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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자기통치로서의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정치칼럼] 자유주의 세력의 시공간의 건너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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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이 각종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영화 속 실재 인물들이 재조명되고 영화에 출연한 ‘운동권 출신 배우’의 삶이 겹쳐지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아니 단순한 관심을 넘어 ‘신화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조차 하는데, 사실 신화화는 ‘그 무엇인가’를 대중적으로 과잉 소비시키려는 것과 맞닿아 있기에 그렇다.

<1987>은 보수자유주의와 수구파시스트 세력들이 두 축을 이룬 정치구조 속에서 일어난 1987년 전반기의 사건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중의 직간접적인 역사적 경험, 정서 등을 상업영화의 문법으로 버무려 만든 작품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12월 대통령선거 이전까지의 1987년은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대중적 영향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인데, 그것은 당시 대선과정에서 진보의 상징이었던 ‘민족민주세력’의 다수가 자신들의 정치적 대표로 자유주의정치세력 좌/우파의 리더였던 김대중, 김영삼을 지지하거나, 그들의 단일화를 요구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와 달리 5공화국으로 상징된 수구파시스트정치세력이 ‘박종철 고문치사’로 그 폭력적 민낯을 드러내며 나락에 빠진 때이기도 하다.

  1월 7일 영화 1987 관람 후 문재인 대통령 [출처: 청와대]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 이후 자유주의정치세력들의 집권욕 때문에 오히려 신군부가 재집권에 성공하고 한 발 더 나아가 1990년 3당합당을 통해 자유주의 우파들을 새로이 수혈함으로써 수구파시스트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1987>에서 ‘1987년의 사건’을 만드는데 매개 역할을 한 ‘재야인사들’이 그 과정에 동승하였음은 알려진 대로이다. 그 결과 수구파시스트들은 ‘보수’의 얼굴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연쇄반응에 의해 보수자유주의정치세력도 좌측으로 한 발 떠밀려 ‘진보’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적대와 투쟁의 관계’가 아니라 ‘갈등의 협력관계’로 진입하게 되었다. 즉 그 두 세력은 집권을 둘러싸고 계속 갈등, 경쟁하였지만, 특히 1997년 IMF관리체제 이후 신자유주의 좌/우파로 20년 동안 지배하면서 이 사회를 ‘1 대 99의 사회’로 만드는 ‘환상의 콤비’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고려할 때, <1987>은 제작자, 연출자 등의 의도, 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그 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직접적으로는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와 6월항쟁을 단선적으로 직접 연결시키고 있기에 그런 것일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1987’이라는 기표에 담겨져야 할, 상이한 다층적 기의들을 찾아볼 수 없기에 그렇다. 그 시기까지 수구파시스트세력은 물론 자유주의정치세력 등과 적대, 긴장 관계에 있었던 사회변혁운동세력들의 인식과 실천, 그리고 무엇보다 6월항쟁을 추동한 대중적 힘, 즉 수구파시스트 지배체제였기에 그 자체가 정치투쟁의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 등 기층 대중들의 삶을 위한 몸부림들, 저항들 그 자체가 카메라의 앵글로부터 벗어나 있기에 그렇다. 그리고 굳이 말하자면 그들이 사라진 빈자리에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순수한 대학 초년생’, 연희가 자리하고 있다. 그 당시 목적의식적인 정치투쟁의 맨 앞에 섰기에 가장 순수하기도 했던 여성들은 이처럼 변형되어 또 한 번 어이없이 소비되어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1987>은 논의의 여지는 있지만 해방정국을 제외하면 그나마 유일하게 ‘혁명의 시대’로 명명되고 있는 그 당시 수많은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 대중들과 학생들이 합법, 반합법, 비합법의 영역에서 ‘목적의식적, 조직적으로’-지금 이 용어들처럼 기피되고 수모당하는 것이 또 있을까. 목적의식적, 조직적이지 못한 정치와 운동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전개한 반파시스트투쟁에, 그것을 넘어 독점자본, 제국주의와의 싸움에 자신들의 삶을 건 이유에 대해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한다. <1987>이 ‘박종철, 이한열이 왜 죽임을 당했는가?’라는 질문에 의미 있는 응답을 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것이 주고 있는 것이라곤 고작 ‘국가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옹색한 답 아닌가. 하지만 그 답은 ‘결과’를 말하는 것이지 ‘원인’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지난 촛불항쟁으로 다시 집권에 성공한 자유주의정치세력의 영향력이 고조되어 있는 지금, 그들의 대중적 영향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7년 전반기를 새삼 <1987>로 소환하는 것에 담긴 함의를 생각해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이 영화를 본 대통령 문제인의 소감에서 간취할 수 있는데, 그가 정권교체에 실패한 6월항쟁이 촛불혁명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언술은 6월항쟁으로 상징된 대중투쟁의 역사를 신군부파시스트의 재집권에 헌납한 ‘원죄’로부터 벗어나고픈, 아니 아예 그 기억과 기록을 지워버리고 싶은 무의식적 반응으로 보아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촛불항쟁 이전에 이미 그들은 ‘국민의 정부’인 김대중정권, 그리고 ‘참여정부’인 노무현정권 등의 집권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신의 원조세력과의 결합(DJP연합)을 통해 집권한 김대중정권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유주의정치세력이 독자적으로 집권하였던 노무현정권의 출범은 ‘6월항쟁의 완성’이 아니었는가. 그 누구도 쉽게 예상치 못했던, 그렇기에 더 극적이었던 노무현정권의 등장을 추동한 당시 대중의 ‘그 어떤 열망’은 그저 한낮의 소나기처럼 허망한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는가. 그렇기에 그러한 언술을 접하며 진정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거기에 놓여 있는 ‘시공간의 건너뛰기’이다. 즉 그 언술에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7-8월 노동자투쟁, 그리고 ‘민주정부 10년’의 집권기를 포함한 2017년 촛불항쟁시기에 이르기까지 보수자유주의정치세력이 노출했던 정치적 무능력, 반민중적이고 비(반)민주적인 행태가 잘려나가고 없다. <1987>에서 ‘모순의 역사들’이 소실되었듯이 말이다. 왜? 그들 자신의 ‘정치적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에 자유주의 세력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단도직입으로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에 자유주의정치세력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들은 과거 5공화국의 신군부파시스트가 지배하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기층 대중들이 중심이 된 크고 작은 반박근혜정권, 반재벌 투쟁 그리고 그것이 확장된 촛불봉기로 집권가능성의 활로가 뚫리자 갑자기 전면에 나서 그 성과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촛불혁명 때문에 집권할 수 있었다’는 대통령 문재인의 고백은 이를 확인해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즉 애초부터 대중과 함께 하였다면, 그토록 어이없을 정도의 국정농단, 적폐가 가능했을 리 없고 그런 점에서 자유주의정치세력들 또한 국정농단, 적폐를 가능케 한 직무유기의 정치적 주체이며 공모자인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정권, 아니 이명박정권 이후 저질러졌던 국정농단과 적폐의 증거들은 그들과 타협하며 생존하기에 급급했던 자유주의정치세력의 무능력을 드러내주는 또 다른 증거인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그들은 애써 그것을 보지 않는다. 그저 그들은 <1987>이 자신들과 ‘보수정치세력’이 태생적으로 다른 정치적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에 취해 집단관람, 번개모임 등 ‘천 만 관객 동원’을 위한 이벤트 등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1987>은 그 의도, 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대중의 정치적 상상력을 1987년에 대한 특정한 해석에 가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발산, 작동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퇴행적이다. 몇 해 전, <변호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1987>이 대중에게 소비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그 어떤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그러한 퇴행성은 민주주의를 박제로 만드는 것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여기, 살아 있는 현재의 모순들, 갈등들의 위에만 자신의 거처를 짓기 때문이다. 현재-미래의 모순된 관계들을 과거에 가두려하면 할수록 민주주의가 점점 창백해지고 말라비틀어지는 이유이다.

