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는 한 유튜버가 스튜디오 비공개 촬영회에서 강제적인 촬영과 사진 유포, 성추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폭로했다.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스튜디오 비공개 촬영회가 주도면밀한 돈벌이의 모습을 띠고 있다고 알렸다. 하지만 피해호소는 2차 가해라는 또 다른 피해로 확대됐다. 피해자의 이름이 포르노 사이트의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포털 사이트에서는 피해 촬영물을 공유해달라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피해자가 고소한 비공개 촬영회 스튜디오 관계자 중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피해자를 향한 백래시는 더욱 거세졌다. 지난해 대법원은 다른 공범에 대해 강제추행과 성폭력범죄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사법부의 판결이 나왔음에도, 피해자를 향한 의심과 조롱, 혐오가 이어졌다.
사건을 폭로한 지 2년. 해당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양예원 씨는 이제 고통스러웠던 싸움의 한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일상을 회복하고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하려 한다. 용기 내 성폭력 사건과 맞서 싸웠던 자신을 더 사랑하고자 한다. 자신의 싸움이 성착취,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용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양예원 씨를 《워커스》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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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하는 양예원 씨 [출처: 윤지연 기자] |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 어떻게 지냈나?
친구들도 만나고 잘 지내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아직 나를 향한 혐오가 많은데 밖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아주 가끔 눈썰미 좋은 사람이 지나가다가 ‘봤어? 쟤 맞지?’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투를 하기 전 유튜브를 할 때도 있던 일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 성격 자체가 워낙 활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는 정말 많이 괜찮아져서 눈치를 보던 친구들도 걱정을 덜었다.
불법 촬영물 삭제 결과 알림을 매달 확인하는 게 힘들진 않나.
처음엔 힘들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예전엔 그 결과들을 보면서 하루에 몇 건이나 올라왔는지 일일이 수치를 계산하고 절망하고, 또 SNS 악플을 확인하고 절망하곤 했다. 지금은 악플을 봐도 타격이 없다. 불법 촬영물 삭제 결과를 받아볼 때도 국가가 일을 열심히 하는 구나, 라고 생각할 뿐이다.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연이어 터졌다. 대표적인 피해자로서 많이 소환됐을 것 같다.
웬만해선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그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언론에 깊은 불신이 생겼다. 많은 언론들이 피해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 부수적인 이야기에 집중한다. 열심히 피해에 관해 말을 했는데, 기사에는 나의 피어싱이나 문신과 같은 내용이 나간다. 심지어 내가 누굴 만났고, 머리를 잘랐고, 화장이 진했고, 레저 스포츠를 즐겼다는 이야기가 기사화 된다. ‘네가 그러고도 피해자냐?’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다. 언론은 헤드라인을 자극적으로 뽑는 법을 알고 있다. 나를 의심하고, 추측할수록 기사 조회수는 올라간다. 헤드라인은 곧 진실이 되고, 사람들은 추측성 기사를 사실로 받아들이다. 그런 식으로 진실이 왜곡되는 게 싫었다. 그래서 최대한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왔다.
“많은 언론들이 피해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 부수적인 이야기에 집중한다. 나를 의심하고, 추측할수록 기사 조회수는 올라간다.”
최근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이 터졌다. 지켜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 것 같다.
성범죄 사건은 똑같은 루트를 밟는다. 그게 가장 화가 난다. 처음에는 가해자를 악마화한다. 이후 가해자에 대한 신상과 행적이 공개되면 ‘그냥 평범한 가정의 아빠였네’ 라는 식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피해자가 공격의 대상이 된다.
‘여자 행실이 이랬다는데, 여자가 먼저 어떻게 한 거 아니야?’ 라는 의심으로 시작해, 결국 ‘여자가 꽃뱀이었네’로 끝난다. 미투를 처음 촉발시킨 서지현 검사도 자리 욕심이 있었다는 의심을 받아야 했다. N번방 피해자들에 대한 의심도 마찬가지다. 피해자가 원래 불량했다더라, 고액 스폰 알바를 구한 것 아니냐, 같은 이야기를 하며 함부로 판단한다. 정말 화가 난다.
