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같고 또 다른 MZ세대의 노조

[이슈②] “노-노 갈등보단 실적 내고도 분배 안 하는 자본에 대한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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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적 조직화에 나선 MZ세대 노동자를 바라보는 기성 언론의 시선이 자못 흐뭇하다. 그들의 거침없는 행보에 박수치면서, 기존 생산직 노동조합의 잘못된 행태 때문에 이런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 때문에 MZ세대 노동자들의 목소리 내기가 쉽게 노-노 갈등으로 묘사된다. '공정의 가치' 훼손에 분노한 MZ세대 노동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기존 노조 운동에 환멸을 느껴 독자적 노조를 만들고 있다, MZ세대 노동자의 이 같은 선택에 대해 기존 노동운동은 반성 하고 MZ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노조로 바뀌어야 한다, 라고 말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MZ세대 노동자 조직이 주목받는 게 처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 시행될 때 이른바 '인국공 사태'가 터졌고,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청년 조합원들이 민주노총 소속 노조를 탈퇴하고, 정규직 전환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청원을 조직해 35만여 명의 동의를 받아냈다. 약 3년 전쯤엔 IT·게임업계에서 2030세대 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노조가 결성돼 화제를 모았다. 젊은 노동자들은 '크런치모드'로 대표되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장시간 노동을 유도하는 임금제를 개편하는 성과를 이뤘다. 또한 젊은 조합원들은 부분 파업을 선언하고 함께 영화관을 찾아 단체로 영화를 관람하기도 하면서 노조활동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SK하이닉스 직원이 CEO를 비롯한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일 한 통이 발단이 돼, 주요 기업들에서 MZ세대 노동자의 요구들이 모이는 상황이다. "성과급 산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해 달라" 는 요구는 자글자글 끓어오르던 '공정성' 담론과 만나면서 그 여파가 컸다. IT, 화학, 철강 등 주요 기업에서 성과급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고, 인력 유출을 우려한 기업들은 각각 보상을 제시하며 일률적 연봉 인상을 감행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MZ세대 노동자들의 불만이 노조 결성으로도 이어 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의 보도처럼 독자적 조직화 길을 걷는 MZ세대 노조가 투쟁의 '투'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지는 섣부른 일반화의 측면이 있다.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 위원장은 "SK하이닉스 성과급 논란과 이후 펼쳐진 공정성 이슈가 노조 결성의 트리거가 돼 노조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유 위원장은 LG전자 사무직 직원들의 불만이 여러 해 동안 누적돼 노조 설립에도 탄력을 받았다고 말했다. 노조 설립에 관한 의견을 묻고, 노조 설립신고증을 내기까지 열흘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말한 직원들의 불만은 다양했다. 경쟁 기업과의 급여 차이, 장시간 노동의 축소 보고, 실적에 비례하지 않는 성과 평가와 이로 인해 적어지는 성과급, 소통 창구의 사실상 부재 등이었다.

입사 4년 차 유 위원장의 불만도 날로 깊어 지고 있었고, 그는 2월 17일 블라인드에 노조 설립 의향을 물어보는 글을 올리게 된다. 반응은 거의 반반이었다. 흐지부지될까봐 우려도 컸다.몇 년 전에도 노조 설립을 추진하던 과정이 있었는데 사측의 외압, 회유 등으로 와해가 됐다는 '소문'을 들은 터다. 유 위원장은 블라인드에 글을 게시한 그날 바로, 퇴근하고 혼자 노무법인을 찾아 노조 설립 자문까지 받았다. 3일 뒤엔 익명이 아닌 실명으로 활동할 수 있는 노조 설립 초동 주체들을 모았다. 모인 임원들과 한번 노무법인을 찾았고, 25일 고용노동부 서울 남부지청을 찾아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을 접수했다. 현재 약 3500명(2021.4.17. 기준)의 조합원이 모였고, 온라인을 통해 계속 가입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LG전자 사무직노조에가입할수있는자격을가진 직원들은 약 2만5천 명 정도다.

LG전자 사무직노조는 산별, 지역, 업종에 따른 상급단체가 없다. 유 위원장은 '아직' 그럴 필요를 못 느껴서 정하지 않은 것일 뿐이라며 "사실 직원들이 노동계에 큰 관심이 없다. 양대노총의 특징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한국노총 소속의 생산직 노조가 제 역할을 못하다 보니 약간의 불신이 있는 정도였다"라고 설명했다. LG전자 직원들의 불만이 쌓일 동안 한국노총 소속 LG전자 노동조합은 31년 무분규 임단협 타결을 이끌었다. LG전자 사무직노조를 뒤이어 4월 7일엔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가 출범했다. 현대차그룹에선 8년 차 이하 직원들로 임시집행부를 꾸리고 'HMG 사무연구노조 (가칭)' 설립을 추진 중이다.

