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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한 당신: “악질 기업도 90일 전에는 통보하는데...”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14) 1040억 흑자기업의 일방적인 폐업통보, 한국게이츠 노동자들 이야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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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똑같았던 오늘, 한 달 뒤에 공장 문을 닫는다?

7월 16일 오전, 대구 달성군 논공읍 달성산업단지에 있는 한국게이츠 공장. 여느 회사들처럼 입구 안내실에서 발열 체크 등 방문 확인을 하고 방문증을 받아 공장 안에 들어갔다. 기계가 멈춘 공장은 고요했다. 불과 20일 전까지도 주야 맞교대로 타이밍벨트·마이크로벨트·오토텐셔너 등 자동차와 산업용 동력전달 벨트를 생산하던 기계들이다.

라인 곳곳에 노동자들이 있었지만, 높은 기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씩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려오고, 멀리서 노동가요도 들려온다. 공장 안은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고, 벨트를 만드는 고무 원료와 자동차 엔진에 사용될 타이밍벨트 완성품도 보인다. 그저 평범한 어느 날 공장의 일상 같았다. 지금은 휴식시간이고, 근무 중이던 주간조 노동자들은 잠시 화장실에 가거나 담배를 피러 나가 공장 안은 고요하다. 이제 잠시 후면 불이 켜지고 기계 전원 스위치가 올라가고 다시 기계가 돌아가겠지. 그러나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기계는 돌아가지 않았다. 평소처럼 휴식시간 점심시간을 알리는 벨은 무심히도 울리는데...

6월 26일 금요일 오전 10시 15분.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은 지금도 이 날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다. 주간조 노동자들은 평소와 다른 없이 본인이 근무하던 공정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한국게이츠에서 21년 째 일하고 있는 박현철 씨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8시에 출근해 오토텐셔너 생산 업무를 하고 있었다.

“9시에 우리 조장이 각 라인마다 돌아다니면서 9시 반에 식당에 다 모이라카는 거야. 본사에서 누가 왔다카면서. 그러더니 조합 임원들하고 면담한다고 해서 우리는 10시 10분 15분 돼서 내려왔어. 우리는 무슨 할 얘기가 있는가 싶어갖고...”

회사는 9시에 노조 간부들과 면담을 진행하고, 1시간 뒤에 생산직·사무직 전체 노동자를 식당으로 불러 모았다. 노동자들은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궁금한 마음 절반, ‘설마’ 하는 불안한 마음 절반씩을 안고 식당으로 향했다. 이름도 잘 모르는 한국게이츠 아시아 사장(에시 라다)과 통역사, 법률 업무를 하는 김앤장 변호사들이 와있었다.

“2020년 6월 26일 한국게이츠는 금일 부로 한국 내 제조 시설을 폐쇄하기로 결정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한국게이츠는 2020년 6월 26일 부로 한국 내 제조 시설 폐쇄와 함께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향후 한국게이츠와 대구 공장은 법적으로 정해진 절차와 규정에 따라 철수 및 폐쇄될 예정입니다. 이번 결정은 게이츠 본사가 2019년부터 전 세계에 걸쳐 시행하고 있는 사업 구조조정 방안의 일환이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일정이 앞당겨졌습니다. 사안이 엄중한 만큼 게이츠 본사에서도 이번 결정 이전까지 수많은 선택지와 대안을 고려하여 최대한 신중하게 본 사안을 검토해 왔으나, 유감스럽게도 대안을 찾지 못했습니다.”

회사 측 관계자가 서류를 읽기 시작했고, 낭독을 마치자마자 이들은 급히 나가버렸다. 비정규직을 포함한 150여 명의 전체 노동자와 51개 협력업체 6천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의 생존 문제를 단 10분도 채 되지 않은 무성의한 문서 낭독으로 통보한 셈이었다. 140여 명의 노동자들은 마치 어릴 때 하던 얼음땡 놀이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대구 달성공단에 위치한 한국게이츠 공장 [출처: 연정]

의자라도 집어 던졌어야 했는데...

