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뉴스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고 대한민국이 너무 늦은 판결과 법 개정으로 제주 4.3항쟁 피해자들에 대해서 인정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은 위의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무장대 수괴급이나 희생자들"은 제외한 것이다. 또한 개정된 제주4.3특별법 역시 헌법재판소의 판단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자 일부 진보쪽 인사들이 4.3 항쟁 무장투쟁의 가담자 혹은 연루자들에 대해서도 관용과 포용의 정신으로 '희생자'에 포함시키자는 견해를 제기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희생자들’이 바로 제주 4.3 '각명비'에서 지워진 이름들일 것이다.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 설치한 거대한 원형 공간에는 1만4천명이 넘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마을별로 새겨진 각명비가 있다. 그 속에는 지워진 이름들이 눈에 띈다. 바로 2000년 제주 4.3 특별법 제정이후 희생자 신청을 했다가 유형 무형의 철회 압박을 받아서 지워진 이름들이다.
지금 이들의 이름을 되살리는 일이 과연 관용과 포용의 문제인가. 그리고 과연 누가 누구를 관용하고 포용한다는 건가. 필자는 이 두 가지 논점을 제기하고 싶다.
4.3항쟁의 무장대원들, 즉 빨치산들 그들은 4.3항쟁의 일부다. 그들이 바로 4.3항쟁의 주체다. 과연 그들을 제외하고 제주 4.3항쟁을 말할 수 있는가. 제주 4.3항쟁에 정확한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 4.3항쟁을 기념하고 기억할 수 있는가.
▲ 각명비 [출처: 제주4.3평화재단] |
이는 그들을 관용하고 포용하는 문제가 아니다. 4.3항쟁을 말하고 추념하면서, 이들 주모자들과 참가자들의 존재를 배제하고 지운 상태에서 4.3을 추모하겠다는 것 자체가 역사 왜곡이고 역사에 대한 폭력이다. 게다가 지금 말로는 ‘제주 4.3 항쟁’이라고 지칭하면서, 항쟁의 참가자가 아니라 '피해자'들만 있다. ‘항쟁’이라고 지정하였으면서도, 무엇에 대한 항쟁이라는 말은 여전히 채우지 못하고 '4.3 항쟁'이라고 밋밋하게 부를 뿐이다.
결국 문제는 있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포용하지 못하는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및 사회의 시각과 이념이다. 단지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이후 60,70년대나 전두환등 신군부 쿠데타이후 1987년 이전의 권위주의 정권 시대만이 아니다. 민주화 이행이후 한때에는 '반공을 국시'라고 당당히 말했던 이른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과 헌법, 그리고 그 헌법의 최종 해석권자이자 판정관으로 군림하는 헌법재판소의 내재적 한계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또한 항쟁에 무장대원으로 참가한 이들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말하는데, 사실 "관용"이라는 말이야말로 조심해서 사용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관용'을 말하는데 있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격에 두고 말할 수 없다. 가해자에게 관용을!이라고 말할 수 있어도 피해자에게 관용을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제주 4.3 항쟁이 여전히 '반쪽의 역사'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이 문제는 현재의 대한민국과, 그 사회안에서 사는 사람들, 그리고 4.3을 연구하거나 발언하는 사람들의 이념의 한계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의 시각을 가진 이들은, 이념과 역사를 구분하자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철저히 자신의 이념, 바로 비좌파적인 혹은 나아가 반좌파적인 이념과 세계관에 의해 한국 현대사를 평가하고 서술하고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그런 시각이 현재 극우 혹은 뉴라이트의 사관에 대비해서 심지어 '진보'라고 주장되고 있지만, 사실 양자는 대한민국 안의 양대 주류적 시각이기도 하다. 민주화이행이후 줄곧 보수 대 자유주의 양당 독점구도로 점철된 한국의 정치지형처럼 말이다.
현대사의 인식에 있어서 현 집권정당과 그 지지자들 그리고 넓은 의미의 민주주의자들 역시 우파와 마찬가지 잘못을 범하고 있다. 역사인식과 과거사를 인식하는데 있어서 우파나 자유주의분파나 반 좌파라는 점에서 즉 반공이라는 점에서 별로 다르지 않다. 단지 그들의 차이는 그들이 주관적으로 포용하는 이념의 범위에 약간의 차이일뿐, 그들 둘 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거나 '기억'하지 않고 있다. 한국 현대사를 지배해온 보수우익과 자유주의, 양대 정치 이데올로기는 '좌파 배제'(넓은 의미에서 '반공')라는 점에서 동일한 노선을 취하고, 따라서 동일한 한계를 노정한다.
그리하여 지금 한국 현대사는 여전히 반쪽이다. 특히 반일 반제국주의 해방투쟁과 해방정국이후 현대사에서 좌파운동과 민중운동에 대해서 보이는 편협함과 한계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제주 '4.3 항쟁'은 이를 보여주는 한 가지 예일 뿐이다. 해방정국의 ‘여순반란(여수순천반란)’부터 70년대 ‘광주대단지 폭동’, 그리고 한때는 마찬가지로 ‘폭동’으로 불렸던 ‘5.18민중항쟁’등 한국 현대사의 다수의 중대 사건들이 다 마찬가지 운명을 거쳐왔다.
사건으로서 ‘4.3항쟁’ 역시 역사적 상징투쟁의 장소다. 그리고 지난 수십년간 그리 했듯이 이 사회를 근본에서 변화시키려는 이들의 실천과 투쟁이 제주 4.3의 이름을 새로이 ‘정명’할 것이고 그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특정한 사회운동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호명하는 행위, 그리고 나아가 그 호칭 자체는 전혀 자명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자체가 역사를 상징화하는 담론투쟁의 일부"이며, "모든 사건의 역사는 그 사건을 호명하고 기억하는 상징투쟁의 역사"인 것이다(졸고, "촛불의 운동정치와 87년체제의 '이중전환'"(2018), 63-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