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탱크에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소년 파리스 오데(15세). 오데는 사진이 찍힌 열흘 후 이스라엘군에 살해당했다. 2000년 10월 29일, 가자지구. |
최근 한 기고문에 대한 항의 메일을 받았다. 하마스가 민간인을 테러하고 있으며, 여성 인권을 탄압하는데 어째서 하마스를 옹호하느냐는 것이었다. 항의를 받은 글은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의 기고문(1)에 대한 반론글(2)이었다. 대사의 기고문은 앞서 한국의 160개 시민사회단체가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중단을 요구하며 대사관 측에 전달한 항의 서한에 대한 반론이었다. 지난 5월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필두로 팔레스타인 전역을 공격했고, 특히 11일간 가자지구를 집중적으로 폭격해 이곳에서만 어린이 66명을 포함해 팔레스타인 주민 최소 257명이 살해됐다. 대사는 언제나 그렇듯 이번 가자 학살 또한 하마스의 “침략”에 대응한 이스라엘의 “자위권” 행사라 주장했다.
대사가 이스라엘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마스를 소환한 것과 이를 반박하기 위해 내가 하마스를 방어한 것. 그리고 하마스의 ‘테러’와 팔레스타인 여성 인권 탄압을 이유로 하마스 방어가 잘못됐다는 항의를 받은 것까지. 이 일련의 사건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배와 이에 맞선 투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담론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이스라엘과 이를 옹호하는 세력은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이슬람 근본주의’와 등치시킨다. 이것은 특히 9·11 이후 이슬람주의가 곧 테러리즘이라는 미국 등 서방의 기조에 부합한다. 이슬람 혐오 프레임에 끼워 맞추기도 쉬워서 대중적인 호소력도 있다. 이스라엘이 70여 년간 팔레스타인에 자행한 폭력과 식민지배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테러했다’라거나 ‘하마스가 인간방패로 쓴 탓에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살해당했다’거나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여성과 성소수자 등의 인권이 탄압받는다’라는 이야기는 하마스에 대한 반발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것은 고의로 맥락을 제거하고 날조를 가미한 이스라엘의 전형적인 프로파간다다.
하마스를 향한 프로파간다는 하마스를 지지하는 팔레스타인 사회의 투쟁에 대한 정당성 훼손으로 이어진다. 이스라엘이 학살을 벌일 때마다 국제 뉴스는 ‘이스라엘도 문제지만 하마스도 문제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의 폭력은 모두 잘못됐다’라는 반응으로 뒤덮인다. 그리고는 UN 창설 이후 무려 70여 년간 실패해 온 결말, 즉 ‘양측이 무기를 내려놓고 협상해야 한다’로 귀결된다. 서방 정부들은 이스라엘이 무기를 내려놓게 하기는커녕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해 주고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팔레스타인의 반식민 투쟁은 하마스라는 저항 세력에 묶여 도매금으로 평가 절하된다. 이처럼 하마스에 대한 공격은 사실 팔레스타인 해방운동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기획된 것이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인들은, 또 연대 세력들은 하마스를 방어해야 한다.
하마스의 급부상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여러 정당 중 하나다.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 처음 참가한 하마스가 총 132석 중 74석을 확보하며 압승했을 때 나는 사실 당황했다. 당시 팔레스타인 정치 지형을 잘 모르기도 했지만,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PFLP) 등 팔레스타인에서 좌익 정당이 대중적이라고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PFLP는 당시 3석을 얻었다). 이슬람주의에 대한 일천한 지식에 기반해 팔레스타인 유권자들에 대한 막연한 실망감을 안고, 당시 한국에 살던 팔레스타인 친구에게 팔레스타인의 압도적 다수가 하마스를 지지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이런 질문에는 하마스나 이슬람주의에 대한 반감이 묻어나기 때문에, 질문을 받은 사람은 “우선 나는 하마스 지지자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나 역시 지금 그런 압박감을 느낀다. 친구는 하마스에 투표한 많은 사람이 이슬람주의자나 하마스 지지자가 아니지만, 자신이 지금 팔레스타인에 있다면 본인 역시 하마스에 투표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하마스가 해방운동의 최전선에서 이스라엘에 맞서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스라엘에 완전히 투항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서 희망을 잃고, 대안 세력을 원했다. 2006년 1월은 2차 인티파다(민중봉기)가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탱크에 맨몸으로 맞서 돌을 던지는 십 대 소년 ‘파리스 오데’의 사진이 팔레스타인 투쟁의 상징이던 때였다. 5년여간 이스라엘에 5천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살해당한 이 투쟁에서 하마스는 인적·물적 손실을 불사하며 이스라엘에 맞섰다. 이어진 선거에서 압승은 예정된 결과였다.