“폐업한다고...분위기 싸해요. 아...참...그날 그 분위기, 서먹해서 서로 눈도 똑바로 못 쳐다보는 분위기 안 있습니까. 그게. 전부다 이래갖고는.” (박현철, 21년 근무)

“(그때 어떠셨어요?) 멍... (어이없는 웃음) 너무 갑작스럽게 닥치니까 그냥 멍 때리고 가만있었죠. 아직까지도 실감이 안나요.” (조성우(가명))

“이런 식으로 전혀 생각지도 않은 말을 하는데 항의할 그런 게 없었죠. 다들 멍했어요. 그때부터 손 놓고 일 안하고. 집에서 이틀 울었다는 사람도 있고 그렇죠. 다들 20년 이상씩 다녔으니까.” (송윤주(가명), 20년 근무)

한국게이츠에는 20년 전 127일 간의 전면파업 투쟁을 승리한 경험이 있는 노동조합(민주노총 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이 있다. 이들 노동자들 중에 노조 대의원 한 번 안 해 본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만, 이날은 무장해제 당한 듯 그 누구도 항의조차 할 수가 없었다.

올해로 입사한 지 28년이 되는 권구록 씨는 작년에 회사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비슷한 일로 모이라고 하다보나, 생각하며 식당으로 향했다가 퍽치기 당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준비가 됐으면 가서 한마디라도 하거나 의자를 집어 던지거나 했을 텐데, 갑자기 뒤통수 퍽치기 당하니까 멘붕이 와서 말도 몬하고 생각도 없고 정신 나간 상태. 회사는 선전포고만 하고 나가는 거고. 다시 근무 들어가야 되는데, 공장 폐업한다는데 일할 마음이 나겠어요? 그때부터 손을 놓은 거죠.” (권구록, 28년 근무)

당시 야간 근무조였던 노동자들은 아침 8시에 퇴근해서 자려고 누웠다가 단체 카톡방과 여러 개인적 연락을 통해 공장 폐업 소식을 들었다. 그런가하면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저녁때 출근했다가 알게 된 노동자도 있었다.

“단톡방에 회사가 폐업했다는 게 올라온 거예요. 깜짝 놀라가지고 이게 무슨 말이지? 이런 걸로 장난칠 건 아닌 거 같은데, 왜 이러지? 그래서 문자로 물어보고 조합 사무장한테도 물어보고 이런 식으로...진짜...그러니까 이게 정리가 안 되더라고요. 훅 들어온 거라서. 멘붕이라는 말이 아 이때 쓰는 거구나. 하루 이틀 지나니까 멘탈이 싹 나가기 시작하는데...” (김태현, 18년 근무)

“저녁때 회사 오니까 근무를 안 한다 카더라고요. 기계도 안돌아가고. 출근하자마자 지회장님이 모이라캐갖고 모였는데, 일 안 한다고 해요. 회사가 폐업한다고 종이를 붙여 놨더라고요. 솔직히 좀 당황했죠. (그때 심정이 어떠셨어요?) 말도 못하죠...(한숨)” (정재우(가명))

송해유 한국게이츠지회 사무국장은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의 99%가 그날 아침에 폐업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심지어 임원들도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한국게이츠는 6월 25일 비밀리에 주주총회를 열어 한국게이츠 해산을 결정하고, 결정 사항을 그날 법인등기부에 반영했다. 사측은 노동조합이나 30년 가까이 근무해온 노동자들과 그 어떤 협의도 하지 않았다.

울고 왔다 울고 가는 서른 사정을
당신이 몰라주면 누가 알아 주나요
알뜰한 당신은 알뜰한 당신은
무슨 까닭에 모른 척 하십니까요
<알뜰한 당신, 조명암 작사 전수린 작곡>


  6월 26일 폐업통보 이후 멈추어버린 대구 한국게이츠 공장 [출처: 연정]

1041억 원 흑자기업의 자본철수 양치기소년 거짓말이 현실로

“20년 전부터 문 닫는다는 말은 매년 했던 말이에요. 위에 관리자들이 이런 식이면 문 닫고 갈 수 있다고 했어요. 20년 동안 계속 들어왔던 말이니까 솔직히 양치기 소년처럼 믿지 않았던 거죠. 근데 아시아 사장이 와서 그렇게 얘길 하니까 이거는 봉변인거지.” (송윤주(가명))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은 이런 날을 전혀 예상 못한 건 아니라고 했다. 회사는 걸핏하면 ‘자본 철수’를 운운하며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특히, 임단협 등 노사 교섭이 있을 때는 자본 철수를 들먹이며 노조 측의 양보를 강요했고, 임단협이 끝나면 그에 대한 보상요구처럼 물량 압박을 했다.

