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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은 생산적 노동이다

[페미코노미] 가사도우미와 주부의 노동권과 가치화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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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은 권력이라 했던가? 익숙한 기념일이 아닌 낯선 날들이 등장하는 것은 기존 권력에 변화가 생겼음을 뜻한다. 이 변화는 많은 이들의 투쟁의 결과다. 필자가 기억하는 6월의 달력에는 가사노동자와 성노동자가 존재한다. 6월 16일은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이다. 그리고 이어서 6월 29일은 한국 ‘성노동자의 날’이다. ‘국제 가사노동자의 날’은 올해로 9회째가 된다. 이날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국여성노조’와 ‘전국가정관리사협회’가 ‘가사노동자 법적 권리와 생계 보장’을 요구했다. 그리고 노동자성 인정을 위한 ‘가사노동자 권리보장법’ 제정을 위한 제안서를 전달했다.

2012년 국제노동기구(ILO)가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을 선포하면서 노동으로 인정한 가사노동은 한국에서 여전히 노동권이 주어지지 않은 그림자 노동으로 남아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많은 가사노동자가 직업을 잃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었지만, 가사노동자들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다. 노동쟁의를 하거나,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노동조건을 변화시킬 투쟁을 할 조건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가사노동자들의 노동량은 배가 됐다. 직업을 잃은 쪽은 ‘가사도우미’나 ‘파출부’로 불리는 가사노동자들이고, 노동량이 늘어나 힘들어진 쪽은 ‘(전업)주부’들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사노동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가사도우미노동자’들이고 여기에 ‘전업주부’ 혹은 ‘주부’는 포함되지 않는다.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집단으로 주장할 수도 없고, 노동시간에 대한 임금지불이나 화폐화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부 혹은 전업주부를 가사노동자로 간주하지 않는 것은 1970년대 서구에서 여성해방을 외친 사람들이 주장했던 것에서 한 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가사노동을 둘러싼 논의는 여성해방운동이 진행되면서 제일 먼저 부각됐다. 그러나 2020년 현재, 가사가 노동이라는 말은 현실에서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가사가 노동이란 말은 여성해방론자들에게는 중요한 말이었지만, 사회는 여전히 이 ‘노동’이 기존 ‘노동’의 대열에 들어갈 수 없는 ‘집안의’ ‘일’이라 여긴다. 현재도 ‘가사도우미노동자’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최소한의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전업)주부는 노동운동의 ‘동지’들이 되지 못한다. 전업주부를 자신의 노동운동의 ‘동지’로 생각할 수 있어야 가사노동자 운동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것이다.


필자는 현재 가사도우미와 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되는 인식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노동과 일상의 구분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생산과 재생산의 구분이다. 먼저 노동과 일상을 구분하는 입장에서 보면 일상의 영역은 노동의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이 일상의 영역이라 간주된 곳에는 노동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일상과 노동의 구분은 생활 세계와 생산 세계를 나누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생활양식과 생산양식의 구분은 가정과 공장을 나누고, 가정은 생활 세계를, 공장은 생산 세계를 대표한다. (물론 현재 이 공장은 다양한 산업의 장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 구분은 철저하게 가부장적이다. 생활 세계가 노동과 관련 없는 것이 아님에도 생산과 생활을 나누게 됨으로써, 여성들이 하는 집안일은 노동이 아니고 생산이 아니게 된다. 필자는 가사노동자도 생산자라는 관점을 갖고 있다. 가사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생산과 무관하다는 생각, 그리고 노동과 무관하다는 생각이 현재 가사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만들었다. 이는 사회가 가사를 비노동, 비생산, 비가치의 영역이라 여기도록 해 생산-노동-임금-화폐-가치의 영역과 무관한 영역이라 생각하게 했다.

가사는 생산의 영역이다. 집안일은 다양한 측면에서 생산한다. 가사는 전문성을 기반으로 하는 생산적 노동이다. 음식을 생산하고, 즐거움-쾌락-안락함을 생산하고, 관계를 생산한다. 그런데 이 생산을 페미니스트들까지도 ‘재생산’ 노동이라 부른다. 공장도 물건을 생산하고 그 생산한 물건과 같은 것들을 재생산한다. 가정에서도 음식을 생산하고, 아이를 생산하고 양육한다. 가사는 생산양식이다. 가사는 생산적 노동을 통해 다양한 가치를 생산한다. 가정과 사회, 가정과 공장을 나눈 서구 근대산업사회의 이분법은 철저하게 가부장적이었다. 이 이분법은 가부장체제를 형성해 왔다.