사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태생부터 점령자에 대한 투항이었다. 1987년부터 6년간 지속된 1차 인티파다의 급진성을 억누르기 위한 유화책으로 미국은 ‘평화 협상’이란 카드를 꺼냈다. 점령지 팔레스타인에 과도적인 자치정부를 구성하게 해 주겠다며 장래 팔레스타인 독립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 ‘평화 협상’의 파트너로는 당시 저항 세력 중 가장 온건한 ‘파타’가 다수를 점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선정됐다. 다른 팔레스타인의 저항 세력은 기만적인 오슬로 협정을 거부했고, 파타는 무장 해제와 이스라엘의 ‘안보’에 협조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여 1995년 자치정부를 꾸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성실하게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 운동가를 넘기며, 또 직접 체포·구금하며 이스라엘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것이다.
지금도 파타 지도부를 향한, 특히 청년층의 분노가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를 상회할 정도로 높지만,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의 하위 파트너이자 이권 챙기기에 바쁜 파타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는 악질적이었다. 하마스는 특히 사회복지 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자선사업을 통해 신망을 구축해왔고 청렴한 이미지 덕분에 그런 파타와 더 대비됐다. 팔레스타인 친구에게 이런 얘길 들으면서 하마스가 대안 세력으로 급부상한 이유를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6년 파타의 선거 참패를 파타도, 이스라엘도, 미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타는 정권을 넘겨주지 않은 채 이스라엘과 미국의 지원 속에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 쿠데타로 파타는 서안지구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언론은 국제기구의 감독하에 민주적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승리한 하마스에 대해 “가자지구를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마치 하마스가 불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한 듯한 암시를 주는 것이다. 2007년 쿠데타 직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육해공을 봉쇄했고 이후 주지하다시피 일상적으로, 때론 대규모로 가자지구를 폭격하고 있다.
하마스의 영향력을 가자 내로 축소하려는 이스라엘의 시도는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지난 5월, 하마스는 전체 팔레스타인 반식민 투쟁에서 리더십을 보여주며 다시 전면 부상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국경 경찰(준 군사조직)이 비무장 시위대를 진압한다면서 알아크사 사원까지 침탈해 시위대와 신자들을 공격하고, 불법 유대인 정착민에 대항하는 동예루살렘 '셰이크자라' 주민을 인종 청소 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선전포고했다.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문제에만 대응하는 것이 아님이 선명해진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제시한 기한까지 오히려 비무장 시위대에 대한 공격의 강도를 높이고 가자지구 침공 준비를 마친 채 하마스가 로켓을 쏘기만을 기다렸고, 로켓 발포 후 ‘침략’에 대한 자위권 행사라며 11일간의 무차별적 가자 폭격에 돌입했다.
무장투쟁, 테러리즘
여기서 지적해 둘 것은 하마스는 단독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식민지배 하에 있는 팔레스타인은 독립 국가가 아니고, ‘팔레스타인 국군’은 없다. 팔레스타인의 저항 세력, 즉 정당들은 산하에 각자의 무장 조직을 두고 있다. 파타 역시 비공식적인 무장 조직이 여럿 있다. 현재 가자지구에서 이들은 정파를 초월해 단결해서 이스라엘에 맞선다. 2014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 당시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대부분이 참여해 ‘합동작전실(Joint Operations Room)’을 구성한 이래,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에 공동 대응하고 있다. 물론 하마스가 여당이고, 2006년 파타의 쿠데타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선거가 치러지지 않아 하마스의 지분이 가장 크다. 아무튼 하마스만이 아니라 가자지구 전체가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에 대응하고 있다.
무장투쟁은 해방을 추구하는 식민지배 하의 민중에게 집단적인 자기방어의 권리로 보장된다. 역사적으로 무장하지 않은 해방운동은 없었다. 서구에서 찬양해 마지않는 평화의 상징,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투쟁의 방식을 좌우하는 것은 피압제자가 아니라 압제자다. 압제자가 폭력을 쓴다면 피압제자는 폭력으로 응수할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물론 폭력을 쓰지 않는 압제자란 없다. 만델라가 속한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인명 살상이 없는 전술을 선호했지만, 그런 전술로 해방이라는 결과를 끌어낼 수 없다면 “게릴라 전투와 테러리즘이라는 다음 단계로 움직일 준비가 돼 있었다.”
인명을 살상하지 않는 전술을 선호하는 것은 ANC만이 아니다. 1967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PFLP의 비행기 납치 사건에서도 PFLP 활동가들은 인질의 안전을 최우선시했다. 2000년대 마치 팔레스타인 테러리즘의 상징과도 같았던 소위 ‘자살폭탄 테러’ 전술은 2008년 폐기됐다. 팔레스타인에서 고안한 것도, 이슬람주의자만 행했던 것도 아니고, 이전의 다양한 해방운동이 압제자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구사했지만, 이는 잔악한 이슬람 테러범의 고유한 소행처럼 묘사됐다. 아무튼 아무리 압제자의 일원일지라도 비무장한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팔레스타인 사회에서도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폐기됐다.
