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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균아, 우리의 일터는 여전히 깜깜하구나”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서울 도심서 2천여 명 ‘추모대회’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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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한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 1주기를 맞아 서울도심에서 추모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고 김용균 사망 이후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조위가 권고안을 발표했지만, 정부가 이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며 강하게 규탄했다. 특히 이날 추모대회에는 한국마사회 기수였던 고 문중원 노동자의 유족과 김도현 청년건설노동자 고 김태규 씨의 유가족 등이 참석해,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호소했다.

고 김용균 1주기 추모위원회는 7일 오후 5시, 종각역 4거리에서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 받지 않게!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약 2천여 명의 노동자와 시민사회, 시민들이 참석했다.

  고 김용균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 [출처: 김한주 기자]

“용균아, 우리가 일하는 곳은 여전히 깜깜하구나”

고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 씨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통해 “네가 그렇게 떠난 뒤, 엄마는 텔레비전 속 세상과 현실은 너무도 다르고, 일터에서 너처럼 억울하게 죽고 다치는 사람들이 수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불이익을 당해도 말하지 못한 채 억울한 삶을 사는 너와 비슷한 용균이들을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전했다.

이어서 김 씨는 “아직 엄마는 이곳에서 할 일이 많단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유가족 앞에서 약속했던 것들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합의이행이 지켜지는지, 특조위 권고안이 현장에서 이행되는지 지켜봐야 하고, 너를 죽게 한 책임자를 처벌받게 해야 한다”며 “너를 비록 살릴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우리처럼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싶다”고 호소했다.

고 김용균의 동료 장근만 씨도 여전히 바뀌지 않는 일터의 ‘위험의 외주화’를 규탄했다. 장 씨는 고 김용균 노동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2월 9일, 62일 만에 용균이 너를 묻던 날, 우리는 네가 들었던 피켓처럼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고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약속했지. 그런데 용균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구나. 정말 미안하다”며 “네가 죽은 후 문재인 대통령은 사고 원인도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했고,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사각지대를 점검하라고도 했다. 그리고 특별조사위원회도 구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특조위는 위험의 외주화가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22개 권고안을 발표했어. 그런데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구나. 우리는 아직도 발전소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김용균 특조위가 권고안을 발표한지 석달 반이 지났는데 정부는 권고안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있구나”라며 “우리가 일하는 곳은 여전히 깜깜하고, 우리의 안전과 미래도 마찬가지로 깜깜하다. 우리는 용균이 너처럼 일터에서 죽어가는 노동자의 소식을 매일 듣는다.”고 전했다.

[출처: 김한주 기자]

“약속 지키지 않는 문재인 정부, 더 이상 구걸하지 않겠다”

앞서 지난 8월,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는 고 김용균 사망사고의 원인을 ‘위험의 외주화’라고 결론지었다. 아울러 △정비·운영 업무의 민영화와 외주화 철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 22개 권고사항을 발표했지만, 정부는 해당 권고안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특조위 간사로 활동했던 권영국 변호사는 “진상조사를 하면 노동자의 삶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래서 혼신의 힘을 다해 하청노동자들이 왜 죽어나가는지 그 진상을 조사했다”며 “일터가 갈라져 있었고, 하청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다단계 하도급이 책임과 권한을 분리시켰고 책임의 공백을 만들어냈다. 책임과 위험은 하청노동자에게 전가됐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다단계 하도급과 죽음의 외주화를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민주주의를 믿었던 우리는 또 다시 그 진상을 휴지통에 처박아하는 아픔을 목격하고 있다”며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는다. 이제 자본의 횡포를 뚫고 권력의 거짓을 넘어 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 연대회의 간사는 “용균이가 죽은 지 1년, 특조위 권고안도 휴지조각이 됐고 현장은 아직도 그대로”라며 “문재인 정부를 향해 더 이상 구걸하지 않겠다. 우리 발전소 노동자, 그리고 여기 모인 국민의 힘으로 반드시 이 죽음의 외주화를 끝장내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과 동료들,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호소

이날 추모대회에는 일하다 사망한 여러 노동자들의 유족과 동료들도 참석했다. 이들은 여전히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법제도 개선과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4월, 수원 건설현장에서 용역노동자로 일하다 추락사한 고 김태규 노동자의 누나 김도현 씨는 “태규의 죽음의 원인을 전혀 알 수 없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모두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사건 초기 수사 기회를 놓쳐, 결국 제대로 된 진상규명 없이 검찰에 송치됐다”며 “우리 태규와 용균이 둘 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죽었다. 그들은 법 뒤에 서서 살인을 저지르며 노동자의 잘못으로 위장했다. 김태규, 김용균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관련된 모든 살인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30일 공장에서 작업대기 중 사망한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 인 모 씨의 동료들도 무대에 올랐다. 황호인 금속노조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법으로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고 있지만 공장 안은 치외법권이다. 쓰다 버릴 수 있는 비정규직은 대부분 위험으로부터 어떠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며 “2018년 8월부터 1년 남짓한 한국지엠 부평공장 정상화 기간 동안 비정규직은 무급순환휴직과 해고를 당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삶이 황폐화됐고, 열악한 근무조건 속에서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을 했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를 맞이한 것은 죽음뿐인 삶이었다”고 호소했다.


  마사회 고 문중원 노동자의 유족 [출처: 김한주 기자]

지난달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국마사회 경마기수 고 문중원 씨의 유족들도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중원이의 유서를 보고 하늘이 무너졌다. 조교사 면허 딴지 7년지 지나도 마방을 주지 않았다. 마사회 직원들은 ‘높으신 양반과 밥도 먹고 하라’고 했다. 돈 없고 빽 없으면 죽어야 하나”며 “한국마사회의 다단계 갑질 부조리가 아들을 죽였다. 남겨진 가족들은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고 중원이의 명예 회복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할 때까지 장례를 치를 수 없다. 이것이 중원이가 죽음으로 호소한 마지막 유지”라고 강조했다.

자동차, 건설, 조선소, 철도, 전자, 배달 등의 현장에서 일을 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은 일터의 안전을 위한 법개정 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재벌과 만찬을 벌이는 동안, 조선소 용접공이 깔려 죽었고 김태균은 떨어져 죽었다. 30대기업 산재사망 사고 95%가 비정규직이지만 죽음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재벌은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며 “김용균의 이름으로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 것이다. 기업살인법 제정,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 원청의 책임을 묻고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는 노조법 2조 개정으로 참혹한 죽음을 멈추고 노동자 생명이 우선하는 차별 없는 일터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추모대회 참가자들은 오후 6시 30분 경, 광화문 분향소까지 행진해 집단 분향을 한 뒤, 청와대 효자치안센터까지 행진을 벌였다. 고 김용균 1주기 추모위원회는 오는 10일까지 추모주간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들은 △책임자 처벌 △위험의 외주화 금지,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재개정 △발전 비정규직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노조할 권리 보장 △자회사 아닌 직접고용 정규직화, 톨게이트 수납원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노동개악 분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김한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