"재벌기업에 주목해야"

<능력주의와 불평등>에서 홍세화 선생은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의 성품이라는 의미의 '캐릭터'에는 관심이 없다. 자질 중에는 기능적인 것만이 중요하다. 쓸모 있는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고, 구매력을 가졌는지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MZ세대의 요구에 경청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 발화하는 MZ세대는 대기업 사무직들로, 대체가 어려운 노동력을 제공하고, 또 이들은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이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들을 적대시하기 어렵다.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대기업의 현재 조건이다. 안재원 금속노조노동연구원 연구원장은 "사무직 노동자들이 공정한 분배를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말로 재벌사의 경영 환경이 그만큼 좋아졌다는 것이다. 반도체부터 시작해서 IT, 게임, 자동차, 조선업계에서 성과급 논란이 나오는 것은 '많이 벌고 있는데, 왜 안 주냐' 이런 요구 아닌가"라며 "기업 입장에서도 이들의 요구를 안 들어주면 엔지니어 같은 중요 인력을 경쟁사에 뺏기게 되니 이러한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할 수 밖에 없다. 만도의 경우 지난해부터 회장이 나서 엔지니어 임금을 10만 원씩 별도로 인상해 주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재벌 기업들의 경영 성과는 코로나19라는 상황이 무색하게 청신호를 켜고 있다. 성과급 논란을 비롯해 단체행동, 노조 결성 등이 벌어진 기업들의 가장 최근 실적을 살펴보자. LG전자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63조2620억 원, 영업이익 3조1950억 원, 영업이익률 5.1%를 달성하며 2010년 이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1.1% 증가했고, 이번에 처음으로 연간 3조 원을 넘었다. 현대차는 코로나 여파에도 2년 연속 매출 100조 원을 돌파했다. 영업 이익은 2조7810억 원으로 대규모 리콜 사태 등으로 전년 대비 22.9% 감소했지만 4분기 실적이 전년 대비 40.9% 느는 등 올해도 상승세가 계속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
이익이 5조126억 원으로 전년 대비 84.3% 증가했다.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은 16%로 삼성전자(12.3%)보다 높다. 네이버 역시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영업이익은 1조2153억 원을 기록했는데 전년 대비 5.2% 증가한 역대 최고치다. 코로나 시기 비대면 플랫폼을 성장시켜 코로나 특수를 누렸다. 이밖에 카카오는 영업이익 4560억 원(영업이익률 11%), SK텔레콤은 영업이익 1조3000억 원(영업이익률 21.8%)을 기록했다. 성과급 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인력이탈을 막기 위해 올해 초 일괄 연봉 인상에 나선 게임사 역시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했다. 국내 10대 상장 게임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23%에 달할 정도다. 사무직 노동자들이 단체행동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1분기 38억5800만 달러 수주액을 달성했다. 이는 전년 동기 실적이었던 9억7400만 달러보다 296%가량 급증한 성적이다.

안재원 연구원장은 "현대중공업의 경우 최근 임단협이 부결됐다. 수주가 어려웠다가 지금 막 들어오고 있는데 이를 왜 고려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반영된 결과다. 다른 조선업에서도 비슷한 요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지금 젊은 사무직 노동자 움직임의 본질은 자본에 대한 불만인데 마치 노조에 불만이 있는 것처럼 교묘하게 비틀고 있다"라고 노-노 갈등을 조장하는 해석을 비판했다.

다만 금호타이어의 경우, 지난해 1, 2분기 연속 적자로 경영 실적은 안 좋은 상황이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6.5% 감소한 364억 원이다. 매출도 8.4% 감소한 2조1706억 원에 그쳤다.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동조합은 성과급 요구보다는 생산직과의 격려금 차별 등의 이유가 주효하다. 이밖에 4년 연속 기본급 동결, 연차수당 미지급, 직급체계 변경 등으로 내부 불만이 오랫동안 누적됐다.

김한엽 금호타위원장 사무직노조 위원장은 노조 결성의 이유로 '생존권'을 꼽았다. 당장 사무직 노동자를 대변할 조직이 없다 보니 계속된 경영 위기 속에서 목숨이 좌지우지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오랜 워크아웃을 거쳐 2018년 중국 자본에 매각된 금호타이어는 자금 지원 등 상당한 도움을 받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론 직원들의 희생이 영업정상화의 바탕이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경영 환경은 불안정했고, 사무직 노동자들은 회사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어떤 결정이 노동자들에게 유리한지 각종 정보로부터 소외돼 있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규약상으론 생산직 위주로 꾸려진 금호타이어지회에 사무직이 가입할 수도 있었지만 전례도 없었고, 사무직 노동자들에게 제안도 없었다. 모든 결정이 사무직 노동자를 패싱하는 것 같은 소외감을 느꼈고, 이제라도 주체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표교섭권을 얻긴 어렵겠지만 사무직 노조가 존재하는 이상 모인 의견을 쉽게 무시하진 못할 것이다. 기존 조합의 의견을 지지할 수도 있고, 또 회사가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 이를 반대하면서 존재감을 키우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대기업 사무직 노조 결성 흐름, 같게 봐선 안 돼