그렇기에 이 순간에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 이들의 눈빛, 숨결, 몸짓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어깨를 나누지 않으면서, 상이한 계급, 성, 인종, 민족 등의 이유로 가장 고통 받는 이들의 호소와 울부짖음을 외면하면서 <1987>에 눈물을 흘리고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운위하는 것은 그저 감상에 젖은 자기위안일 뿐이다. 무엇보다 <1987>의 폭력성, 야만성을 ‘증거’로 삼아 과거 전두환 혹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시기로 돌아가고 싶냐며 현 정권의 반민중적, 반민주적 한계에 눈감고, 심지어 현 정권에 맹목적 지지를 보내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행태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서로 비교하여 유보하고자 하는 그 어떤 발상, 행태와 아무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지점에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자기통치로서의 민주주의’는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렇기에 ‘그런 세상이 가능하냐?’고 묻는 것 또한 난센스라는 사실이다. 이미 오래 전에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는가. ‘인민의 자기통치로서의 민주주의’는 과거에도, 자신의 시대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는 선택을 유보할 수 없는 하나의 갈림길만이 존재할 뿐이다. 오지 않을, 실현될 수 없는 것이기에 타협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언제나 낯설게 존재하는 그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하는 것인가. <1987>의 소란에 자기통치로서의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는 이유이다.
  • 익명

    예리한 관점입니다. 다만 수구파시스트 앞에 '냉전'을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근 평창 동계 올림픽의 북한 참여를 두고, 조중동 등 보수지와 자유한국당이 취하는 태도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특히 중앙일보 류의 세련된 자유주의 집단도 북한 문제에 단호한 태로를 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의 기득권 층이 분단 상태가 해소되면 상당 부분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분단 상태가 진보정당이나 노동조합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게 매우 큽니다. 사실 지금 정부는 전통적인 기득권 세력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삼성, SK, 현대 등은 모두 군사정부 시절부터 성장한 곳이고, 민주당은 재야에 있다가 97년 이후에서야 정치 권력을 획득하게 됐습니다. 뚜렷한 철학이 없다보니, 신자유주의 노선을 따라 가게 됐고, 그 결과 이른바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비정규직 문제가 악화된 부분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전통적인 기득권 층과 같은 수준에 두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