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에 활발했던 안티조선 운동은 90년대 후반 조선일보의 이장희, 최장집 교수를 향한 터무니없는 사상검증을 둘러싼 지식사회의 고민에서 출발했다. 조선일보는 자유주의자였던 두 교수를 좌익으로 몰아세우며 엉뚱하게도 우파 진영 한 중간에 좌우를 가르는 이상한 전선을 쳤다. 사상과 이념의 차이를 가르는 전선이 아니라 두 거대 보수정당을 기준으로 나눴다.
조선일보의 상식을 벗어난 보도를 보면서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처음엔 놀랐고, 나중엔 대응책을 절감했다. 97년 12월 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로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것도 이 시기다. 민주당 쪽 사람들은 조선일보의 최장집 죽이기가 반세기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낸 민주당(물론 당시 이름은 달랐다) 김대중 정부를 길들이려는 더러운 음모라고 느꼈고, 이는 상당 부분 사실이었다.
자유주의 진영은 2000년 8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4차례나 안티조선 지식인 선언을 발표하며 조선일보를 위축시켰다. 여기에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는 그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조중동과 경제신문 같은 극우 족벌언론에게 위기의 신호탄이 됐다. 안티조선운동이 거세질수록 극우 신문도 더 악바리처럼 달려들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상하게 그어진 전선은 한국 사회의 좌우를 구분하는 말도 안 되는 기준이 됐다.
2000년대 초 시민사회에서 안티조선 운동에 적극 동참했던 단체는 많았지만, 대부분 대표 몇몇이 움직이는 조직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국 네트워크를 가지고 당시에도 60만 명의 회원(조합원)을 보유했던 민주노총은 좀 달랐다. 민주노총은 안티조선 운동을 선언한 조직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조선일보 구독 중단 운동이 실제 가능한 단체였다. 한국 사회 자유주의 지식사회를 총망라했던 참여연대도 상당한 수준의 고공전이 가능했다.
두 단체를 향한 조선일보의 반격도 집요했다. 조선일보는 민주노총에겐 ‘강성 귀족노조’라는 프레임을, 참여연대엔 ‘민주당 2중대’나 ‘시민 없는 시민단체’ 프레임을 씌웠다. 조선일보가 만든 프레임에 보수언론은 대동단결했고, 한겨레와 경향신문 같은 자유주의 언론도 상당 부분 감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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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경 10월 21일 38면 |
10월 21일 매일경제 38면에 실린 ‘전태일 50주기와 민노총의 총파업 예고’라는 제목의 기자칼럼은 조선일보의 프레임 설정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기자는 “민주노총이 갑자기 전태일 운운하는 데서 위화감을 느끼는 중소기업 노동자가 적지 않을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민주노총은 수십 년째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운동을 펴왔는데, 매일경제 기자 눈엔 ‘갑자기 튀어나와’ 전태일을 운운하는 단체로 전락했다. 매경 칼럼은 민주노총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직 노동자 보호를 골자로 한 ‘전태일 3법’ 도입”을 추진해도 비판한다. 민주노총 산하 대기업노조가 채용비리를 저지르면 ‘귀족노조’라고 비난하면서, 민주노총이 5인 미만 사업장과 특고를 위한 입법을 추진해도 맹비난하는 형용모순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앞뒤 맞지 않는 비난이지만 국민들에겐 광범위하게 먹힌다. 그들이 글을 잘 써서 그런 게 아니다. 위기의 조선일보가 만들고 키워온 프레임이 20년 세월 켜켜이 쌓여서 바위처럼 단단하게 국민들 뇌리에 박혔다. 그 결과 민주노총은 ‘동네북’이 됐다. 이 바위를 깨지 않으면 민주노총은 아무리 좋은 의제를 내놔도 이길 수 없다.
그런데도 10년 넘게 민주노총은 선전홍보 전략 없이 표류했다. 3년 전 민주노총 임원 선거 때 금속노조에서 오랫동안 선전 일을 했던 간부가 ‘모든 출마 후보 진영에서 선전 전략은 전무하다’고 꼬집었다. 이번 선거에선 ‘동네북’ 해소책이 나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