'HMG 사무연구노조' 설립을 준비하는 MZ세대 노동자들은 최근 표출된 성과급처럼 보상 문제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삼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역대 최고 수준의 매출액을 기록했지만, 노사는 전년보다 후퇴한 수준의 기본급과 성과급에 합의했다. 반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018년 22억1300만 원, 2019년 34억200만 원, 2020년 40억800만 원으로 보수를 계속 올려 원성을 샀다.
이에 더해 기존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생산직 위주의 임단협을 진행하는 바람에 사무직, 연구직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불만이 쌓여 왔다. 위의 두 노조는 상급단체는 없지만, 기존 노조운동에 적대적이지 않은 반면 'HMG 사무연구노조'는 기존 현대차 지부에 강한 반감이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한노총과 민노총 쪽의 조언은 구하되, 한쪽을 선택할 가능성은 작다. 노사관계에 경험이 많은 실력 있는 노무법인을 선택할 것이다"라고 네이버 밴드를 통해 밝히고 있다.

기존 노조에서 완전히 분리된 노조, 다른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익명의 직원들도 있지만, 현대차지부의 성과 위에서 사무직 노조가 배제됐던 구조를 변화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HMG 사무연구노조가 모으고 있는 '직원의 소리'에서 한 직원은 "생산직 노조의 과오도 있었지만, 그동안 연월차 동시 시행, 여름 휴가, 각종 휴일, 유연근로제, 자율복장 등에 있어서는 다른 회사보다 나은 취업규칙, 단체협약을 만들어 놓은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사원대리에 적용되던 취업 규칙과 협약의 이점은 그대로 유지하거나 거기에서 더 개선되는 방향으로, 현대기아 모비스에만 적용되던 이점들을 계열사에 전개하거나, 내용상으로도 재택근무나 자기계발과 휴직 등 더 나아진 복지를 제공하도록 논의되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민주노총에 둥지를 튼 새로운 MZ세대 노조도 있다. LG베스트샵에서 판매를 맡은 노동자들이 블라인드를 통해 노조 설립을 추진하다 금속노조에 문을 두드린 것이다. 지난 4월 5일 모바일 가입원서가 오픈채팅방을 통해 배포됐고, 현재 가입자는 600명이 넘는다. LG베스트샵은 전국 450여 개 매장에서 450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이들 노동자들은 성과를 근거로 한 무분별할 해고 금지, LG전자의 물동량 예측 실패에 따른 문제를 현장의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밖에 MZ세대의 노조 조직화 흐름이 기존 노조 운동을 부정하는 식으로 홍보되지만 이미 기존 노조 안에 상당한 젊은 조합원들이 유입돼 있고, 이들이 노조 운동의 온도를 바꾸고 있다는 이야기도 필요해 보인다. 곽이경 민주노총 미조직국장은 "MZ세대 노동자를 단순하게 민주노총에 적대적인 세대라고 볼 문제는 아니다. 이미 그 세대가 민주노총 안에서 노조를 만들었고, 또 민주노총 안에서 MZ세대가 가지는 고민을 녹여내며 어떻게 하면 민주노총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함께하고 있다. 지난 3년간 조합원 평균 연령이 2세 정도 떨어졌는데, 그만큼 젊은 조합원 유입이 많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이어 "노조를 설립한 뒤 안착, 성장하는 과제도 굉장히 중요하다"라며 "노조 간부층이 두꺼워져야 안정이 되는데, 그러한 고민은 모든 노조의 고민거리"라고 덧붙였다.

MZ세대 하청 노동자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 졌던 금속노조 만도헬라지회의 상황은 노조 안정화의 필요성을 방증한다. 만도헬라 협력 업체 직원들은 2017년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하며 만도헬라지회를 결성하고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투쟁에 나섰다. 사측은 파견법 위반 등의 소취하를 요구하고 금속노조를 탈퇴하면 직접고용을 하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일부 집행부가 이를 덥썩 받고 조합원들의 금속노조 탈퇴를 이끌어 논란이 됐다. 300여 명이었던 지회의 조합원은 현재 30여 명으로 노조 활동을 거의 못 하고 있는 상태다. 탈퇴한 이들로 꾸려진 기업노조가 만들어졌지만 별다른 활동은 없다. 이상민 만도헬라지회 수석부지회장은 "계약 만료로 회사를 나간 계약직들이 350명이 넘어간다. 회사가 쪼개기 계약을 하면서 사람들을 내보내는데 아무런 제어가 없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들도 정규직 전환 이외에 다른 처우가 나아지지 않으니 퇴사도 빈번하다. 기존 하청 시절과 비교해 모욕적인 대우는 줄었지만, 조건은 별반 다를 바 없다. 원래 투쟁하던 노조를 잘 유지하면서 노동권에 대한 교육도 받고, 노조 활동에 대한 단계를 잘 밟아나갔다면 지금의 상태보다 훨씬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쉬움이 크다"라고 말했다.
  • 문경락

    인체의 구조가 어느 부분이 약화되면 스스로 치유하는 신비한 기능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의 노조도 어는 한 부분이 잘못되면 스스로 자기정화를 통한 치유가 이루어 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