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구수산시장 상인과 함께 투쟁하는 사람들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예술, ‘노량진 : 터, 도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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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이제 한여름 본격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육교 위에 새처럼 둥지를 틀고 있는 노량진 구수산시장 상인들은, 부채로 더위를 쫓거나 망루 위에서 수협 측의 공사 진행을 살피고 있다. 폐허가 된 구 노량진수산시장 터에서는 굴착기만 끝없이 고갯짓을 한다. 수협의 명도집행과 동작구청의 행정대집행을 동시에 당한 이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돈다.

얼마 전 동작구청은 주차장을 절단하기 위해 철거를 강행했다. 농성 중인 육교를 포크레인이 건드리면 안전상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공사가 강행됐고, 상인들은 불안에 떨었다. 어떤 사람은 육교에 매달려 항의했고, 또 어떤 사람은 온몸에 소화기를 뒤집어쓴 채 절규했다. 동작구청은 심지어 집행에 들어간 비용과 과태료를 상인들에게 청구했다. 구청으로 달려간 노인들이 장례식 때 입는 소복을 입고 농성을 벌였다. 구청 현관에는 버젓이 “동작구민 모두가 행복한 동작을 만들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저녁이 되면 상인들은 난민촌처럼 길게 줄 세워진 텐트 안에서 하루의 농성을 마감해야 한다. 육교 아래는 고압선으로 둘러쳐 있다. 그 아래로 간간이 야간열차가 속절없이 달린다. 한밤의 모기떼, 그리고 더위와 씨름하다보면 하얗게 날이 밝는다. 상인들 간의 다툼도 있다. 평생 서로 얼굴 맞대고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투쟁이 길어지자 크고 작은 사연들이 얽혀 얼굴을 찌푸리는 날도 있다.

“제발 서로 싸우지 마세요. 속상한 일 있으면 회의 때 이야기하세요. 연대하시는 분들이 상인들끼리 다투는 모습 보면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그러면 다들 또 “예~”하고 답하신다. 물론 그때뿐이겠지만 벌써 5년째 투쟁 중이고 난생처음 당하는 일인데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모르는 바도 아니다.

노량진수산시장은 서울 시민의 사랑을 받던 곳이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수산물을 공급하던 곳이다. 수백 번 이야기 했지만 어디든 공영도매시장은 나라에서 관리한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광역자치단체장의 감독을 받게 되어 있다. 시시비비를 법으로 판단하는 세상이지만 이곳은 예외였다.

시장이 헐리고 상인들이 내몰릴 때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일상은 이들을 밀어냈고, 이들의 존재를 기억에서 지웠다. 현실은 냉정하기까지 했다. 노량진 전철역 앞에서 진을 치고 농성을 벌이자 ‘다 끝난 일 아니냐’는 듯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군댔다. 서울의 명물을 이루던 사람들이 거리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것이다. 털끝만큼도 자신의 손해를 볼 수 없는 사람들의 비릿한 혐오와 냉소의 시선이 겹쳐졌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놀랍게도 어느 날 사람들이 몰려와 이 세상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상인들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옥바라지선교센터’의 예배가 매주 목요일 오후 진행됐다. 직장과 학업을 마치고 달려온 젊은 종교인들이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이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들은 따가운 여름 햇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김은석 다큐멘터리 감독은 그림자처럼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오가며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았다. 그리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따스한 이야기로 바꿔냈다.

[출처: 옥바라지 선교센터]

그리고 매주 금요일 노량진 역 앞에서는 삼삼오오 공연이 펼쳐진다. 처음엔 낯선 풍경이었지만, 벌써 작년 늦은 가을부터 지금까지 빠지지 않고 이어진다. 그들은 스스로를 “쫓겨나는 이들이 있는 자리, 마음 기댈 곳 잃은 자들의 곁, 사라져가는 장소들에서 역할을 찾는 느슨한 예술인 집단” 이라고 선언한다. 바로 '예술해방 전선'이다. 이들은 최근 신나는 일을 꾸미고 있다. 7월 17일에서 7월 25일까지 아현동 ‘복합문화공간 행화탕’에서 그림, 사진, 음악, 영상 등 여러 장르의 예술인 40여 명이 상인들의 삶과 고통을 예술작업으로 형상화해 ‘노량진 : 터, 도시, 사람’ 이라는 주제로 전시와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이러한 연대에 힘입어 ‘구 노량진시장 시민대책위’는 ‘국민권익위원회’ 제소 건을 검토하고 있다. 상인들의 구청 앞 농성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동작구청의 행정대집행에 맞서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 6시 노량진전철역 앞 공연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옥바라지선교회의 1인 시위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시민대책위는 8월 중에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벼룩시장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7월 22일 11시 국회 앞 기자회견을 개최해 구 노량진수산시장 문제 해결을 촉구할 것이다.

예술이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 된 지금,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예술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생각, 우리가 모두 공감할 가치가 있는 생각으로 바꾸어주는 것이 예술이라고, 이렇게 예술의 목적이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것 이라면 이들의 활동이야말로 가장 부합하는 실천이 아닐까?

수렁에 빠진 상인들에게 지푸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들을 적대시하는 자의 마음을 흔들었으면 좋겠다. 무관심한 사람들 마음속 작은 파문이 일어 그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꼈으면 더욱 좋겠다. 십시일반 벌이는 ‘예술의 힘’이 세상을 움직이는 방식이란 걸 증명했으면 또 정말 좋겠다.

** 전시와 공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웹사이트(https://bit.ly/예술해방전선)에서 확인하면 된다.


  • 문경락

    놀랍게도 어느 날 사람들이 몰려와 이 세상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상인들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옥바라지선교센터’의 예배가 매주 목요일 오후 진행됐다. 직장과 학업을 마치고 달려온 젊은 종교인들이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이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들은 따가운 여름 햇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김은석 다큐멘터리 감독은 그림자처럼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오가며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았다. 그리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따스한 이야기로 바꿔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