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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민주노총] |
이번 선거에서 특기할 점을 꼽는다면 여성 후보자의 진출이다. 민주노총은 2014년 말 직선 1기 선거에서 여성할당제를 적용해 위원장 후보 3인 중 1인 이상을 여성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 포스터에서 여성의 얼굴을 볼 수 있던 이유다. 그러나 지역본부 선거는 선출 임원 수도 지역마다 다르고, 여성할당제도 의무적으로 도입되지 않았다. 때문에 16개 지역본부 본부장 후보는 모두 ‘중년의 남성’이었고, 소수의 지역에서 4~5명의 여성 후보가 사무처장 등으로 출마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부터는 민주노총 16개 지역본부 모두 3인 1조를 후보조로 그중 한 명을 여성으로 배치해야 한다. 중앙보다 지역에서의 여성 임원 진출이 드물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성과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치러지는 각종 선거에서도 청년의 얼굴은 만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후보등록 전이지만, 어디서도 젊은 후보가 나선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청년이 꼭 후보로 나서야 해서가 아니다. 노동운동의 세대교체, 청년 간부의 발굴, 청년 사업을 위한 민주노총의 사업배치가 여전히 더디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쉽다. 다음 선거에는 젊은 얼굴들이 보이기를 바라며,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 번째, ‘자신이 원하는 간부의 상’을 버리고, 지금 민주노총에 함께하고 있는 청년 간부를 먼저 교육하고 성장시키는 조직을 만들기 바란다. 87년 세대가 바라는 ‘간부의 상’이 있다. 현장경험이 풍부하고 헌신적으로 활동하며, 대인관계가 원활하면서 조합원에게 신뢰받는 등 다양한 조건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검증된’ 젊은 누군가 민주노총이나 산별노조 간부로 올라오기를 바라는 ‘추상적인 마음’이 있을 뿐, 내 옆에서 활동하는 청년 활동가의 성장에는 관심이 없다. 이제 그 바람을 구체적인 예산과 사업으로 배치해야 한다. 단위사업장의 청년층 간부가 함께 만나 교육받을 기회를 만드는 등 청년 간부의 네트워크 구축 사업을 꾸려야 한다. 이와 함께 민주노총, 지역본부, 가맹조직 등에서 사무처로 민주노조 운동에 함께하는 청년 활동가를 위한 체계적·장기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이 교육에는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 민주노총 체계 및 운영 방식, 노동법 기초 지식, 사업기획과 실행 프로세스 등 전반적인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하루짜리 교육이 아닌 최소 3개월, 길게는 6개월 정도 되는 시간 배치도 필요하다.
두 번째, 민주노총 및 가맹조직에서 동일 선출기관에서의 3선 이상 출마를 금지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3년마다 조합원 직접 선거로 위원장을, 대의원대회 간접선거로 부위원장을 선출한다. 16개 가맹조직은 조직마다 임원 선출기관과 규정 등이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어느 선거나 ‘현직 프리미엄’이 있다. 현직 임원은 사업 경험이 있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간부, 조합원을 만나며 관계 맺는다. 조합원은 공약에서의 차별성이 크지 않으면 ‘아는 사람’을 뽑기 마련이다. 2, 3년의 임기는 언제나 짧고, 이번에 하지 못한 일을 다음에 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세 번, 네 번 임원을 이어가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이제 이것을 제도적으로 바꿔 새로운 얼굴들, 청년 임원이 등장할 기회를 늘려주기 바란다.
세 번째, 청년 조합원과 직접 소통하는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 민주노총에는 조합원이 직접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방법이 없다. 코로나 시기, 이런 방식의 집회를 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면? 청년 조합원이 참여할 수 있는 어떤 사업을 제안하고 싶다면? 내 의견이 민주노총 중앙의 의사결정 기구로 올라가는 데는 뚜렷한 방법이 없다. 홈페이지 게시판이나 페이스북 등에 의견을 낸다 한들, 그것이 민주노총 공식 회의에 전달되지 않으면 실제 사업이나 기획에 반영될 수 없다. 청년층이 직접적인 의사전달과 소통에 더욱 민감한 점을 고려하면 소통창구 마련은 꼭 필요하다. 카카오톡 채널이든, 홈페이지 게시판이든, 특정 위원회나 실의 사업에서든 청년 조합원이 직접 의견 낼 창구를 열고, 이를 주기적으로 상임집행위나 중앙집행위에 보고하는 체계를 꾸려야 한다. 그 의견이 모이고 조직에서 공식적으로 공유되는 과정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네 번째, 청년 간부를 위한 ‘자리’를 내놓을 것을 바란다. 노동운동의 세대교체를 바란다면, 새롭고 젊은 얼굴들이 각종 선거에 나오기 바란다면, 청년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청년위원회’나 ‘청년 사업’으로 특정된 소수의 자리여서는 안 된다. 민주당이 최고위원으로 20대 청년을 선임하고, 진보정당이 비례의원 당선권에 청년을 배치하는 등 ‘가장 중요한 자리’를 청년에게 주는 ‘적극적 조치’가 이뤄지는 시대다. 민주노총 또한 주요 의사결정 기구에 청년 활동가, 간부를 적극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청년이 나서달라’는 말로는 실현되지 않는다. 실제 사업을 집행하는 실장의 1/3을 30대 청년으로 구성한다든지, 부위원장 선거에 청년 후보를 내세운다든지 등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물론 쉽지 않다. 다수가 ‘그렇게 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준비된 사람은 없다. 찾고, 조직하고, 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조직의 조건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더 젊은 민주노총, 세대교체를 준비하는 민주노총을 위한 위원장의 자격은 무엇일까. ‘펭수’를 알고, 좀 더 말랑말랑한 느낌의 민주노총 선전물을 만들 수 있는 사람? 아니다. 청년에게 ‘권력’을 나눠줄 위원장이 필요하다. 어느 조직이든 새로운 사람이 나서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면 비판과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관료조직에서 가장 꺼리는 일이다. 하던 사람이 하던 일은 겉으로 보기에 안정적이지만, 사실 똑같이 하는 바람에 정체한다. 노동조합의 회의, 집회, 교육 등도 하던 대로 반복되고 있다. 민주노조 운동은 이미 ‘정체의 기회비용’을 지급하고 있다. 이제 노동조합 운동이 새로운 기회비용을 낼 때다. 이번 민주노총 선거가 그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