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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건설 선포식 기사가 말하지 않은 것

[1단 기사로 본 세상] 맥락없이 던져진 기사 이면엔 언론과 토건세력 담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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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오른쪽은 5월 3일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각각 실린 1단짜리 기사다. 2~3문장의 이 짧은 기사는 밑도 끝도 없이 태영건설이 ‘세이프티 퍼스트 선포식’을 연다는 내용이다. 선포식을 왜 여는지 배경 설명은 일절 없다. 동아일보는 B4면 ‘태영건설 세이프티 퍼스트 선포식 열어’라는 제목을, 조선일보는 ‘임직원들과 안전 최우선 선포식’이란 제목을 달았다.

태영건설은 건설현장의 중대재해를 예방하려고 4월 30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선포식을 열었다. 4월 30일 열린 선포식을 5월 3일자 일간지에 싣는 것도 이상했다.

왼쪽은 그보다 조금 앞선 4월 28일자 한겨레에 실린 ‘근로자 작업중지권 시행… 건설현장 안전관리에 총력’이란 제목의 기사다. 이 역시 태영건설 기사다. 한겨레 기사는 태영건설이 ‘안전관리 개선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엔 ‘안전보건위원회’를 신설하고, ‘안전 감시단’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겨레 기사에도 태영건설이 왜 안전관리 계획을 새로 세우고 선포식을 여는지는 단 한 줄도 언급이 없다.

이 느닷없는 기사의 배경은 단순하지 않다. 배경을 이해하려면 2~4월까지 여러 신문에 흩어져 보도된 건설현장 사망사고를 읽어야 한다.


2월 11일 한겨레 8면에 실린 노동부 발표 기사에 태영건설이 등장한다. 이날 한겨레는 태영건설에 주목조차 하지 않았다. 한겨레는 노동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671곳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80%가 50인 미만 작업 사업장이라는 논점에 집중했다. 최근 중대재해법이 공포됐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은 무려 3년이나 적용이 제외됐다.

한겨레는 기사 끝에 “하청노동자에 대해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처벌받은 406개 원청 사업장도 별도 공표대상으로 포함됐다”며 대우, 포스코 등 여러 건설 이름을 나열하면서 ‘태영건설’을 빗겨 지나가듯 흘렀을 뿐이다.

이 한겨레 기사엔 ‘연 2명 이상 산재사망 발생 기업’을 표로 정리했는데, 여기에도 태영건설 이름은 없다.

한 달 뒤 내일신문은 3월 17일자 17면 ‘중대재해 사망자 40% 하청노동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태영건설 사망사고 사례가 나온다. 그러나 이 기사 역시 태영건설에 주목하지 않았다. 내일신문은 올해 1~2월에 중대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89명 가운데 40%(36명)가 하청노동자였다는 데 주목했다.

내일신문은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이 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담았다. 전체 산재 사망자의 절반이 건설현장에서 일어나고, 그 가운데 대부분이 하청노동자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히려 산재 사망 가운데 하청노동자가 40%밖에 안 된다는 게 더 이상하다. 올 1~2월 산재 사망만 집계하다 보니 표본이 너무 적어서 그렇다.

아무튼 내일신문 기사 안엔 지난 1월 20일 경기 과천의 태영건설 공사현장에서 하청업체 삼현건설 소속 이주노동자(61)가 고강도 콘크리트 파일을 옮기다가 떨어진 파일에 깔려 숨졌다는 태영건설 하청노동자 사망 사례가 나온다.

동아일보 4월 22일자 B4면 ‘1분기 10개 건설사 공사현장서 근로자 14명 사망’이란 제목의 기사는 “1분기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건설사는 태영건설(총 3명 사망)이었다”고 소개했다.

산재사망이 작은 사업장에서 더 많이 일어나는데, 해당 정부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시공능력평가 상위 100대 건설사 통계만 내놨다.(1분기 사망사고 발생건설사 명단 공개, 국토교통부, 2021.4.21.) 그걸 동아일보는 그대로 받아썼다. 국토부 보도자료에 1분기 사망사고를 낸 건설사 10곳이 아래 표로 정리돼 있다.


올들어 태영건설 공사장에선 앞서 내일신문이 보도한 1월 20일자 사망사고 외에도 2월 27일과 3월 19일에도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1월과 2월 사망사건은 같은 과천지식정보타운 공사장에서 일어났다. 한 달 전 사망사고가 일어났는데도 관리감독을 강화하지 않았다. 태영건설 공사장에선 지난해와 지난 2019년에도 사망사고가 일어나 3년 연속 산재 사망자를 냈다.