“협상 테이블에서 맨날 자본 철수한다 이랬어요. 근데 솔직한 얘기로 우리 회사 노조 강성노조 아닙니다. 회사가 고충 있다 카면 충분히 같이 안고 그리했는데... 초시계를 가져와서 재면서 그래가 물량을 산정하는 거예요. 우리가 기계도 아니고 똑같은 컨디션을 갖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주야가 바뀌면 3일은 어벙하게 지 정신인지도 모르고 일하는데.” (조성우, 20년 근무)

노동조합은 지난해 임단협도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였다. 작년 말에 합의가 돼서 마무리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사측이 기존 합의 내용을 뒤집으며 개악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주간연속 2교대제는 사측에 제안했다가 일거에 거절당하기도 했었다.

사측의 양치기 소년 같은 반복적인 ‘자본철수 공갈’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안도감을 갖게 한 측면도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최근 자동차 산업의 변화 등으로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었다.

“우리는 엔진 업체잖아요. 요즘은 전기차나 친환경차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 우리 일이 줄어들겠다, 생각은 좀 가졌었는데, 너무 빨리 온 거죠. 그것도 법에 벗어나지 않는다면서 한 달 전에.” (정재우(가명))

“2~3년 전부터 완성차에 들어갈 물량의 반 이상을 중국에서 들여와 가지고 서울사무소에 바로 넣었거든요. 현대차 라인은 요 공장은 우리 거 쓰고 요 공장은 중국 거 쓰고 이리 했거든요. 사람들은 예감하고 있었죠. 서서히 명퇴도 되고 라인도 죽을 거다. 체인으로 들어가니까 타이밍벨트 쓸 필요 없잖아요. 지금은 AS 밖에 없는데, 구조조정으로는 회사에 이윤이 덜 남으니까 중국에서 들여오면 더 싸니까 그렇게 한 거죠.” (홍영국(가명), 28년 근무)

최근 타이밍벨트 등 한국게이츠 생산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전기차의 확대와 체인 사용 증가로 다소 불안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노동자들은 ‘설마 설마’ 했다. 한국게이츠가 2000년부터 20년 간 순이익 1041억 원(연 평균 52억 원)을 낸 흑자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게이츠는 지난해에도 45억 원의 흑자를 냈다. 올해 코로나19에도 휴업이나 정부지원금 없이 정상운영 되던 회사다. 지난 해 정년을 앞둔 노동자 10명의 희망퇴직이 있었기에 올해도 그 정도 선의 조치는 있을 수도 있겠다는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회사는 노동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뒤통수를 쳤다. 그 음모와 계략이 양치기소년(한국게이츠)에 의한 것인지, 늑대(블랙스톤)에 위한 것인지, 아니면 둘의 공모에 의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 피해와 책임은 오로지 성실하게 일해 온 양(노동자)들에게만 돌아갔다.

노동조합에서는 한국게이츠에 3~4년 전부터 자동차 산업 변화에 따른 대체 산업 투자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회사가 선택하고 치밀하게 준비한 것은 국내 생산시설을 폐쇄하는 것이었다. 한국게이츠는 국내 생산시설은 폐쇄하면서 판매법인 GUKC(게이츠유니타코리아)는 국내에 남겨두고 값싼 중국 생산 제품을 현대·기아·GM자동차 등에 공급하겠다고 했다.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은 공장 폐쇄와 관련한 책임에 있어 현대자동차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현대자동차가 2019년 중국 게이츠에서 생산한 타이밍벨트에 대한 납품을 허용한 데 이어 올해는 오토텐션도 중국산 제품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옛날에 우리가 흑자를 많이 낼 때는 80억 120억까지도 냈잖아요. IMF 때도 적자를 낸 회사가 아니라고요. 단지 언제냐면 2008년도에 리먼 브라더스 사태 있잖아요. 그 때 금융위기 났을 때, 1억 8천만 원인가 적자 난 것 말고는 없어요. 코로나 때 안 쉬었는데, 이제 보니까 그게 얘들이 폐업을 준비하는 과정이었어. 재고 준비해 놓을라고.” (박현철)

  7월 9일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앞에서 피켓팅 하고 있는 한국게이츠 노동자들 [출처: 연정]

여 공장 안하면 여 깔고 여 안하면 절로 가져가고

한국게이츠는 전 세계 30여 개국 120개 공장에서 15,000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글로벌 게이츠 기업의 한국 사업장으로, 자동차와 산업용 동력전달 벨트류를 생산해 왔다. 한국게이츠는 1989년 한국법인·미국법인·일본본인 합작 투자로 설립되었다. 현재는 미국법인(미국 게이츠)이 51% 일본법인(일본 니타)이 49%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2013년에는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이 게이츠를 인수했다. 노동자들은 한국게이츠의 실제 사용자는 세계 최대 투기자본 블랙스톤이며, 이번 공장폐업 사태도 블랙스톤의 입김이 많이 반영되었을 것이라 이야기했다.

