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 부회장 재판의 핵심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놓고 장난을 쳤느냐, 안 쳤느냐다. 또 다른 핵심은 이를 이 부회장이 알았느냐, 몰랐느냐다.
당시 삼성 지분을 상당히 보유한 국민연금이, 삼성이 제시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비율(1대 0.35)을 수용하느냐도 관건이었다. 이 경우 국민연금은 1388억 원의 손실이 예상됐다.
이 이상한 제안을 최종으로 실행에 옮긴이는 삼성 직원이 아니었다. 당시 국민연금 리서치팀장이 삼성의 제시대로 합병 시너지를 2조 원에 맞춰 역산하는 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이 리서치팀장은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가치도 근거 없이 높이는 등 합병에 유리한 정황을 인위로 만들어냈다. 이는 국민연금이 2018년 감사를 실시해 밝혀낸 사실이다. 감사결과 국민연금은 당연히 해당 팀장을 해고했다.
보수 언론이 틈 날 때마다 도산 위기라고 지목하는 국민연금은 사실 수백조 원 쌓아 둔 기금운용을 놓고 고심할 만큼 공룡이 됐다. 또 보수 언론은 틈 날 때마다 기금운용에 ‘전문가’가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고 앵무새처럼 되뇌인다. 기금운용권은 달마다 국민연금을 납부하는 노와 사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는데, 이들이 전문성이 없다며 금융전문가를 더 많이 참가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사실 지금도 국민연금 보험료 한 푼 내지 않는 정부(보건복지부)가 감 놔라 배 놔라 하면선 여기저기 기금을 퍼주는 판인데, 금융전문가가 더 많이 들어오면 국민연금 기금은 주식시장에 불쏘시개가 될 비극을 피하기 어렵다. 아니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처럼 일개 팀장이 장난 쳐 1388억 원의 기금을 날리는 일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제 주머니 털어 보험료 내는 노동자는 비록 전문가가 아니어도 귀신 같이 안다. 어떻게 하면 노후에 받을 알토란같은 내 연금에 손해가 되는지, 이익이 되는지.
해고된 팀장은 자신의 해고가 박영수 특검의 지시에 따라 의도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하며 국민연금공단을 상대로 해고무효 소송을 냈다. 얼마 전 1심 판결이 나왔는데, 법원은 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세계일보가 지난달 30일 10면에 재판 결과를 “‘삼성 합병자료 조작’ 국민연금 간부 해고 무효”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내일신문도 같은 날 21면에 “‘삼성 합병근거 조작’ 국민연금 실장 해임 취소”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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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30일 세계일보 10면(위)과 내일신문 21면 |
1심 법원이 해고자의 손을 들어줬지만 그가 했던 장난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하진 않았다. 재판부는 박영수 특검의 지시에 따른 의도적 징계였다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민연금공단의 인사규정상 징계시효가 2년인데 이를 넘긴 징계였기에 무효라고 판시했을 뿐이다. 공단은 삼성 합병의혹 사건으로 문형표 전 복지부장관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등이 재판을 받고 있어 팀장의 징계시효가 중단됐다고 주장하며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가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히고도 진정으로 반성하기나 할지 궁금하다. 아무튼 그는 1심 재판에 이겨 국민연금으로부터 그동안 못 받은 임금까지 받게 됐다. 이를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얼마나 수긍할까.
같은 날 중앙일보는 10면에 ‘검찰의 시간 3년6개월, 삼성수사 이젠 결론내야할 때’라는 제목의 톱기사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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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30일 중앙일보 10면 |
중앙일보는 이 기사에서 3년 반을 끌었으면 됐다며 그만 이 부회장을 놔달라는 노골적인 신호를 보냈다. 중앙일보는 이 부회장이 3년 반 동안 10번이나 조사를 받았고, 100명 넘는 삼성 임직원이 400차례 넘게 소환조사 받았다고 했다.
“삼성 사내 인트라넷 자유게시판에는 ‘검찰이 이 부회장 수사를 이제 그만 해줬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의견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는 대목에선 웃을 수밖에 없다. 네이버나 다음 게시판도 아니고, ‘삼성 사내 게시판’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