SNS에 N번방 사건에 분노하는 글을 썼다. 여기에도 악플이 달리더라.
‘네가 이런 말할 자격이 있어?’라는 악플이 제일 황당했다. 나는 성범죄 피해자이고, 디지털 성범죄에서 하나의 판례를 이끌어냈고, 피해자들과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여자인데 무슨 자격이 필요한가? 이런 식의 맥락 없는 혐오가 끈질기게 이어진다. 언젠가는 ‘네 말이 다 맞는데 그냥 네가 그 말을 해서 싫어’라는 SNS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았다. 사실상 자신도 맥락 없는 혐오를 인정하는 꼴 아닌가. 그래서 정말 빵 터졌다. 아무래도 여혐을 하기에 내가 좋은 대상인 듯하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유명하고, ‘문란하다’는 프레임을 씌우기에도 좋지 않나.
이제 악플을 봐도 타격이 없다고 했다. 그동안 어떤 시간을 거쳤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경찰서에서 2차 조사를 받았을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죽음을 계속 떠올렸고, 가족, 친구들이 나를 감시했다. 상태가 심각해져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 약물 치료와 상담을 병행했는데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지 않나. 그 시기 공황장애도 왔다. 그래서 공황장애에 대한 논문도 여러 편 찾아 봤는데, 내가 노력해도 무언가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올 때 공황이 온다고 했다. 나의 상황과 비슷했다. 나의 조급함과는 달리 재판은 느리게 진행됐고, 사진이 삭제되는 속도는 유포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원인을 인지하니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내가 겪은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고,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병에 걸린 것이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주문처럼 다짐했다. ‘나는 피해 사진 속 예원이도 사랑해. 그것도 나잖아. 나는 괜찮아질 거야.’ 이후로는 의료진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좋아졌다.
“내가 겪은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고,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주문처럼 다짐했다. ‘나는 피해 사진 속 예원이도 사랑해. 그것도 나잖아. 나는 괜찮아질 거야.’”
유튜브를 통해 스튜디오 성범죄를 폭로했다. 사진 확산 등의 우려가 많았을 텐데 공론화를 마음먹은 이유가 뭔가.
공론화하기 전, 경찰서를 세 번 찾아갔다. 각각 다른 경찰서였다. 세 곳 모두에서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첫 번째 경찰서는 ‘성적 취향’에 관한 문제일 뿐이어서 처벌이 안 된다고 했다. 두 번째 경찰서는 돈을 받았으면 처벌이 어렵다고 했다. 세 번째 경찰서에서는 수사는 해보겠는데 오히려 내가 무고죄로 고소당할 수 있다고, 잘 생각하시라고 회유했다. 이쯤 되면 경찰은 수사 할 생각이 없구나, 라는 판단이 서지 않겠나. 그래서 난리를 치기로 한 거다. 포르노 사이트를 둘러보며 나 같은 피해자가 한둘이 아님을 알았다. 피해가 모이면 경찰이 수사할 것이라 생각했다. 사진은 어차피 퍼질 것을 각오했다.
그동안 스튜디오 비공개 촬영은 예술계의 하위문화처럼 존재했다. 이런 촬영이 범죄라는 것은 어떻게 인지했나?