“이유가 딱히 있겠어요? 적자가 아니기 때문에 코로나는 핑계고. 흑잔데도 앞으로 자동차가 전기 쪽으로 가니까 이걸 갖고 있어봤자 돈이 안 되니까 정리를 하겠다는 거지.” (송윤주(가명))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납품해서 조금이라도 더 남는 장사를 하겠다는 거다. 한국에 생산시설을 폐쇄하면서 판매법인은 놔두고 한국 완성차 공장에 납품을 하겠다는 괘씸하고 뻔뻔한 심보에 노동자들은 분개한다. 게이츠와 블랙스톤의 못된 심보는 이게 끝이 아니다.

“지금 일본이 49% 미국이 51% 지분을 갖고 있는데, 지금은 1년에 50억 남으면 절반을 일본에 줘야 되는 거예요. 여길 없애버리면 일본(법인)에 안 줘도 되잖아요. 여 팔은 거 일부분만 일본 주고 중국 거 수입해갖고 싸게 들여와 팔면 되는 거고. 그게 더 남는 거니까. 블랙스톤 아들이 그런 거지. 블랙스톤 알잖아요? 여기가 다국적 기업이잖아요. 이 설비들도 폐기할 거 폐기하고 중국이나 인도 공장으로 다 가져가겠죠. 글로벌이기 때문에 여 공장 안하면 가져와 여 깔고 여 안하면 절로 가져가고.” (홍영국(가명))

한국게이츠 공장에 있는 기계 중에는 일본에서 20년 사용하던 기계가 있다. 게이츠 자본은 더 싼 인건비로 생산해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일본 공장을 폐쇄하고 한국 공장을 지어 그 기계를 한국 공장에 가져왔다. 글로벌 투기자본, 참 알뜰하다. 군더더기도 없다. 단 한 푼의 손실도 보지 않으면서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주는 곳으로 옮겨 다니고 조금이라도 흡족하지 않으면 언제든 단 칼에 회사를 폐쇄하고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몬다.

한국게이츠는 들어올 때는 고용 창출과 그 유지에 대한 대가로 취득세와 재산세 면제 등 각종 세제 혜택을 다 받고, 철수할 때는 폐업 공고조차 생산 물량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폐업 35일 전에 했다.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포함한다)하려면 적어도 30일 전에 예고를 하여야 하고, 30일 전에 예고를 하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28조(해고의 예고)>

게이츠는 법률사무소 김앤장의 자문에 따라 30일 전 해고통보를 하게 되어 있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면서 한 달 분의 해고 임금 지급까지 절약하는 알뜰한 모습도 보여준다. 노동자들은 “아무리 악질적이고 부도덕한 기업이라도 90일 전에는 통보를 한다”며 기막혀 했다.

  한국게이츠 공장 회사 식당에서 점심 식사 중인 게이츠 노동자들 [출처: 연정]

쉬어도 쉬는 거 같지 않고, 자도 잔 거 같지 않고

“적자가 나면 우리도 이해해요. 적자가 나도 이렇게 해서 흑자를 내도록 해보자. 이게 최소한의 상대방에 대한 배려잖아요. 양심이고. 2020년까지 20년 동안 가져간 돈이 1,040억이에요. 매년 흑자를 내갖고 주주배당을 매년 거의 95% 이상 다 가져갔단 말이에요. 우리 노동자들한테는 이익이 남아도 성과금 한 푼 안줬어요. 생산 안올리면 성과금 안준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이익뿐 아니라 그동안 쌓아놓은 이익잉여금까지도 싹 걷어가고, 감자해서 가져가고 그걸 다 해놓고는 우리는 헌신짝처럼. 헌신짝도 아니지. 그냥 갖다 버린 거지.” (건구록)

6월 26일 이후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은 불면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수면제를 먹는 노동자도 있고, 거의 매일 술을 마시는 노동자도 있었다.

“밤에 자면 그 전에 안 꾸던 꿈까지 꿔요. 내가 이상한 다른 공간에도 있고. 여기도 내가 한번 온 것 같은 느낌도 돌고. 쉬어도 쉬는 거 같지 않고, 자도 잔 거 같지 않고, 이 싸움이 언제 끝이 날지도 모르고.”

