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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국에 대만에 가다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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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거리에서 공무원들이 방역하고 있다. [출처: 나현필]

대만, 국가인권기구 만들다

국가인권기구(NHRI)는 1993년 UN 총회를 통해 파리원칙이 공식 채택된 후 본격 등장했다. 파리원칙은 국가인권기구가 헌법·법률에 근거한 명확한 규정과 적정한 재원 및 권한을 가져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정한다. 특히 그 구성에 있어 다양성이 보장돼야 하며 시민사회의 참여와 협력이 중요하다고 명시한다. UN이 주도하고 파리원칙에 근거한 국가인권기구는 1993년 이후 100개국에 설립됐다. 한국에서도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됐다.

아시아에서는 2006년 지역 인권단체인 포럼 아시아(Forum-Asia)의 주도로 아시아 지역 국가인권기구 설립 및 감시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인권기구 감시 아시아 NGO 네트워크(ANNI)’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국제민주연대가 ANNI의 유일한 회원단체로 매년 ANNI에서 발간하는 아시아 각국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영문감시보고서의 한국 부분을 작성하고 있다. 지난 보수 정권이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침해했을 때는 ANNI를 통해 아시아 지역과 국제사회에 연대를 요청한 바도 있다. ANNI는 연 2회 회의를 개최하는데 봄에는 한 해의 활동방향과 연간보고서 작성 방향을 논의하며, 가을에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인권기구 포럼(APF)’ 총회에 맞춰 보고서를 발간하고 APF와 시민사회의 대화를 주도하고 있다.

올해 ANNI의 봄 회의는 대만에서 개최됐다. 올해 ANNI 회의가 대만에서 개최된 이유는 바로 대만 의회가 지난해 12월 10일(세계인권선언일)에 국가인권기구 설치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대만은 알려진 대로 UN회원국이 아니다. 즉, 국가인권기구를 설립할 국제사회의 의무가 없다. 그러나 대만의 인권단체들은 국제법적 지위와는 상관없이 정부가 국제인권조약을 준수하고 국가인권기구를 설립하도록 1999년부터 의견을 내왔다. 2002년 민진당이 집권하고 처음으로 국가인권기구 이슈를 논의했지만 당시 입법원을 장악한 국민당으로 인해 무산됐다. 이후 2014년 국민당 마잉주 정부가 들어서고 대만 감찰원에 국가인권기구를 설립하자고 제안하면서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대만 국민당 창시자인 쑨원의 5권분립 정신에 따라, 대만 정부는 행정원과 입법원, 사법원을 비롯해 국정을 감시하는 감찰원과 시험을 담당하는 고시원을 운영하고 있다. 대만 인권단체는 바로 이 감찰원이 옴부즈만 성격을 가지고 있는 만큼 여기에 국가인권기구를 설치하자고 제안해왔다. 그리고 이 제안은 마침내 민진당 차이잉원 정부의 재집권이 유력해지면서 지난해 12월 통과됐다. 이 법안은 감찰원에 국가인권기구를 설립한다는 기초법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감찰원을 어떻게 구성하고 국가인권기구의 핵심인 인권활동가들을 어떻게 포함시킬지를 올해 5월까지 논의해야 한다. 아울러, 기존의 감찰원이 국민당 성향의 보수적 인사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국가인권기구의 성격과 활동을 이해시키고 교육시키는 것도 중요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기구 설립이 현실화된 것은 대만 인권운동의 성취다. 사실, 대만 인권활동가들은 2018년 11월 민진당이 패배하면서 국가인권기구 설립도 다시 좌초될 것이라 우려했었다.

실제로 홍콩 시위 이전, 민진당 정부의 재선은 불투명했다(2019년 5월 10일 필자의《워커스》기사 참조). 그러나 홍콩 시위 이후 여론은 급반전했고, 차이잉원이 이끄는 민진당은 2020년 1월 선거에서 다시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대만에 설립된 국가인권기구는 중국이 추진하는 일국양제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대만의 국가인권기구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중국사회에도 이 국가인권기구를 주목하는 흐름이 형성될 수 있다.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인권상황이 악화되고 있기에, 대만에 국가인권기구가 설립된 것은 비록 대만이 UN 회원국 지위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주목할 사건이다.

코로나19와 대만

대만 인권운동의 이러한 성취를 격려하고자 대만으로 ANNI 회의 장소를 결정한 이후, 코로나19 사태가 동아시아를 강타했다. 2월 초 대만에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회의 장소 및 시기 변경 이야기가 나왔지만 논의 끝에 강행하기로 했다.

필자가 ANNI 회의 참가를 위해 대만 행을 결정하자 주위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회의 참가를 위해 대만을 방문하면서 인상적인 경험을 하게 됐다. 회의가 열리는 호텔에서 모든 출입자들은 온도계로 발열 체크를 받았고, 대만 시민들 상당수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회의가 개최되던 2월 11일과 12일이 지나면서 대만에서 확진자 수 증가가 주춤하자 마스크를 벗은 시민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대만 활동가에게 사태가 진정되고 있는 것이냐 묻자, 그런 것이 아니라 대만 정부가 일인당 하루 마스크 구입 개수를 2개로 제한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한 대만 정부의 마스크 구입 제한 조치는 시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이 조치로 차이잉원 정부 지지율이 하락했는지 묻자 그건 아니라고 했다. 차이잉원 정부가 반중 정서에 힘입어 당선됐고, 코로나19 사태가 중국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마스크 구입제한 조치에도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했다는 것이다.

대만 활동가와 공감한 것은 홍콩 시위의 여파와 함께 대만에서도 혐중 정서가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대만 시민들의 혐중 정서 확산은 한국과 대만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고민할 문제라고 의견을 모았다.

대만에 머무르던 2월 10일, 한국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해 싱가포르, 일본,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대만을 여행 및 방문 자제국가로 발표했다. 그 여파 때문인지, 평소에는 한국 관광객으로 가득한 대만 타이페이의 시먼딩 지역에서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국 노래와 한국어 안내방송이 나오는 대만의 쇼핑 공간에 한국인이 없는 것을 보면서 대만 경제도 타격을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먼딩 거리를 방역하는 타이페이시 공무원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정부가 권고한 국가에 체류하고 있는 터라 조금은 긴장했지만 2월 15일 귀국 후 별다른 증상이 없어 안심했다. 이후 한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오히려 한국의 확진자 수가 대만을 추월했다. 그리고 필자 역시 별다른 증상이 없음에도 주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바이러스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대만 정부는 2월 22일, 한국과 일본을 2단계 ‘경계’ 단계 국가로 발표했다. 10일 전만 하더라도 대만 방문을 걱정 하던 처지가 뒤바뀐 것이다. 만약 ANNI 회의가 1주일만 늦게 개최됐어도 필자는 대만을 방문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전염병의 지역적 확산을 직접 경험하면서 여러 고민이 들었다. 한국과 대만의 국가인권기구는 전염병의 확산과 이로 인한 혐오와 차별의 확산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시대에 국제적인, 그리고 지역적인 인권운동의 연대와 교류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 것인가? 또 다른 과제들을 남기게 된 대만 방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