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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e Red D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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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진 소금밭을 또다시 직면할 이유 | 박지형(독립 큐레이터)

몇 년 전 신안의 염전에서 임금 체불, 폭행, 비인간적 노동 환경에 내몰린 이들의 이야기가 미디어의 수면 위로 올랐던 적이 있다. 각종 시사 프로그램은 가해자가 누구인지 또 피해자는 얼마나 처절한 시간을 견뎌야 했는지 앞 다투어 보도했다. 그리고 2020년 5월, 서울의 한 아파트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비원을 보며 국민은 또 한 번 분개한다. 그때와 지금, 우리는 여전히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하승현은 사회적으로 쉽게 잊혀지는 현실들을 좇으며, 흐릿해진 근과거를 재소환하고 문제시한다. 모두가 신안에서 일어난 비극을 잊어갈 때 즈음 그는 이 사건을 다시 한번 짚어보겠다는 마음으로 그 현장을 찾았다. 그러나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허무맹랑한 것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카메라는 결국 타자로서 작가가 가졌던 응시를 반영하기 마련이고, 그 속에서 피사체는 필연적인 대상화의 과정을 거친다.

적어도 그는 거기에 있었지만, 그곳에서 확인한 것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담보하는 기록성이 보여주는 구멍들이며 끝없이 한계에 부딪히고 마는 불완전한 시선의 그림자였다.

사진이 만들어내는 물리적 프레임 안에 현실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한계를 수용한 이후, 하승현은 다음과 같은 이미지를 제시한다. 화면에는 얼룩진 표면의 염전 바닥과 불규칙한 격자무늬가 드러난다. 현장의 참혹함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고요하고 적막한 이미지는 언뜻 피해자들의 고통을 탈각시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동시에 그의 카메라는 보고자 하는 대상이 거의 사라질 때까지 그것으로부터 무심하게 멀어져 있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결코 무엇도 숨기거나 과장하지 않으며, 그 문제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The Pale Red Dot〉(2018-2020)과 〈Salt Pond〉(2018-2020) 연작은 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억압받은 개인의 존재를 또렷하게 직시한다. 노동자들이 염전에서 도망가더라도 쉽게 눈에 띄도록 고용주들이 강제로 입혔던 붉은색 작업복은 희미한 작은 점(pale red dot)이 되어 화면 이곳저곳에 먼지처럼 떠다닌다. 또한, 사진의 각기 다른 색감과 질감들은 사회적 논란 이후 상승한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운영이 중단되거나, 국가 주도의 태양광 발전사업으로의 전환을 이유로 방치된 염전 작업장의 환경 변화가 만들어낸 기이한 장면들의 기록이다. 즉 일련의 풍경은 다루고자 하는 현실의 물리적 상황과 사진 형식 간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진술하고 있다. 단지 이 모든 사실은 수용자의 읽기 습관에서 쉽게 간과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