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사기극 전락한 사모펀드

[1단 기사로 본 세상] 정권 비판 활용보다 피해자·재발방지책에 집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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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1심 법원이 라임자산운용의 부실 펀드를 알고도 고객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팔아온 신한금융투자의 전직 임원 임모 씨(52)에게 징역 8년과 벌금 3억 원을 선고했다.

언론은 지난해부터 라임자산운용을 둘러싼 기사 수천 건을 쏟아냈다. 특히 청와대와 민주당 관련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기사는 커졌다. 잠적했던 김모 전 청와대 행정관(금감원 팀장)이 라임의 전주(箋注)였던 스타모빌리티 김모 회장과 고향 친구였다는 뉴스는 1면과 사회면을 장식했다. 노사모에서 미키루크란 필명을 사용하며 지난해 4월15일 21대 총선 때 민주당 후보로 부산 사하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상호씨가 라임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을 때도 주요 지면을 장식했다.

라임의 부실펀드 사기사건은 이렇게 정치적으로 악용됐다. 지난해 법무장관 청문회 때 조국 전 민정수석이 사모펀드를 잘 모른다고 한 이후 우리는 귀 따갑도록 사모펀드의 사기극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검찰과 언론은 정치권 연루에만 촉각을 세웠고, 정작 법정에서 드러난 수조 원 넘는 피해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사실 6조원짜리 도박판이었는데, 몇 푼 이자 좀 받겠다고 노후자금 투자했던 피해자들의 피맺힌 절규엔 침묵했다.

한편에선 이지스자산운용의 사모펀드는 강남의 ‘삼성월드타워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사 부동산 투기를 했다.

돈 있는 민간인은 맘대로 부동산 투기해도 문제되지 않지만, 공직자는 부동산 투기를 혐오하는 국민 눈이 무서워 주체 못 할 돈을 사모펀드에 돌려놓고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다. 돈 놀이 하려면 공직 생활을 그만 두면 되는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 안달이다.

대부분의 기사는 ‘청와대와 민주당 누가 해 먹었다’는 식이었다. ‘누가 어떻게 피해를 입었다’는 기사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왼쪽부터 9월26일 동아일보 8면, 매일경제 15면, 조선일보 10면

법원 판결에 따르면 신한금융투자 임모 전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 본부장이 라임펀드 480억 원어치를 부실한 줄 알면서도 판매했다. 부실을 감추려고 수익이 있는 정상 펀드 17개와 부실 펀드 17개를 결합시켜 멀쩡한 펀드에도 손해를 끼쳤다.(동아일보 9월26일 8면 1단 기사) 그러나 동아일보 기사에선 피해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없다.

임 전 본부장은 코스닥 상장사 리드에 신한금융투자 자금 50억 원을 투자하는 대가로 자기가 지분을 가진 회사에 1억6500만 원을 받은 혐의도 드러났다. 이런 사기 행각으로 임 전 본부장은 지난해 신한금융투자에서 최고액의 연봉을 받았다.(매일경제 9월26일 15면) 매일경제 기사에도 피해자는 등장하지 않았다.

같은 날 조선일보 10면 기사에서야 “(임 전 본부장의 사기행각으로) 투자자 64명 중 56명이 만기에 투자금과 수익금을 환매 받지 못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이런 짓을 한 임 전 본부장은 지난해 신한금융투자에서 15억4100만 원을 보수로 받았다.

이런 야바위판에 여야 거대 정당 정치인들이 쇠파리처럼 끼여 들어 드는 건 너무도 당연해 기사 가치도 없다. 6조 원짜리 야바위판에서 임 전 본부장이 손댄 건 고작 482억 원에 불과했는데 여기서만 피해자가 56명이나 나왔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다. 피해자들을 취재하고 피해 대책을 주문하고, 필요하다면 법 개정을 요구해야 한다. 그동안 사모펀드 규제를 약화한 법 개정의 주역이 누구인지도 고발해야 한다.

“안전하다고 해서 8억 원을 라임펀드에 투자했다가 날렸다”는 개그맨 김한석의 법정 증언만 다룰 일이 아니다.

  9월18일 세계일보 8면(왼쪽)과 한국일보 12면


- 기고수정 : 2020년 10월 5일 오후 2시 3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