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시흥캠퍼스 조성을 반대하며 점거한 지 115일. 서울대 본부(행정관) 1층 로비에는 바리케이드도 들어섰다. 학생들은 의자, 책상으로 정문을 막고 청테이프로 문을 봉쇄했다. 문고리에 나무판자도 걸어 놨다. 학생들은 로비 정문에 상자로 경비소도 세웠다. 서울대 측의 본부 침탈에 맞선 학생들의 바리케이드다.
▲ 서울대 본부 바리케이드 [출처: 김한주 기자] |
▲ 서울대 본부 바리케이드 [출처: 김한주 기자] |
바리케이드는 지난달 23일 서울대 직원들의 본부 침탈 직후 세워졌다. 바리케이드 안 쪽 본부는 학생 공간으로 변모했다. 학생 20여 명은 ‘총장 성낙인’ 명패 앞에 은박지 돗자리를 깔았다. 회의실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열람실로 쓰인다. 사무실은 끼니를 해결하는 거실이 됐다. 1층 로비에는 ‘학생자치경비소’가 세워졌다. 본부 공간마다 좋은 책상과 의자가 있지만, 학생들은 곳곳에 돗자리를 깔고 115일째 점거 생활하고 있다.
지난 25일엔 서울대 시흥캠퍼스를 반대하는 학생들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25일 기준 서울대 학생들의 본부 점거 투쟁 지지에 연서명한 사람만 약 3천 명에 달한다. 지난달 21일 13차 범국민행동에선 서울대 학생이 무대에서 발언하고, 현장에서만 약 500명의 서명을 받았다.
그런데도 서울대 학생들의 최장기 점거 투쟁은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학내 여론도 점차 식는 분위기다. 서울대 본부에서 만난 이시헌 학생은 “언론은 학내 분규로만 보도하고, 심지어는 ‘학생 반발로 신도시 개발 사업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는 보도도 많다”며 “시흥캠퍼스 사업은 학생을 팔아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고, 본질은 대학 공공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대학의 명예와 자본의 거래’를 막기 위해 점거했다고 전했다. 서울대의 명예, 시흥시의 토지, 한라건설의 자본으로 이윤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 돗자리가 깔려있는 서울대 총장실 [출처: 김한주 기자] |
▲ 열람실로 바뀐 서울대 본부 회의실 [출처: 김한주 기자] |
“부동산 투기금으로 짓는 시흥캠퍼스”
서울대는 시흥캠퍼스 건설 사업에 대해 2025년까지 세계 10위권 대학 진입을 목표로 한 ‘서울대 장기발전계획(2007~2015년)’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전인 교육형 기숙사와 교직원 아파트 뿐 아니라 글로벌 융복합 연구단지시흥캠퍼스를 건립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각종 융합연구도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서울대 ‘본부점거본부(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주장하는 학생자치기구)’에 따르면, 시흥캠퍼스 조성 사업 규모는 1조8000억 원에 달한다. 이 재정은 서울대와 시흥시, 한라건설이 실시협약을 맺어 개발 이익을 창출한 데에서 나온다. 시흥시가 한라건설에 부지 약 20만 평을 판매하고, 한라건설이 6,700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해 개발이익을 취한다. 이 개발이익으로 시흥캠퍼스, 교육/의료 산학 클러스터 조성 계획에 필요한 시설을 지어 서울대에 무상 기부하는 것이다.
본부점거본부는 “여기서 서울대 본부가 파는 것은 ‘서울대’라는 학벌주의적 프리미엄이자, 이를 통해 받아오는 건 부동산 투기금”이라며 “‘서울대가 들어온다’는 시흥 신도시에 대한 시장에 기대를 높여 부동산 투기를 조장한다”고 말했다. 또 “이는 곧 서울대가 사실상 부동산 투기금으로 캠퍼스를 조정한다는 뜻이며, 투기로 인한 손실, 경제 위기를 조장하면서도, 대학 공공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본부점거본부에 따르면, 시흥캠퍼스 조성 사업으로 서울대가 거둘 이익은 1,500억 원에서 4,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이유로 2007년부터 학생들은 학교와 1,024일 동안 싸워왔다. 하지만 지난해 8월 22일, 서울대는 시흥시, 한라건설과 시흥캠퍼스 조성 사업 실시협약을 체결했다. 학생들은 이날 실시협약이 언론 보도를 타기 3분 전에야 통보를 받았다. 학생들은 학교 측이 반발이나 논란을 피하기 위해 계약을 밀실에서 체결했다고 보고 있다.