노동자들에게는 가족들에게 폐업 사실을 알리는 일도 고통 중 하나다. 19년 째 오토텐셔너 부서에서 자동차 엔진 벨트 장력을 조절하는 부품 조립 업무를 해온 김태현 씨는 아내에게는 폐업 공고 소식을 어렵지 않게 알릴 수 있었는데, 아직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아이들에게 알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집에서 애들 세 명을 앉혀놓고 얘기를 했어요. ‘아빠 회사가 다음 달부터 문을 닫기 때문에 아빠가 일자리를 잃었고 돈을 못 벌어.’ 그랬더니 '이제 어떻게 하실 건데요?' 물어보더라고요. ‘계획이 없어’라는 말만...”

부모님에게는 차마 이야기를 못하고 있었는데, 뉴스로 사건을 접하곤 걱정을 많이 하신다고 했다. 한국게이츠 많은 노동자들이 태현 씨와 비슷한 상황이다. 이런 노동자들의 고충을 헤아린 것인지 한국게이츠는 노동자들의 집으로 폐업과 해고통보, 희망퇴직 신청 등의 내용이 담긴 우편물을 보냈다. 행여나 가족들이 모를까봐 알려주고, 폐업으로 해고하면서 희망퇴직 신청을 해서 위로금을 받으라는 알뜰하고 살뜰한 회사 측의 배려인 것일까?

“해고통보를 가족들한테 우편물로 보낸 거죠. 그걸 받고 가족들이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제 와이프도 그러더라고요. 알고는 있었지만, 그걸 받으니까 기분이 이상하다고.” (김태현)

만나면 사정하자 먹은 마음을
울어서 당신 앞에 하소연 할까요
알뜰한 당신은 알뜰한 당신은
무슨 까닭에 모른 척 하십니까요
<알뜰한 당신, 조명암 작사 전수린 작곡>


노동자들에게 선뜻 인터뷰 요청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떤 질문을 해야 좋을지, 답변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보름 뒤에 20년 이상 다닌 공장이 문을 닫는다. 그것도 한 달 전에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았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할 수 있을까? 또,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몇 달 전에 알았다면 좀 달랐을까? 힘내라는 말도, 잘 될 거란 말도 다 부질없어 보였다. 표정 관리에 어려움이 있는 때에 마스크로 표정을 가릴 수 있는 게 고맙게 느껴진다.

12시가 되자 노동자들이 점심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내려간다. 회사 식당도 7월 31일까지만 운영 된다. 송해유 사무국장이 “오셨는데, 식사라도 하고 가시라”며 필자를 식당으로 안내한다. 이날 점심 메뉴는 삼계탕이다. 아, 초복이다. 회사 식당은 코로나19로 1인용 칸막이가 설치 돼 있었다. 식판에 삼계탕과 깍두기, 수박 등을 담아 자리에 앉았다. 먼저 온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이 칸막이 벽을 보며 말없이 삼계탕을 먹고 있다. 필자도 조용히 칸막이 안에서 밥을 먹는다. 다행이다. 어설픈 위로와 근거 없는 희망고문이 담긴 격려를 하지 않을 수 있어서.

공장 입구에는 ‘당신이 지킨 것은 가족입니다’ ‘2020 내 인생 최고의 게이츠’ 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내 인생 최고의 게이츠’는 2020년 한국게이츠의 슬로건이다. 대체 누구 인생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누구의 가족을 지키기 위한 공장 폐업과 집단해고인 것일까?

  한국게이츠 공장 건물에 게시되어 있는 한국게이츠의 2020년 슬로건 [출처: 연정]

  • 문경락

    한국게이츠는 전 세계 30여 개국 120개 공장에서 15,000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글로벌 게이츠 기업의 한국 사업장으로, 자동차와 산업용 동력전달 벨트류를 생산해 왔다. 한국게이츠는 1989년 한국법인·미국법인·일본본인 합작 투자로 설립되었다. 현재는 미국법인(미국 게이츠)이 51% 일본법인(일본 니타)이 49%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2013년에는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이 게이츠를 인수했다. 노동자들은 한국게이츠의 실제 사용자는 세계 최대 투기자본 블랙스톤이며, 이번 공장폐업 사태도 블랙스톤의 입김이 많이 반영되었을 것이라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