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가 주도했던 ‘바보회’는 힘없는 노동자들일수록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일수록 조직화는 더디게 이뤄졌다. 민주노총이 2017년 이후 유입된 신규 조합원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그 중 비정규직 조합원은 34.9%를 차지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조직률이 그동안 2% 내외에 불과했기에 이들의 노조 가입은 더욱더 반갑다. 지난 3월 6일, 정부민원안내콜센터 노동자 37명 이 다급하게 노조를 설립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전환 논의를 목전에 앞둔 시점이었다. 위탁업체 관리자는 상담사들을 모아 놓고 “말을 잘 듣고 기다리고 있으면 정규직 전환될 거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불쏘시개가 됐다. 노동 조건은 계속 악화하기만 하고 있었으니, 회사만 믿었다간 정규직 전환 논의 역시 고꾸라질지 몰랐다.
정부민원안내콜센터 상담사들은 중앙부처, 지자체, 공공기관 등 316개 행정기관에 대한 민원을 처리하고 각종 정책을 안내하는 일을 하지만 민간 위탁업체에 소속돼 일하고 있다. 위탁업체에선 정규직도 때 되면 갈아 끼우는 부품이었다. 노동자들은 지치면 휴식을 요구하기보다 제 발로 나갔다. 회사는 불만을 가진 노동자들을 스스로 퇴사하도록 만들었다. 겨우 최저임금을 맞춘 기본급 역시 노동자들이 미련 없이 퇴사하는 데 한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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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 정부민원안내콜센터분회] |
석소연 공공운수노조 정부민원안내콜센터분회 분회장은 콜센터 노동자를 전태일 열사와 함께 일 했던 봉제공장 여공에 비유하며 “우리 상담사들은 쉽게 취업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업무를 하면서 어느새 기계의 부품이 됐다”고 말했다.
설립 8개월 된 신생노조는 조금씩 현장을 바꾸고 있다. 우선 정규직 전환을 협의하는 노사전 협의체에 노조가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애초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원청인 국민권익위원회에 항의공 문을 보내며 현장 대리인이 있어야 한다고 촉구한 결과였다.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신청이 종료된 7월 21일에 노동부 담당 번호는 사라지고 ‘110’ 번호만 남 겨져 모든 민원이 정부민원안내콜센터로 들어오고 있었다. ‘청와대 수직 요청’이라며 사전 공지도 없이 넘겨받은 일을 하면서 병가자, 퇴사자들까지 생긴 마당에 더 참아줄 순 없었다. 그 길로 국민청원 글을 올리고, 1인 시위에 나선 석 분회장은 결국 2시간 만에 홈페이지에서 ‘110’ 번호를 내리게 했다.
정부민원안내콜센터분회를 비롯해 다른 신생노조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타투이스트들은 ‘안전하 게 일할 권리’를 외치며 지난 2월 노조를 설립했다. 벌써 400여명의 조합원도 생겼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타투유니온지회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타투의 일반작업화다. 타투를 의료행위로 규정한 현재의 의료법은 대부분의 타투이스트들을 불법화했다. 이 사실을 악용해 타투이스트들을 협박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범죄부터 성범죄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타투이스트들은 최근 의료행위에 문신 시술이 포함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지적하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노동, 언론, 의료, 법률 등 15개 시민사회 단체가 ‘타투할 자유와 권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헌법소원에 힘을 모았다.
지난 7월 17일 노동부로부터 노조신고 필증을 교부받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대리운전노동 조합은 단체교섭권을 확보하고 16만 명의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등록된 카카오모빌리티를 상대로 교섭 을 요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값진 성과도 나왔다.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카카오모빌리티의 사용자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단순 중개 플랫폼이라며 그동안 사용자성을 부정했는데, 대리운전 노조가 여기에 균열을 냈다. 김주환 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하는 것이 정규직되기 보다 더 어려운 현실이었다”라며 “대리운전 노동자들의 절실함을 담아 남은 과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겠다”라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앞두고 제작된 <전태일50> 신문에도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