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좌파의 위기,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국제토론회에서 허석렬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가 낸 분석이다. 국제전략센터(대표 김혜숙) 등의 단체가 3일 서강대에서 연 이 토론회에는 국내외 다양한 전문가가 참석해 핑크타이드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전망을 내놨다.
신자유주의 한계 속 중도좌파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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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렬 교수는 “핑크타이드는 단일한 흐름이 아니지만 라틴아메리카 민중에 강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 일어난 광범위한 대중투쟁의 성과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좌파가 집권했다”는 점을 전제했다. 허 교수는 크게 2가지 조류로 나눠 그 성과를 분석했는데, 먼저 “베네수엘라, 에콰도르에서는 헌법 제정을 통해 시민사회의 재구조화, 인권,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자원 민족주의와 천연자원의 민중적 분배 등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졌다”고 봤다. 반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은 기존 경제정책에 대한 근본적 전환 없이, 신자유주의와 개발주의, 국가 역할의 증대와 복지기금 확충을 통한 빈곤경감과 수요 확충 등 이른바 헤테로독스(이교적) 경제정책을 도입했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베네수엘라는 고유가 기간에 막대한 달러를 쏟아 부어 환율을 방어할 수 있었지만 집권 말기부터 외환 보유고가 줄어들면서 외환 통제를 시작했으나 그 결과 암달러 시세가 폭등하고 인플레이션 고삐가 풀렸다”고 위기의 배경을 짚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두고는 “결국 세계시장 내에 편입된 경제적 방식을 전혀 바꾸지 못하면서 그 결과 세계 경제 조건의 변화가 오자 이는 곧 좌파 정권의 정치적 위기로 나타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제 관계에서도 “라틴아메리카 좌파정부들은 석유와 천연가스(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광물과 농업적 잉여(브라질, 아르헨티나) 수출로 외환을 벌어들일 수 있었고, 중국과의 교역 관계를 강화하며 피상적으로는 국제 질서의 다극화, 다중심화와 일치하는 듯 보였다”면서도 “사회진보에 필요한 자립적 산업화를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별로 내지 못했다”고 풀이했다.
결과적으로 허 교수는 “2010년 이후 세계적인 장기불황 국면에서 중국 경제성장률마저 떨어진 뒤 각국은 산업 다변화와 남미 경제 통합으로 극복하기 보다는 경쟁적으로 자국 상품 시장 확대에 골몰했으며, 금융자본과의 타협이나 긴축 재정을 시도했다”며 “이는 대중의 반발을 불러 일으켜 각종 선거에서의 패배와 우익 세력의 불안정화 전략에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브라질, 저소득층 보다 금융 분야 예산이 더 많아”
“브라질의 위기와 호세프 대통령 탄핵”을 주제로 발표한 페데리코 푸엔테스 국제사회주의저널 <링크스> 부편집장은 브라질의 현재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헤치며 위기의 원인을 분석했다.
페데리코 푸엔테스는 “브라질 노동자당은 좀 더 타협적이었으나 정책적 노선은 분명했고 그것은 신개발주의였다”며 “국가를 산업화했고, 이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보장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개발주의의 모델이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룰라 정부의 경제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경제 개발 한편에서 사회복지 정책을 병행했고 이 분배의 성과로 하위 빈곤층 20% 소득 상승 폭이 상위 20% 보다 커졌지만, 상위 1%의 부는 더욱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룰라는 집권 8년 동안 금융 분야 활성화에 연방 예산을 집중 투입했고, 이 때문에 6천억 달러 규모의 브라질 엘리트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저소득층 예산 보다 많은 돈이 금융 분야로 흘러 들어갔고 결과적으로는 금융 분야의 장악력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푸엔테스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대해선, “집권 뒤 개발주의 정책의 영향으로 가시화됐던 탈산업화와 세계 경제위기의 압력 속에서 구조 개혁에 나서고자 했다”며 “첫 번째는 금융 분야였고 2011년부터 금융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면서 갈등이 증가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책적 혼선도 늘면서 2013년 호세프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또 이듬해 대선 때 긴축을 반대하여 재선을 했지만 이후 다시 긴축을 택했다”고 전했다. 이어 “금융, 산업 분야에 있어 자본과의 차별화가 부족했다”며 “투자를 통해 제조업을 성장시켰어야 하는데 예산은 금융 분야로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푸엔테스는 2013년 호세프 반대 시위에 관해 “한 번도 이 정권을 지지한 적이 없는 중산층이 주도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 이직률이 높고 저임금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참가했고 이들이 주요 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공서비스가 낙후하고 약속이 유예되면서 시위가 급속하게 증가했고 좌파 정권이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서 “세계 경제 위기와 우파 상업 언론 등의 문제도 있지만, 호세프 정권은 사회운동의 요구도, 민중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렇다고 자본가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부패 문제에 휘말리면서 위기 상황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좌파의 위기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기”
국제토론회에서는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위기와 전망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도 나왔다.
김은중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는 “세계 경제의 구조적 불안, 대의민주주의의 붕괴 등 현재의 위기는 좌파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위기였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며 “그러나 자본의 위기에 대안을 마련하려면 자본-국가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이나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교수는 “우파는 베네수엘라 민주주의가 훼손 됐다고 하는데, 오히려 차베스 이후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는 더욱 강화됐다”며 “베네수엘라의 현재는 정치 혁명이 사회 혁명으로 가기 위한 과도기라고 보인다”고 짚었다.
송대한 국제전략센터 월간국제동향 편집장은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에 더 이상 공공연하게 개입할 수 없자 엘리트의 경제 사보타주와 불안정을 강화하고 동시에 군대와 미디어를 이용하여 분할 지배하고자 한다”고 미국의 역할을 제기했다. 그는 경제적으로는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를 포함한 태평양동맹으로 핑크타이드를 압박하는 한편, 미국국제개발처(USAID)로 민주주의를 약화하고, 마약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미군을 배치하고 언론 통제를 통해 좌파 정부들을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페데리코 푸엔테스 <링크스> 부편집장은 끝으로 “핑크타이드는 사회운동에서 시작됐다”며 “사회운동과 좌파 정권 각각의 역할을 확인하고 진정한 민중권력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번 토론회는 국제전략센터,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가 공동 주관했으며, 주한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 대사관이 후원했다.
* <워커스> 22호에서는 “세계 경제 위기와 핑크타이드 그리고 좌파의 과제”에 대한 페데리코 푸엔테스 <링크스> 부편집장 인터뷰가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