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보육지부를 포함한 사회서비스 공동사업단을 운영 중인 공공운수노조는 ‘보육의 공공성’을 요구하며 서울시청 앞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과연 이들은 철옹성 같이 굳건했던 ‘민간 중심의 보육’을 제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해 <참세상>은 오승은(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워커스> 편집위원의 ‘어린이집 기획연재’를 4회 연속 게재합니다.
<연재 순서>
① 어린이집 원장의 ‘사유재산 보장’은 ‘세금횡령 보장’
② 어린이집 원장 ‘부동산 기회비용’까지 보상하라고?
③ 어린이집 원장단체의 스피커가 된 교수, 변호사, 국회의원
④ 사회서비스원이 ‘블랙홀’이 될 거라며 막아낸 어린이집 원장단체
지난 25일 정부가 공립유치원에 사용되는 국가관리 회계프로그램 ‘에듀파인’을 사립유치원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로 나라가 들썩인 지 2주 만이다.
사립유치원 원장단체들은 경악했고, 민간어린이집 원장단체들은 숨죽이고 있다. 연 4조 원 규모의 누리과정 국고지원금은 유치원보다 어린이집에 약 2천억 원이 더 들어간다(`18년 예산 기준). 어린이집은 영아(0~2세) 대상 지원금과 각종 추가 보조금도 받는다. 복지부는 일단 연내 표적감사와 내년 전수조사를 예고한 상태다.
어린이집에도 국가관리 회계프로그램의 확대를 검토하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그런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다. 국공립어린이집에도 없다. 어린이집에는 국가가 회계를 관리하는 체계 자체가 없다.
어린이집은 국공립도 97%가 민간 운영. 국가관리 회계프로그램 없음
같은 공립이지만 공립유치원과 국공립어린이집은 운영구조가 천지차이다. 최근 공개된 ‘비리 유치원’ 명단들에 공립이 거의 없는 것은 시도교육청이 직접 운영‧관리를 하고 있어서다. 교육부 지정 회계프로그램인 에듀파인을 통해 교육청은 각 공립유치원의 수입, 지출, 영수증을 볼 수 있다. 실질적 회계사무자인 원장과 교사도 교육청이 직접 임용하는 교육청 소속이다. 국가가 총책임자가 되는 구조다.
반면 국공립어린이집은 97%가 민간 운영이다. 지자체들이 설립‧소유만 하고 운영은 민간에 우르르 위탁한 결과다. 당연히 회계사무도 함께 위탁된다. 전국 4만 여개의 어린이집 가운데 애초 국공립이 8%뿐이니, 이를 다시 국공립-공영으로 좁히면 0.2%(80여개). 통합적 관리의 필요가 없으니, 국가관리 회계프로그램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유치원과는 비리근절 대책의 출발점부터가 다른 배경이다.
회계는 원장이 관리, 지자체엔 연1회 결산 보고만
“어린이집 회계는 지자체 지도‧점검을 받고 포털에 정보공시도 되고 있습니다!” 어린이집 비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원장단체들이 꼭 외치는 말이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 어린이집 회계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공적 기관이나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다. 모든 어린이집 회계는 원장이 관리한다. 보육료 등 돈을 어떻게 썼는지에 관해서는 원장이 지자체에 연1회 결산만 보고한다. 그 내용은 ‘아이사랑 보육포털’에도 공개되는데, 1년 치 결산만으로 구체적 사용처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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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공시 된 서울시 모 어린이집의 2017년 세출결산서 중 일부. 이것만으로는 구체적 사용처는 알 수 없다. |
영수증 등 증빙서류는 어린이집에 두게 돼있다. 원장이 결산만 맞추고 증빙서류에 ‘명품백’ 영수증을 붙일 수 있는 이유다. 지자체 지도‧감독에 적발되어도 보통 시정(반환) 조치와 경고만 받는다. 수백만 원 영수증이 누락돼도 ‘증빙서류 보존 소홀’로 처리된다.