유출된 사진을 찾아보는데 비슷한 사진이 많았다. 사람만 다르고 표정과 자세, 구도가 같다. 야한 표정을 짓고 손으로 하트를 그리며 다리를 벌리고 성기를 집중적으로 찍는 게 무슨 예술인가? 인간만 바꿔가며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사진을 찍는 거다. 사진 속 화장법으로 시기를 유추해 봤을 때 최소 5년 이상 이 짓을 했겠구나 싶었다. 분명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 사업이었다. 이 같은 성폭력이 하나의 사업으로 정착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가해자들이 회원을 모으는 방식과 그들이 이용하는 사이트 등을 뒤져 보기 시작했다. 증거는 계속 나왔고 이것들을 모아 경찰에 제출했다. 그들이 회원을 모으는 전용 사이트가 있는데 이런 문구 밖에 없다. 22살, 대학생, 자연산, C컵, 피부 하얀 편, T-팬티, 올 누드, 근접 촬영 가능, 기구 사용 가능. 이것이 과연 예술인가? 피해자가 한 둘이 아닐 것이고, 그 피해자 중에 자살한 사람도 있을 것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죽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데 나만 죽을 수는 없었다. 나중에 죽더라도 모든 것을 폭로하고 그들이 처벌받은 뒤 죽을 거야, 라고 생각했다.
경찰, 검찰, 법원 증언에 이르기까지 계속 범죄 피해를 설득시켜야 했다. 조사과정은 어땠으며 어떤 점이 힘들었나.
‘자발적으로 스튜디오 촬영에 임한 것 아니냐’는 의심에 대해 소명하는 과정이 제일 힘들었다. 카톡 메시지를 왜 그렇게 보냈는지 하나하나 설명했다. 내가 메시지를 이렇게 보냈지만, 이런 사정이 있었고, 그때 나의 상태가 어땠는지를 아주 자세히 말해야 했다. 보수적인 판사가 내 조서를 읽었을 때 ‘응, 그럴 수 있겠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조서가 사전만큼 두꺼워질 때까지 설명했다. 내 피해는 명백한데 그것을 남들에게 설득할수록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더라.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스라이팅’이 원인이었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신고하지 못했고, 그 상황이 이상하고 수치스러웠음에도 뛰쳐나오지 못했고, 신고 후에도 나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닌, 성착취라는 함정을 파 놓은 가해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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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하는 양예원 씨 [출처: 윤지연 기자] |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다. 법정에서는 어땠나?
상대편 변호사는 나의 ‘자발성’을 끌어내기 위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어쨌든 자발적으로 갔잖아요’, ‘그래서 자발적인 게 아니라는 거예요?’, ‘본인이 원했잖아요’, ‘이게 피해자의 태도인가요?’ 나는 이 질문을 받으면서 멘탈이 흔들리는 한편, 이래서 가해자의 형량이 깎이는구나,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거기서 맞다고, 내 잘못도 있다고 하면 가해자 형량이 깎인다. 그게 싫어서 바들바들 떨면서 아니라고 해야 했다. 재판 결과가 잘 나온 것은 스스로의 노력도 있겠지만, 가해자가 부른 증인들의 진술이 엇갈린 것도 한 몫을 했다. 그들끼리도 말이 다르고, 그래서 당황해 하는 모습들이 포착됐는데 거기서 판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라.
“이 정도는 괜찮아, 다 보는 거잖아, 자연스러운 본능이야, 라며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여성에 대한 성착취가 사회의 당연한 흐름처럼, 하나의 문화처럼 젖어드는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성착취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여성에 대한 성착취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뭐라고 보나.
성착취 산업이 발전을 거듭하는 원인은 너무 근본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이지 않나. 성을 사고파는 산업은 몇 세대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가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여성들에게 ‘창녀 아니면 성녀’라는 프레임을 씌워 이분법적으로 판단하고, 이를 자극적으로 미디어화 시키며, 자신들만의 컨텐츠를 만들어서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런 산업들은 더 악랄해지고 확대될 거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여성들만의 연대 뿐 아니라, 남성들조차 이런 것들이 문제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지금까지 ‘00여대생 몰카’, ‘실제 고딩 섹스’ 등의 음란물이 너무 오랫동안 팔려왔다. 알바 구직 사이트에는 ‘시급 3만 원’, ‘터치 없음’ 같은 문구로 20대 여성들을 모집하고 있다. 남성들은 단톡방에서 여성을 ‘따 먹었다’고 자랑하며, 그것이 남성의 본능이라고 한다. 이 정도는 괜찮아, 다 보는 거잖아, 자연스러운 본능이야, 라며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것들이 범죄라는 인식이 전혀 없는 거다. 하지만 성착취 산업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여성에 대한 성착취가 사회의 당연한 흐름처럼, 하나의 문화처럼 젖어드는 것이다. 이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형적인 ‘피해자성’에 맞서 싸워왔다. 그 과정은 어땠나.
