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자 주강현은 1995년 모교 경희대에서 ‘두레’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90년대부터 수많은 글을 썼다. 대한민국 도서관 어디를 가도 그의 책이 최소 10권 이상은 비치돼 있다.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엔 그의 책 96권이 소장돼 있다.
그는 두레에서 출발해 굿과 온돌, 장승, 솟대 등 기층 농민들 생활사 전반으로 민속학을 확장했다. 이후엔 바다로 관심을 돌려 ‘조기에 관한 명상’(1998), ‘돌살’(2006), ‘환동해 문명사’(2015), ‘독도강치 멸종사’(2016), ‘등대의 세계사’(2018) 등 해양문명사학자가 됐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때론 ‘북한의 민속학’(1989)을 연구하다가 ‘마을로 간 미륵’(1995)으로 돌아왔다가 ‘개고기와 문화제국주의’(2002), ‘왼손과 오른손’(2002),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1996), ‘전주 음식’(2009) 같은 음식 칼럼니스트로도 변신했다.
그는 오로지 책을 써 생계를 해결하면서도 한 때 연간 억대 넘는 수익을 올리는 ‘파워 라이터’였다. 그는 국토해양부 소속 해양문화재단 이사이자 제주대 석좌교수를 하면서도 우리민속문화연구소와 해양문화연구원 2개의 개인 연구소를 운영했다.
그는 10여 년 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미래 희망을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처럼 80대까지 책을 쓸 겁니다”라고 답했다. 늙어 죽을 때까지 연구자의 길을 걷겠다는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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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4월 28일 제주시청 앞 민주당 문재인 대통령후보 지지연설에 나선 주강현 당시 제주대 석좌교수(왼쪽) [출처: 제주도민일보 홈페이지 캡쳐] |
그랬던 주강현은 2017년 대통령 선거 때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며 선거 유세에 나섰다. 문재인 후보와 자신이 경희대 선후배임을 부각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1년 뒤인 2018년 7월 그는 2대 국립해양박물관장에 임명됐다. 임기 3년이 보장된 자리였다. 그러나 그는 최근 임기 1년을 남기고 해임됐다.
해양수산부는 주 관장이 직원 채용과 업체 선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의혹에, 성추행 정황까지 추가로 확인돼 7월 30일 해임한다고 밝혔다. 해수부는 박물관 직원들 신고로 직장 내 갑질 조사를 하다가 주 전 관장의 성희롱 정황도 나왔다고 밝혔다. 주 전 관장은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피소까지 됐다.
해수부는 주 전 관장이 지난해 경력직 사원 채용 때 심사위원에게 특정인을 부탁하는 등 시험 절차에 부당하게 관여했다고 밝혔다. 또 박물관 전시 행사에 특정 출판업체와 계약을 진행하면서 해당 업체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 박물관에 손해를 끼치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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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아일보 2018년 7월 1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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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일보 2020년 8월 2일 기사 [출처: 부산일보 홈페이지 캡쳐] |
그를 맨 처음 학문의 길로 이끈 ‘두레’는 공동체 정신이 깃든 농민 자치조직이다. 향약은 유교적 규율 속에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상층부의 지역 자치조직이었지만, 두레는 순전히 일하는 사람(농민)만으로 구성된 생산주체들의 협업(공동작업)조직에서 출발했다.
두레는 모내기나 김매기 때부터 백중날 일손을 놓을 때까지 유지한 농민들의 자율조직이었다. 두레는 집단성을 유지하려고 구성원 개개인이 죽어지내는 구조가 아니었다. 각자는 두레 안에서 개인의 개성과 창의력을 십분 발휘했다. 공동체의 집단성은 유지했지만 그 속에서 개인의 개성과 창의력 발현을 봉쇄했다가 체제 전체가 망했던 90년대 현실 사회주의와 격이 달랐다. 두레는 공동체 의식을 사회화하는 통로였다. 두레는 일(노동)로는 협업을, 놀이로는 공동의 집단 연희를 만들었다. 즉 두레는 탈춤의 사회적 배경이었다.
주강현의 박사논문 ‘두레 연구’는 일제 때 인정식 선생와 60년대 숙명여대 김삼수 선생의 뒤를 잇는 훌륭한 저작이었다. 한국인은 주강현, 이름 석 자는 몰라도 주강현의 책을 읽지 않고 청소년기를 보낸 이가 드물 정도다. 그만큼 여러 사람에게 영감을 줬기에 그의 몰락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다.
학교에 남는 편한 길을 포기한 채 재야에 남아 자유로운 영혼으로 연구했던 그는 요즘 곤혹을 치르고 있다. 자신이 존경했던 레비-스트로스처럼 평생 연구자로 남았으면 좋았을 것을, 정치권에 줄을 서더니 이런 결과를 불러왔다. 그가 자초한 화다.
그가 처음 연구했던 두레는 개인의 자발성을 보장하지만 일탈하는 개인까지 보호하진 않았다. 1년의 농사를 평가하며 농땡이 부린 사람에겐 모진 매질과 멍석말이도 불사했다. 잔꾀를 부린 농민에겐 삽짝을 밖에서 폐쇄하는 형벌도 가했다. 이런 걸 몰랐을 리 없건만 그는 선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