‘민간어린이집 회계규칙’을 따로 만들어달라는 속내는?
이처럼 국가가 운영‧사업비 대부분을 대면서도 직접 관리는커녕 결산보고만 받는 어린이집 회계. 이미 문제가 크다. 그런데 민간어린이집 원장단체들은 지금의 회계작성 규정마저 마음에 안 든다며 수년째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민간어린이집을 포함한 모든 사회복지법인은 ‘사회복지법인 재무회계규칙’을 적용받고 있는데, 이것 말고 ‘민간어린이집 재무회계규칙’을 따로 만들어달라는 요구다.
이들이 원하는 ‘민간어린이집 회계규칙’의 핵심은 설립자(대표자)가 어린이집에서 아무 일도 안 하더라도 수익을 챙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잠깐. 원장단체들이 이렇게 설립자를 챙기는 것은 설립자 대부분이 원장 본인 또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영유아보육법도 설립자와 운영자(원장)를 구별하고 있지 않다.
“원장 월급은 성에 안 차, 설립자 몫의 ‘뒷돈’도 합법화하라”
2013년에는 ‘민간어린이집 재무회계규칙’을 신설한다는 내용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양승조 대표발의)이 발의됐다. 관련하여 두 번의 국회토론회도 열렸다. 이 자리에서 어린이집 설립‧운영자가 사유재산을 출연하고도 “한 푼의 영리”도 추구 못 하는 건 ‘재산권 침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헌신과 봉사”에 대한 억울함도 토로됐다.
“헌신과 봉사를 해야 하는 어린이집에서 한 푼의 영리라도 추구하면 나쁜 어린이집이라 보는데 자기가 투자한 돈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을 받는 건 적정한 이윤이라 볼 수 있다”
- 백태영 성균관대 경영학부 교수(`14.6.27. ‘민간어린이집 보육의 질 향상을 위한 토론회’ 발제)
그런데 민간어린이집은 사회복지법인으로 자발적으로 설립됐다. 그리고 영리법인이 아닌 사회복지법인으로 설립됐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보육료, 시설 기능보강, 근무환경개선 수당, 보조‧대체교사 지원 등 각종 운영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팅은 보육이 시장에 맡겨져선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에 근거하기도 한다.
그 결과 가정어린이집에 국고로 들어가는 보육료 수입만 월 7~10백만 원 선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복지법인 회계규칙은 싫지만 영리법인용도 아닌 별도 회계규칙을 만들어달라’는 것은 지금처럼 국고지원은 계속 받으면서 영리사업도 하고 싶다는 심보다.
비영리법인이라고 원장의 “헌신과 봉사”가 무일푼인 것도 아니다. 원장은 운영자 급여를 받고 있다. 어린이집 결산 후 수익이 남으면 원장 등 직원의 급여 인상분이나 수당으로 편성‧지출하라는 게 복지부 지침이기도 하다. 즉 원장이 운영을 잘한 보상을 받고자 한다면 인건비로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
다만 원장, 교사, 조리사 등 어린이집 직원으로 등록되어 일하지 않는 사람이 금전을 받을 방법은 없다. 아무리 설립자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보니 지금껏 뒷돈을 챙기려는 원장들은 영수증 조작, 허위직원 등록 등 제법 수고와 적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설립자의 몫으로 따로 돈을 인출해갈 수 있게 회계규칙이 변경된다면 그런 번거로움이 사라진다. 원장단체들이 ‘민간어린이집 회계규칙’ 신설의 이점으로 ‘회계 위법성 시비 해소’, ‘과잉규제와 과잉처벌의 해소’를 들고 있는 이유다.
이런 식으로 원장단체들은 설립자와 운영자의 ‘분신술’까지 쓰면서 그간의 ‘뒷돈 챙기기’ 관행을 합법화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리고 불법이든 합법이든 어린이집에서 돈을 남기려는 욕구는 보육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 원장들의 ‘뒷돈 욕심’이 통제되지 않은 결과 지금 아이들의 식단이 어떻게 되었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