단전, 단수, 폭행부터 신입생 여론 관리까지
학생들은 지난해 10월 10일 학생총회에서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위한 대학 본부 점거를 의결했다. 학교는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본부점거본부에 따르면, 서울대 청원 경찰이 12월 17일 학생을 폭행하기도 했다. 당시 학생들은 전임 총장들이 서울대 본부 점거 사태를 중재하러 왔다는 소식에 호암교수회관으로 항의 방문을 가던 중이었다. 그러나 청원 경찰 3-4명이 학생을 바닥에 눕혀 짓눌렀다. 피해 학생과 지지하는 학생들은 12월 20일 청원 경찰들을 관악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서울대 홍보팀은 2월 1일 <참세상>과의 통화에서 검찰이 지난달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전했다. 그러나 본부점거본부는 “증거 사진도 있는데 말도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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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학생을 제압하는 서울대 청원경찰 [출처: '서울대 본부는 점거중' 페이스북] |
서울대는 또 지난달 17일과 19일 오리엔테이션에 온 신입생에게까지 서울대 본부 점거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참여하면 형사처벌, 징계사유가 될 수 있다며 엄벌을 놓았다. 비슷한 내용으로 13일 신입생 가정통신문을, 16일엔 “소수 학생이 행정관을 불법 점거하고 있으나, 행사(오리엔테이션)는 차질 없이 진행할 예정”이라는 문자도 발송했다.
지난달 13일에는 본부를 점거한 학생 29명에게 징계 조사 통보, 사흘 뒤인 17일엔 학생들이 있는 본부에 단전, 단수 조처를 내렸다. 학내 여론 악화로 전기, 수도는 다시 공급됐지만, 난방은 여전히 제한하고 있다. 난방이 끊길 당시 체감온도 영하 14도였다. 엄동설한에 학생들은 온풍기 몇 대, 담요로 추위를 피하고 있다.
서울대는 지난달 20일 오전에는 본부 유리벽에 경고문을 붙이기도 했다. “점거를 목적으로 행정관에 출입하는 학생은 징계가 엄중히 가중되며, 형사처벌 및 손해배상 청구 등의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같은 기간 서울대는 건물 곳곳에 경고문 현수막도 세웠다. 그리고는 “CCTV 촬영 중, 경고문 무단 훼손 시 처벌”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오는 9일 서울대에선 전체학생대표자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전학대회에서 본부 점거 투쟁 방향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이시헌 본부점거본부 정책팀장은 “일단 총회 개최, 촛불 집회 발언 등 대중 행동으로 연대를 확대하고, 국회 토론회도 기획해 여론을 환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부를 점거한 김상연 학생은 “시흥캠퍼스는 서울대가 법인 체제에서 어떻게 독자 생존할 것인가, 즉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에서 출발했다”며 “박근혜 정부 들어서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사라졌고, 오히려 재정지원사업을 명목으로 정부의 대학 개입을 늘려나갔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방학이다 보니 사람이 없어 점거 투쟁이 조금은 힘들지만, 남아있는 학우들과 방학 동안 많은 사람에게 알리자는 마음가짐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본부에는 약 20명의 학생이 남아있다. 이들은 교육의 의미, 대학의 본질을 물으며 ‘서울대’를 점거 중이다.
▲ 서울대 본부 1층 로비 [출처: 김한주 기자] |
▲ 서울대 본부 1층 로비 [출처: 김한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