의 가정적 의사가 아니라, 진정인이 근무한 학원이 프랜차이즈 학원이라는 점, 그리고 그 특성상 (자체제작 교재의 질과 무관하게) 개인이 제작한 교재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근로감독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사건처리결과 통지서에는 “국어국문학과 전공자이면서 국어강사 20년 경력이 있는 진정인이 ‘위탁계약서’가 ‘근로계약서’의 다른 이름으로 알았다고 하면서 의사의 흠결을 주장하는 것은 사회통념 상 상당하다고 볼 수 없는바, 동 위탁계약서를 진정 성립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음이 인정됨”이라는 문구가 적시되었다. 아마 근로감독관은 이 문장을 쓰고 나서 조사 과정에서 느낀 자신의 짜증을 신사적이고 법리적으로 풀어냈다고 만족했을지도 모른다.


‘처분문서의 증명력’ 등의 판결을 노동법에 적용하는 것은 배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 사건처리결과 통지서의 내용은 법리적으로 완전히 잘못되었다.

먼저, 법적 지식이 부족한 진정인이 “위탁계약서가 근로계약서의 다른 이름인 줄 알았다”라고 표현했다 하더라도, 이를 그대로 조서와 사건처리 결과통지서에 반영하는 것은 다분히 악의적이다. 왜냐하면 이미 대법원은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노동관계의 실질”로 판단하는 실질주의 원칙을 천명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거나, 노동자가 위탁계약서와 근로계약서의 차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거나, 심지어 당사자의 의사가 “나는 프리랜서다”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이는 판단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업주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자가 실제 노동관계에서 ‘종속되어 노동을 하는지 여부’가 판단 기준이기 때문이다.

또한, 계약서를 작성할 당시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가 무엇이었는지는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근로감독관이 당당하게 인용한 “처분문서의 증명력” 판결과 노동법에서의 계약 체결은 전제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처분문서의 증명력 판결은 민사판결로서 대등한 두 당사자 사이의 계약을 전제로 한다. 즉, 양 당사자 사이의 어떠한 우위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이 자유로운 의사로 작성한 계약서의 효력은 사기·강박으로 인한 작성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유효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위 대법원 판결의 취지이다. 즉, 이 판결은 개인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사법(私法)에서 적용되는 판결이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국가가 최소한의 근로기준을 정하고 사업주에게 준수할 것을 강제한 것으로서, 공법(公法)적인 성격을 가지는 법이다(2). 국가가 이렇게 개입하는 것은 시민법의 계약자유의 원칙을 그대로 방치하면 사업주의 우월한 지위에 의해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법원은 노동자성을 판단할 때 “다만,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 등의 사정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기 때문에, 그러한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고 판시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의 적용 여부가 감독관에 따라 달라지는 ‘근로기분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근로감독관이 사건처리결과 통지서에서 ‘처분문서의 증명력’을 판결을 근거로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고, 대법원 판례의 태도에도 맞지 않는다. 이 사건은 근로감독관의 사실오인과 법리 오인, 그리고 구시대적인 노동자성 판단 기준에 의해 발생한 해프닝이었던 것이다. 결론에도 동의할 수 없지만, 결론에 이른 근거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근로기준법은 성취의 대상이 아닌 최소한의 기준에 불과하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는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을 권리가 있다. 누군가에게 최소한의 권리조차 박탈하는 것은 신중하게 행해져야만 한다. 그것이 근로기준법의 입법 취지이자 근로감독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각주>
(1) 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2) 공법이 국민과 국가의 관계를 규율하거나 국가 기관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인 반면, 사법은 개인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