또 ‘무차별 테러’라고 묘사되는 하마스의 로켓 발포에 대해, 하마스는 고의로 민간인 거주지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미국 언론 바이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자지구 하마스 일인자 ‘예히야 신와르’는 “우리에게 군사시설을 정확히 겨냥할 능력이 있다면 지금처럼 로켓을 발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이스라엘은 높은 정밀도를 자랑하는 미사일로 학교, 병원, 민간인 거주지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있다.
‘테러’라는 낙인은 오직 해방운동 쪽에만 붙는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조직에서 다양한 전략으로 해방운동을 하고 있으니 오류도 결점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오류와 결점이 해방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구실이 될 수는 없다. 압제자가 저지르는 고의적인 민간인 살해는 압도적인 피해에도 불구하고 ‘테러’라 불리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사례에서 보듯 어제의 테러범은 오늘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더 이상 테러범이 아니게 된다. 매우 편의적이다.
해방운동의 무장투쟁이 정당하다면, 투쟁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를 아무리 최소화하려 노력해도 피할 수 없다면, 그래서 무장투쟁이 결과적으로 테러와도 같아진다면, 해방 세력에 무장투쟁을 멈추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무장투쟁을 불러일으킨 압제를, 식민지배를 멈추도록 강제해야 한다. 식민지배라는 원인이 아닌 무장투쟁이라는 결과를 문제 삼는 건 순서에도 맞지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다.
무장투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막대한 인명 피해 때문에 하마스도 무장투쟁을 선호하지 않는다. 무장투쟁은 하마스 및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의 다양한 해방운동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심지어 이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학살할 때마다, 학살을 멈추라고 경고하며 최대한 무력 사용을 피하려 애쓰다 최후의 수단으로 이스라엘군에 무력 대응한다. 무력 대응 후 휴전을 원하는 것도, 휴전 수칙을 지키는 것도 팔레스타인 쪽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잘 알려지지도 않고, 민간인 살해라는 단면만 끝없이 부각되며 해방의 정당성을 훼손한다.
광신도,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
테러리즘에 더해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사회에 가해지는 또 다른 흑색선전은 이슬람 광신도 집단이라는 것이다. 이성적이지 않고, 전근대적이고, 극단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이고, 여성/퀴어 인권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미개한 이슬람 사회라는 것.
이런 문제는 잘 모르는 우리가 상상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빠르다. 우선 가부장제에 맞선 전 세계적 투쟁에서 팔레스타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팔레스타인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은 점령지 안팎에서 압제자와 피압제자의 가부장제가 공모하는 끔찍한 현실을 끝낼 여성 해방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3) 팔레스타인 퀴어 활동가들의 반식민 투쟁 또한 활발하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여성/퀴어 인권이 이스라엘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지배 담론에 적극적으로 반대한다.(4) 여성/퀴어 인권에 대한 이스라엘의 프로파간다는 여러 겹의 억압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인의 주체성을 빼앗고 이스라엘이나 서구의 구조가 필요한 피해자로 전락시킨다. 하지만 우리는 가해자가 제시하는 피해자가 아닌 투쟁하는 주체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앞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전하겠다.
사실 이스라엘 주요 일간지가 보도하는 이스라엘 정치가들의 발언을 보면 이스라엘 사회야말로 광신적으로 느껴진다. 이스라엘 국회의원들은 아랍인 인종청소를 공개 석상에서 논한다. 이스라엘을 유대교에 기반한 종교 국가라고도 얘기한다. 이스라엘 정치가들은 광신도란 걸 숨기지도 않는데, 반유대주의적 레토릭조차 폐기한 하마스만이 미치광이로 인식된다. 반복하지만 이는 그저 해방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이스라엘의 전략이 성공한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마스를 지지하지 않는다. 하마스와 나의 정치는 다르다. 나는 정교분리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세속주의자다. 유대교, 기독교, 불교에 기반한 정치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하마스에 대한 방어는 각자의 정치적 신념을 초월한 문제다. 이스라엘 입장에선 지금 영향력 있는 집단이 하마스이기 때문에 하마스를 집중 타깃 하는 것뿐이다. 하마스를 쓰러뜨리면 다음엔 다른 저항 세력을 쓰러뜨릴 것이다. 하마스를 지지하지 않아도 방어해야 하는 이유다.
<각주>
1. <한겨레신문>, 2021.6.1, 가자도 중동의 싱가포르가 될 수 있다
2. <한겨레신문>, 2021.6.2, 가자가 중동의 싱가포르가 될 수 없는 이유
3. 《워커스》, 2019년 11월 호, ‘여성 해방 없는 팔레스타인 해방은 없다’ 참조
4. 팔레스타인 퀴어들이 지겹게 들은 8가지 질문 참조 http://pal.or.kr/wp /%ED%8C%94%EB%A0%88%EC%8A%A4%ED%83%80%EC%9 D%B8-%ED%80%B4%EC%96%B4%EB%93%A4%EC%9D%B4- %EC%A7%80%EA%B2%B9%EA%B2%8C-%EB%93%A4%EC%9D%80- 8%EA%B0%80%EC%A7%80-%EC%A7%88%EB%AC%B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