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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노동자, 불안정·주변 노동으로 ‘노조’하기도 어려워

민주노총, 장애인 노동자 권리보장 가이드라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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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대기업에서 장애인고용의무를 회피하거나, 장애인 노동자를 불안정한 주변 업무로 내모는 경우가 다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알바 형식으로 채용된 장애인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조직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거나 조직화가 어려워, 권리 요구에 큰 제약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장애인 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단체협약 체결 및 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노총은 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노총 장애인 조합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아울러 조사 결과를 토대로 장애인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모범단체협약안 및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앞서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철폐연대)는 지난해 7~8월간 민주노총 산하 123개 사업장 및 장애인 조합원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및 면접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장애인 노동자’, 불안정·주변 노동으로 ‘노조’하기도 어려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른바 ‘좋은 직장’으로 불리는 대학, 병원, 금융권 등의 대기업들이 의무고용비율을 채우기 위해 비정규직 단순 업무 중심의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귀연 철폐연대 노동권 연구소장은 “규모가 큰 비제조업 사기업에서는 장애인의무고용을 지키지 않거나 주변 업무에 시간제·단기계약직 비정규직으로 장애인을 채용해 장애인의무고용 비율을 마지못해 채우는 수준”이라며 “심지어는 장애인용 업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탄탄한 사업장의 경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기도 하지만 승진 등의 차별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S병원의 경우 2012년 6개월 계약직 장애인 노동자를 수십 명 채용해 놓고, 2년이 되기 전에 계약 종료를 시도했다. 이에 노조는 회사와 교섭을 통해 이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조합원으로 조직한 바 있다. 하지만 회사는 장애인 업무를 단순 업무로 한정해 업무 순환과 승진 체계에서 여전히 배제하고 있다.

이외에 불안정 고용 형태로 채용된 민간 대기업의 장애인 노동자들은 회사 고용체계에 통합돼 있지 않아 노조 가입도 쉽지 않다. 금융사 노조 간부는 실태조사에서 “알바 같은 것으로만 의무고용 비율을 채우기 때문에 (사업장의 장애인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가입시키기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또한 장귀연 소장은 “사기업에서는 장애인 채용, 업무나 시설 등의 편의제공 등을 사규로 명시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며 “근로지원인 제도 역시 사기업에서는 아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2019년 민간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2.79%로, 의무고용률 3.1%에 여전히 미달한다. 특히 30대 대기업에서 의무고용률을 지키는 사업장은 1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장애인 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장애인 임금근로자 중 43.9%가 임시 일용직으로, 전체 인구의 임시 일용직 비율인 31.4%를 훌쩍 넘어섰다.

이 밖에도 공무원 및 일부 공기업 등은 사기업보다는 의무고용비율을 준수하는 편이지만, 업무 배치 제한으로 인사고과와 승진 등에서의 간접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장애인식개선교육도 의무교육 중 하나로 시행되고 있지만, 개별적인 온라인 교육자료 시청 정도에 머물고 있다. 교육 내용 역시 장애인 노동자의 권리 보장이 아닌, 장애인 배려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장귀연 소장은 “소규모 용역회사 일자리는 업무분장이나 승진, 승급 체계가 없기 때문에 딱히 차별할 거리도 없다”며 “제조업 공장 생산직의 경우도 회사 차원에서 먼저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편의제공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장애인 노동자 권리보장 가이드라인 발표

민주노총과 철폐연대 등은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장애인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모범단체협약안을 발표했다. 김혜진 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많은 노동조합에서 단체협약에 장애인 차별금지 조항을 담고 있으나, 대부분 포괄적 선언에 그치고 있다”며 “‘차별적 처우’의 구체 상황이 적시되지 않고, 권리보장을 위한 적극적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채용, 차별금지, 장애인노동자 업무지원,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 존중 등의 내용을 담은 구체적 모범단체협약안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채용에 있어 ‘회사는 장애인의무고용률을 지킨다’는 적극적 요구를 담아내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별도의 업무를 부여하거나 고용형태를 달리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해 승진, 승급, 성과평가, 고용형태 등의 간접 차별을 막아내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장애유형에 맞는 업무 지원과, 안전장치 마련을 비롯해 장애인 노동자의 고충처리를 위한 별도 기구 마련 등의 사항을 명시한다는 계획이다.

노동조합에서도 장애인 조합원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장애인 노동권 교육과 장애인 노동자의 노조 활동 참여를 위한 편의 제공, 장애인 조합원 집단적 모임 구성 등을 추진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정창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위원회 간사는 “얼마 전 민주노총 선거에 후보자들에게 장애인 노동권 관련 질의서를 보냈다. 최저임금 적용제외 폐지 투쟁에 함께할 수 있는지와, 민주노총 산하 노조 단협안에 의무고용률 준수와 장애인 노동권 개선 등을 포함하는 것, 공공부문의 양질의 일자리 마련 투쟁에 나서는 것, 노조 내 장애인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에 대한 질의였다”며 “모든 후보들이 긍정적으로 답변했고, 당선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도 얼마 전 다시 한 번 긍정적으로 답변했다”고 설명했다.

정혜경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민주노총에 장애인 조합원이 많지만, 노조가 이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무엇을 해야 할지, 이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는 없었다”며 “부끄럽게도 민주노총 역시 장애인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아 과징금을 내기도 했다. 앞으로 민주노총은 장애인 조합원을 만나 실태를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해, 노조가 해야 하는 과제들을 잘 발전시켜나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한편 정명호 공공운수노조 장애인노조지부장은 “그동안 장애인은 복지의 수혜자로서 주로 이해되어왔지만, 장애인 운동의 시초 역시 노동권 투쟁이었다”며 “장애인 노동자가 노동을 하면서 보장받아야할 권리를 지키고, 노동을 할 수 있는 권리 역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문경락

    민주노총은 채용, 차별금지, 장애인노동자 업무지원,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 존중 등의 내용을 담은 구체적 모범단체협약안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채용에 있어 ‘회사는 장애인의무고용률을 지킨다’는 적극적 요구를 담아내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별도의 업무를 부여하거나 고용형태를 달리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해 승진, 승급, 성과평가, 고용형태 등의 간접 차별을 막아내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장애유형에 맞는 업무 지원과, 안전장치 마련을 비롯해 장애인 노동자의 고충처리를 위한 별도 기구 마련 등의 사항을 명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