이런 저런 말을 많이 들었다. 쟤는 그런 피해를 입었다면서 유튜브를 해? 그런 피해를 입었으면서 어떻게 코믹 컨텐츠를 해? 어떻게 남자친구랑 뽀뽀하는 영상을 올릴 수 있어? 재판을 받으러 갔을 때도, 머리는 왜 잘랐대? 이 와중에 귀에 피어싱도 했어? 화장도 하고? 이런 말들을 들었다. 내가 친구들과 놀고 있는 모습을 봤다면서, 이 와중에 놀러 다닌다고 사이코패스니, 소시오패스니 비난을 했고. 매니큐어, 옷차림 등 모든 것이 비난거리가 됐다. 가장 황당했던 건 기자들이었다. 한 기자는 내 중학교 동창에게 전화해서 학창시절 나의 행실을 인터뷰했다. 행실이 어떻긴 뭐가 어떠냐. 그냥 중학생처럼 잘 놀고 다녔겠지. 그때는 정말 기자들한테 혀를 내둘렀다.
처음에는 안 되겠다 싶어서 화장을 하지 않고 재판을 받으러 갔다. 그러니 쟤 얼굴이 왜 이렇게 까매졌느냐, 놀러다닌거다, 라며 비난을 했다. 나는 원래 얼굴이 까만 편인데.(웃음)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저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집에서 그저 벌벌 떨며 죽기만을 기다리는 피해자의 모습이었다. 너무 괴로워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매일 울기만 하는. 그러면서도 예쁘고 보호본능도 일으키며, 주변 평판이 좋은 착한 피해자.
너무 모순적이지 않나. 피해 당시에는 가해자에게 말 한번 예쁘게 하면 안된다고 한다. 가해자에게 친절했던 것이 무서워서 혹은 이렇게라도 벗어나고 싶어서일 수 있는데, 그것을 ‘자발성’으로 몰아간다. 피해를 입었다면서 왜 친절했어? 네가 좋아했네, 무고죄야, 라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것이 정말 피해자에게서 나오는 자발성인가? 도대체 누가 쥐어준 자발성인지 묻고 싶다. 자신들이 강요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것들에 자발성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거다.
“저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집에서 그저 벌벌 떨며 죽기만을 기다리는 피해자의 모습이었다. 너무 괴로워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매일 울기만 하는. 그러면서도 예쁘고 보호본능도 일으키며, 주변 평판이 좋은 착한 피해자.”
비슷한 성폭력 피해를 겪은 피해자들이 예원 씨를 보며 용기를 가진다. 그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
SNS로 많은 메시지를 받는다. 그 남자가 무서워서 사귀게 됐는데 매일이 두렵다는 메시지부터, 내가 살아가는 걸 보면 힘이 난다는 메시지까지. 나를 보고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고소를 했다는 사람도 있고, 비슷한 피해를 겪은 적은 없지만 나를 보면서 피해 여성들을 돕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사람도 있다. 스쿨미투를 했는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자퇴 했다는 친구도 있다. 그런 메시지를 보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구나,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재판에서 승소하면서 거짓말이 아니었나보네, 라는 인식들도 생겼고. 그래서 나의 사례가 조금씩 피해자들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내가 뭔가 하고 있구나, 라는 안도감이 생긴다.
나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가 아닐지언정, 적어도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알고 피해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고 싶다. 화를 내고 싸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다른 피해자들에게 이를 강요할 수는 없다. 나도 극복했으니, 여러분도 나처럼 극복하라는 건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가해일 수도 있다. 지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여러 구설수에 오르는 건 지겹고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지금이라도 목소리를 낸 피해자들이 계속 싸워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