생산과 재생산으로 나누는 이 구분이 우리의 상품생산 중심성, 상품생산노동 중심성, 자본 중심성을 만들어 왔다. 상품생산노동이라 불러야 할 것을 그냥 노동이라 하고, 상품생산을 생산이라 해 왔다. 그래서 상품생산노동을 임금노동이라 부르고, 노동운동의 중심을 여기에 두고 있다. 상품생산과 가사생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 재생산 노동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 이 이데올로기가 사회 구성원들을 근대체계, 자본주의체계, 가부장체제에 묶어두고 있다. 집안일, 가사는 사랑이데올로기, 가족이데올로기에 묶여, 화폐로 가치화되지 않아야 한다고 믿게 했다. 하지만 이미 가사노동은 화폐와 상품의 영역으로 훌쩍 들어갔다. 그런데도 ‘가사도우미노동자’들의 노동권은 챙겨지지 않고 있다. 노동권이 챙겨지지 않는 이유는 앞에 말한 이데올로기들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업주부의 집안일이 가사노동이라 불리더라도 화폐화-임금화-가치화되는 길은 멀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임금화 혹은 가치화하려는 시도에는 집이라는 공간, 가정이라는 공간, 사적 공간마저도 자본주의화 혹은 상품화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가사노동과 가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자본’의 영역이 아니다. 자본 외부가 아니다. 자본주의와 자본은 비가치와 가치의 경계를 지으면서 자신을 유지·재생산해 왔다. 가사노동이 비가치의 영역에 남아 있어야 자본은 축적이 가능하다. 물론 필요하다면 자본은 이 영역을 직접적 화폐 가치의 영역으로 만들어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한다. 집안일이라 한 내용은 상품의 영역으로 계속 전환하고 있다. 그리고 소규모 소개소 중심의 가사도우미노동이 이제 앱을 사용하고 고용하는 플랫폼 자본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에도 전업주부, 주부의 일은 비가치, 비노동, 비생산의 영역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고 있다.

실비아 페데리치 같은 페미니스트는 성혁명의 ‘영점’(핵폭발의 중심점)으로 가사노동의 임금화 투쟁을 제안한다. 그리고 ‘뉴딜이 기획한 가족과 여성’에 대한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의 논의를 따라가 보면 결국 가족과 여성을 자본주의적 국가가 기획했다는 말이 된다. 이 기획을 뒤집으면서 ‘화폐화되지 않은 (전업)주부의 생산노동’과 ‘화폐화되고 있지만, 노동권이 부여되지 않은 가사도우미노동자의 생산 노동’을 가치화- 노동화 하는 일이 진행돼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을 경유하면서 자본주의의 상품생산 중심과 화폐화를 넘어서는 가치화로 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향은 인간이 지닌 다양한 생산의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삶을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 뱃노동

    현중노조에 전하는 조언

    게시판의 "억울함"과 "궁금증"을 교섭소식란으로 잘 플어드려야 합니다. 글이 잘 안나올 때는 다른 글을 많이 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필사는 하지 말고 강렬함과 단호함이 느껴지도록 써야 합니다. (교섭팀이 공장의 현장과 사측에 너무 얽매여서 다른 단체와 노조활동을 볼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닙니까.)

    부연)
    그리고 다음 교섭에서는 어떻게 하겠다는 입장까지 써줄 때는 더 좋습니다. 꼭 교섭내용만 쓸 것은 아닙니다. 교섭의 전후과정(교섭을 하지 않는 날들의 일상)도 쓰면 더 좋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게시판의 사람들에게 심금을 울려줘야 합니다.

    대리주의나 대리만족은 경계해야 합니다.

  • 캐치켓치

    저도 생각해보건데 가사가 노동으로 인정을 받아 임금을 받는다라면, 전국의 전업주부들 임금을 줘야한다는 의미인데요.

    요지의 문제점은 고용주 없는 노동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결혼을 하여 가사는 반반을 하던 누군가를 하던 해야하는 부분인데 주로 여성들이 이 부분을 맡고 있지요.

    그렇다면 나뉘어야 하는 것이 전업주부만 생활노동을 하는 것이 아닌, 자녀들이 될수도 있고, 홀로사는 청년이 될수도 있고, 여러 포괄적인 의미가 되어버리는데
    누가 임금을 주어야할까요. 그냥 집에서 숨만쉬고 있는 백수도 집을 지키고 있으니 가사노동이 되어버리구요. 포괄적인 의미만 부여하지 말고 세부적인 부분에서 어떻게 해야될까 라는게 중요한 포인트 같아요.

    또한 위처럼 임금의 문제도 발생하지만,
    전업주부가 100프로 가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있다면 자녀도 일부 가사노동을 하고, 아버지란 사람도 최소한 하는것이 있고, 자취하는 청년도 가사노동을 하고 사람이라면 최소 자기 방 닦거나 정리한번 한적이 있을겁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 다 가사노동으로 인정을 하여 직업세분화 해서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만 제시하고 해결방안에 대한 예는 하나도 없으니 ..

  • 소망

    필수노동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알아챌 수 있는 시기에 사회적 부를 뒷받침하고도 뒷골목에 서있던 그림자노동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성찰, 그리고 사회적 보상이 반드시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