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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개 시민사회단체, “개인정보 다루는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직영화해야”

건보 고객센터 파업…“국민 민감 정보, 용역업체가 다뤄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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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를 지지하고 나섰다. 보건의료, 인권, 법률 단체들은 개인정보가 사용되는 고객센터 업무 특성상 민간위탁으로 운영돼서는 안 된다며 직영화를 촉구했다.


앞서 지난 1일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속한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생활임금 쟁취, 근로기준법 준수, 건강보험 공공성 강화, 고객센터 직영화 등 4가지 요구를 걸고 파업에 돌입했다. 오늘(4일) 기준 파업 4일 차다. 지부는 지난해부터 건보공단에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른 정규직 전환을 위한 노·사·전 협의회를 요구했으나 구성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논의를 위한 이사장 면담도 요청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9월부터는 지부와 민간위탁 업체 간 임금 교섭이 진행됐지만 업체가 단 한 조항의 수정안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지부는 파업에 들어가게 됐다.

‘재산, 진료 정보’도 조회되는 건보 업무
“고객센터 민간위탁, 가입자 권리 침해해”


109개 시민사회단체들은 4일 오전 여의도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강보험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은 무엇보다 공공성이 중요”하다며 건보공단 고객센터 직영화를 위해 공공기관의 감시자로서 건강보험공단 이사장과의 면담을 추진하는 등의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공단에서 수행하는 건강보험 자격, 보험료, 보험급여, 건강검진, 노인 장기요양 보험을 비롯해 4대 보험 징수통합과 관련된 업무 등 1,060여 개의 업무가 현재 민간에 위탁돼 있다. 이 업무는 건강보험공단의 핵심 업무이며, 민간에 위탁할 수 없는 업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 업무 수행을 위해서는 가입자의 개인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우리는 공단이 공공기관이며, 이 정보를 제대로 관리할 것이라고 믿기에 이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민간에 위탁한 것은 가입자들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민간위탁 업체들은 “상담사들에게 불필요한 안내 멘트를 요구하고 제대로 상담을 하기 보다는 오로지 콜 수를 높이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가입자들이 충분히 상담받을 권리를 훼손한다. 건강보험공단과 민간위탁업체로 나뉘어 업무가 진행되다 보니 연계성도 떨어진다”며 이는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의 민간위탁은 가입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열악한 노동환경과 관련해 “매일 평균 120통의 전화를 받고,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이 일하는데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콜센터 업무를 비롯해 시기마다 닥치는 중요한 업무들도 감당하는 노동자”라며 그런데도 “불안정한 민간위탁으로 내모는 것은 공적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기자회견에서 “고객센터 위탁 업체가 수시로 변경되면서 노동의 지속성, 건강보험의 불안정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시민들의 재산 상태, 진료 정보 등 국민의 민감 정보가 용역업체에서 다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그는 “건보공단 고객센터는 전형적인 민영화의 폐해와 닮았다. 공공이 직접 해야 할 일을 민간에 맡겨서 이렇게 된 것”이라며 “정부는 ‘문재인 케어’라는 이름으로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공단도 공공성이 우선 목표라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이런 정부와 공단이 민간위탁으로 고객센터를 운영하는 것은 가장 큰 모순”이라며 직영화를 촉구했다.

기선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는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전문적이고 고된 업무를 수행하지만, 이는 감당해도 되는 업무로 치부되고 있다. 이는 이 사회의 여성이라는 착취 고리 때문이다. 삶에 필요한 정보를 안내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이지만 ‘친절’이라는 부담도 받아왔다. 단지 노동권의 문제만이 아니다. 코로나19 대확산 시대와 긴급 조치들에 불평등은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며 “외면당해온 여성에 대한 불평등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숙영 지부장은 “상담 과정에서 고객의 재산뿐 아니라, 입·출국 정보, 혼인 여부, 회사가 어디며 그 동료는 누구인지 등의 정보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공을 들여 키웠다’는 업체는 우리에게 ‘계산기’만 들이밀었다. ‘전화 빨리 받으면 가점 몇 점’, ‘등급 몇이면 월급이 얼마’. 12년 동안 바뀐 그 많은 업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월급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는 상담의 질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어떻게 전화를 빨리 끊을지, 더 짧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할 뿐이다. 도급업체들이 공을 들이는 작업은 바로 이것”이라며 “건강보험 공공성 강화를 통해 마음 놓고 고객에게 안내하고, 고객의 정보를 자신 있게 보호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보 고객센터 노동자, '3단계 민간위탁’ 전환 대상이었나?

건보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건보공단이 필요한 노동력을 직접고용 하지 않고, 다른 민간기업이 고용한 노동자를 통해 노동력을 받고 있는 점에서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노조는 이들이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상의 ‘용역 노동자’이며 상시·지속적 업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1단계 대상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이 돼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용역은 1단계로 노·사·전 협의체를 구성하고 정규직 전환을 논의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단은 3단계 ‘민간위탁’ 대상에 해당하는 별도 협의기구를 통해 우선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협의기구는 2019년 10월 한 차례 회의를 진행한 후 현재까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계약 명칭과 관계없이 국가·지방계약법령 등에 따라 용역계약 시 공공기관에서 인건비를 구체적으로 산정하고 채용해야 할 근로자 수를 정하는 경우”를 1단계 정규직 전환 대상인 ‘용역’으로 보고 있다. 건보공단 역시 고객센터 운영을 위해 인력 기준을 정하고, 인력당 도급 단가를 정한다. 건보공단의 ‘건강보험 지역본부 고객센터 위탁운영 업체 선정을 위한 제안요청서’, ‘월별 구성인력별 산출근거표’ 등의 자료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사무공간, 장비, 시설, 시스템 등도 공단이 제공하고 있다. 노조는 민간위탁의 경우에도 정부가 “인건비·채용인원 등을 구체적으로 산정하지 않고 시설 전체나 특정 업무(공공서비스) 등을 포괄적으로 위탁(민간위탁)하는 경우”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1단계 용역에 해당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본부 고객지원실과 지역본부 상담지원부 산하에 전국 7개 고객센터를 11개 협력사에 위탁해 운영 중이다. 위탁비는 월 약 46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 고객센터 노동자는 총 1620명이며, 파업에는 94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