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대본 이오진, 연출 이래은, 제작 달과아이극단)는 ‘스쿨 미투’ 소식을 전하는 뉴스로 시작된다. 등장인물은 둘이다. 1976년에 태어나 1992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이박(최희진 분)과 1992년에 태어나 2008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이박(백소진 분). 나이는 다르지만 이름은 같은 두 여고생. 한쪽은 장국영을, 한쪽은 소녀시대를 기억하지만 그리 다르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낸 두 여고생.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특출나지 않은 이들이다. 성적도 외모도 두드러지지 않는, 특별히 ‘방정’하지도 특별히 ‘불량’하지도 않은 학생들. 둘은 번갈아 가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서로의 경험에 반응한다. 두발이나 복장을 규제하는 교칙, 잠을 깨운다며 목덜미며 등을 쓰다듬는 남교사들, 낙태했다는 소문이 도는 ‘대걸레’, 못생기고 징그럽도록 독하게 공부만 하는 ‘징독’ 같은 친구들.
“분명히 어떤 일이 있었는데, 없던 것처럼 흘러”가는 이곳에서 겨우 십수 년은 별다른 차이가 없으므로 둘의 말은 종종 겹친다. 서로의 할 말을 대신하고, 서로의 말을 반복한다. 에둘러 대화하는 가운데, 그리고 교사거나 삼촌이거나 동급생이었던 어떤 이들의 다른 삶을 떠올리는 가운데, 이들은 깨닫고 확인한다. 교사들의 손길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많은 것이 잊히고 묻혔지만, 그사이에는 함께 한 싸움과 “작은 승리”가 있었음을.
다시 말하기 혹은 인용하기
어쩌면 그들의 경험이 크게 다르지 않아 자연스레 하나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지 모른다. 혹은 같은 말을 각자의 자리에서 하는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말을 반복한다고, 혹은 그들이 서로를 인용한다고 느낀다. 서로만이 아니다. 이들은 징독이 되고, 대걸레가 되고, 소문을 나르거나 학교와 싸우거나 절망하고 분노하는 여러 친구가 된다. 이들이 서로의 말을 새기는 것은 그 자체로 연대의 감각을 수립하는 행위다.
이것이 연대가 되는 것은 그들이 극적인 피해사례를 나누어서도, 통쾌한 승리를 말해서도 아니다. 그저 말할 만한 문장이 겹치는 것도, 혹은 그저 문장을 똑같이 따라 하는 것도 아니다. 서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상대와 같은 마음을 담아 말하는 것, 혹은 상대에게 필요한 마음을 담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애들이 그것을 사랑이라 여겼다”는 (어쩌면 뒤늦은) 깨달음뿐 아니라, “공부 못하면 콱 죽어”라는 폭언을 반복할 때도 그렇다.
서로를 이해하는 이들, 서로를 정확히 알고자 하는 이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오갈 때, 전자는 힘을 더하고 후자는 공포와 아픔을 덜어낸다. 이 다시 말하기 혹은 인용하기가 연대가 되는 것은, 이로써 이들이 무뎌진 기억을 되살리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로서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함으로써 서로의 삶에 함께하고 개입할 수 있는 이들로서 새로이 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기억의 정치
이 인용으로 두 개의 삶은 정확히 맞물리게 된다. 이는 곧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지를 묻는 일, 그로써 공동의 기억을 수립하는 일이다. 기억을 되새기는 일은 피해자로서의 아픔이나 분노만이 아니라 방관자, 숫제 가해자로서의 죄책감까지를 가져오는 일이다.
대걸레가 죽었다는 소문에 ― 슬퍼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 울다가도 이내 고3의 일상으로 돌아갔던 나는 그를 잊고 지낸 친구들과 어떻게 다를까. 종이비행기 날리기 시위의 작은 승리를 소중하게 기억하지만 가담자를 이르라는 교사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한 나는, 화가 나 교탁을 뒤엎었던 “원래 선생님들한테 늘 맞는 애”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또 어떠한가.
조금은 달라 보였던 교사에게 품었던 사랑이나 욕망 혹은 그와 비슷하거나 둘 다 아니었던 어떤 것, 쉬는 시간이면 나를 끌어안고 여기저기 뽀뽀를 해댔던 혜자, 당시에는 알지조차 못했던 광화문 광장에서의 중고생 시위. 당장은 소화하기 버거운 기억들도 가세한다. 서로를 인용하고 반복하며 기억을 나누고 더하는 일은 아마도 각자를 단단하게 굳히기보다는 무르게 만들고 흔들리게 할 것이다. 무르고 흔들리는 여럿, 기억을 다시 쓰는 정치로서의 연대는 그 위에서 가능해질 것이다.
김이박(1976)
우리는 나쁜 기억들만 너무 생생하게 기억하고, 그것을 가장 아픈 방식으로 기억해서 소비한다.
김이박(1992)
우리는 나쁜 기억을 체에 걸러내고, 좋은 기억만을 남겨 전부라고 믿고 싶어 한다.
김이박(1976)
그날 하늘이 너무 예뻤다.
더 많은 기억과 더 많은 인용이,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한 것은 바로 그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