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낮 12시께 충남 당진화력발전소 3부두에 정박해 있던 석탄운반선에서 소방설비 정기점검을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4명이 새어 나온 이산화탄소를 마신 뒤 질식해 쓰러졌다. 4명 중 41살 노동자 1명은 22일 오전 6시께 숨지고, 19살 노동자 1명은 아직도 중상을 입고 치료 중이다. 나머지 2명은 퇴원했다.
▲ 경향신문 8월 28일 5면. |
네 사람은 운반선 맨 뒤에 있는 이산화탄소 룸에서 고정식 소화기 노즐 교체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당일 12시 1분에 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새어나온 이산화탄소를 마신 뒤 쓰러졌다고 직접 신고했다. 119구급차는 12시 29분에 도착해, 12시 51분에 응급환자 3명을 병원으로 후송했다. 작업자들은 사고 현장에서 50분 동안 머물렀다.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 해경이 오후 3시 30분께 현장에서 유해가스 농도를 확인했지만, 모두 정상 수치로 나왔다. 사고 이후 3시간 반이 지났으니, 정상 수치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노동부는 이틀 뒤 다시 현장에 나와 조사를 한 뒤 부분 작업중지명령을 내렸고, 나흘 뒤 작업중지명령은 해제됐다. 노동부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고원인을 명확히 밝히고, 엄정하게 행정·사법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노동부가 말하는 그 엄정한 조치가 뭔지 너무도 잘 안다.
이 기사는 경향신문 8월 28일자 5면에 1단 기사로 실렸다. 김용균 씨를 앗아간 태안화력과 이번에 사고가 난 당진화력은 나란히 서해안 벨트에 자리 잡은 석탄화력발전소다. 탄소중립을 외치는 정부의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중대재해가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 언론은 누더기가 된 채 겨우 이름만 걸친 중대재해법에 혐오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연일 ‘기업 다 죽이는 중대재해법’이라고 아우성친다. 기업이 먹고 살기 위해, 노동자의 목숨을 요구하는 야만의 시대다.
경향신문이 1단 기사이나마 이 사실을 보도했던 바로 그 8월 28일, 조선일보는 8면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안)이 갖가지 ‘황당한 규제’를 안고 있다고 혐오했다. 조선일보는 ‘산업보건의사 690명뿐인데 업체 4666곳에 1명씩 채용?’이란 제목을 달아 이날 8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 조선일보 8월 28일 8면 머리기사. |
노동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시행령(안)은 현재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 앞부분에 “산업보건의 자격을 가진 의사보다 대상 사업장 수가 6배 이상 많아 산업보건의를 채용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조롱했다.
의사들의 집단 반발로 인구 대비 전체 의사 수를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의대생에게조차 인기가 1도 없는 산업보건의가 전국에 690명에 불과한 건 당연하다. 너도 나도 돈 되는 성형외과로 몰리는 판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산업보건의가 되고픈 의대생이 있겠나.
이런 통계자료를 조선일보에 제공한 이들은 경총이다. 숫자와 통계만 갖고 세상을 재단하는 자들 시선으로만 보면, 한국에 중대재해처벌 대상 기업은 영원히 690명을 넘어설 수 없다. 이는 사회복지 공무원이 턱없이 부족하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복지 공무원 규모 이내로 억제해야 한다는 논리와 같다. 실행 과정에서 대선 공약보다 크게 후퇴했지만, 현 정부가 늘어선 뒤부터 복지 공무원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이 크게 늘었다. 이처럼 산업보건의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공급은 자연스레 따라올 수밖에 없고, 처우 개선도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조선일보 기사엔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산업보건의를 채용할 여력이 안 되는 업체도 많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딱 반쪽만 맞는 말이다. 코로나로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대기업은 코로나 호황에 연일 콧바람을 분다. 대중소 상생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반면 코로나는 노동자 모두에게 흉기가 되고 있다. 코로나로 호황을 누리는 노동자는 플랫폼의 노예가 돼 하루 12~16시간씩 일하다 쓰러지는 배달 노동자뿐이다. 그런데도 입만 열면 코로나 때문에 기업이 다 죽는단다. 며칠 전 당진화력에서 숨진 노동자 가족에게 이 기사는 흉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