태영건설 입장에선 억울하기도 하다. 건설공사가 대부분 하청 다단계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실제 시공은 태영이 아닌 하청사가 맡는데, 원청이 하청 안전사고까지 관리해야 하니.

반대로 노동자 입장에선 이를 ‘위험의 외주화’라고 부른다. 원청이 위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외주화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오랫동안 ‘위험의 외주화’ 주장을 외면했다가, 최근 하청 사업장에서 사망사고가 잇따르자 원청의 책임을 강화했다.

지난해 1~10월까지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노동자는 모두 126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103명은 사업비 50억원 미만의 중소 건설현장에서 일어났다. 그만큼 원청에서 하도급받은 하청 현장에서 건설사고가, 그것도 사망사고가 집중돼 일어난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제조업 등 나머지 사업장에서 사망 등 중대 재해가 줄어드는데도 건설업에서만은 사망자가 늘고 있다. 지난해 전체 산재 사망자의 절반이 넘는 519%가 건설업에서 일어났다.

정부가 연간 산재 사망자를 500명대로 줄이겠다고 했지만, 지난해에도 산재 사망자는 800명 넘게 발생했다. 전체 산재 사망자의 절반이 건설업에서 일어나고, 건설업 중에서도 하청이 맡은 규모 작은 사업장에서 집중 발생하니, 당연히 정부의 관리감독은 중소규모 건설현장에 몰릴 수밖에 없다.

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태영건설을 첫 특별감독한 결과 산재보고 의무 위반 등 59건의 법 위반을 적발하고 2억4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번 특별감독은 건설 현장뿐만 아니라 태영건설 본사도 감독했다. 그 결과 노동부는 “태영건설 대표이사가 경영활동에 있어 안전보건 분야 관심이 적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5월 3일 밑도 끝도 없이 태영건설의 ‘세이프티 퍼스트 선포식’을 보도하면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나아가 언론은 맥락 없는 선포식 기사만 쓴 게 아니다. ‘공원 품은 쾌적한 주거환경’(동아 2월 4일 D3면), ‘드론 활용한 3D 모델링 건축기술 앞장’(매경 3월 23일 B6면), ‘탄소중립 도시 선도’(내일 5월 11일 6면) 같은 기사로 태영건설을 홍보하는 데 앞장섰다.

가장 황당했던 건 조선일보 5월12일자 B1면에 실린 ‘도롱뇽부터 이사, 아파트 청약 연기’라는 제목의 태영건설 기사다. 태영건설이 짓는 경남 양산의 사송 더샵 데시앙 3차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멸종위기종인 도롱뇽이 무더기로 발견되자 태영건설이 도롱뇽을 보호하려고 입주자 모집공고 승인 취소를 신청했다는 내용이다.

노동자 사망은 외면하면서 도롱뇽 보호엔 지면을 할애하는 조선일보 보도 태도를 보면서 유신 말기 ‘크낙새 보도’가 떠올랐다.


유신 말기인 1978년 3월 20일 저녁 종로5가 기독교회관 9층 기독교방송사 보도국에 젊은 여성 해고 노동자 30여 명이 들이닥쳤다. 동일방직, 원풍모방, 방림방적, 진로주조, 해태제과 해고자들이었다. 이들은 노동자 복직투쟁은 외면해온 언론에 항의하며 생방송을 일시 중단시키고 방송국장 면담을 요구했다. 기자들은 “배우지 못한 것들이 여기가 어디라고”하며 소리쳤다.

당시 노동자들은 “광릉에 크낙새가 죽으면 크게 보도하면서도 노동자가 죽어가도 거들떠보지도 않느냐? 사람 목숨이 새만도 못하냐?”고 항의했다. 우리 언론은 1977년 3월 광릉숲에서 천연기념물 크낙새 한 마리가 야생동물에게 물려 죽자 1년 가까이 주요 뉴스로 다루면서도 100여 명의 해고 노동자 복직투쟁은 외면했다.

크낙새를 죽인 게 농약도 아니고, 사냥총도 아니었다. 같은 야생동물인 담비 소행이었다. 자연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인데도 언론은 담비를 ‘숲속 깡패’로 부르며 화풀이를 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