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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인권위원장 취임 1년, 태생적 한계 넘어서는 인권리더십 없다

밀실 인선, 인권 경력 부재, 법적 잣대로 인권 해석...성소수자 혐오에 ‘종교 세력’ 눈치 보며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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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현병철 시대’는 갔다. 2015년 8월 13일 새로 취임한 이성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시대는 과거와 달라졌나? 안타깝게도 달라졌다고 할 수 없다. 그 점이 인권운동 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유감이다.

태생적 한계 넘으려는 노력 필요해

이 위원장의 임명은 국제인권기구 권고에 따른 공개적이고 투명한 인선절차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와대의 밀실 내정으로 이루어졌다.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인권위원 임명 절차가 법에 없다 보니, 임명권이 있는 청와대, 국회, 대법원에서 밀실 인선과 보은 인선을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위원들의 자격이나 권력 눈치보기를 제어하기에 역부족이다. 그동안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이나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 (GANHRI : Global Alliance of National Human Rights Institutions, 구 ICC) 등 국내외 인권단체들은 인권위 구성의 80%가 판사, 변호사 등 법조인 출신이 많아 인권위가 사회구성원의 이해를 대변하고 감수성을 발휘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왔다. 그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인 이 위원장을 내정했으니 시민사회의 비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위원장이 현병철 시대와는 다른 인권위의 모습을 보여주려면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밀실 인선이라는 인선절차의 불투명성, 인권 관련 경력의 부재, 법조인 출신이라는 인권위원 인적 구성의 한계를 시민사회와의 협력 속에서 넘어서려고 노력했어야 마땅했다.

어정쩡한 시민사회 협력으로 인권위의 신뢰성이 되살아날 수 있을까

그러나 1년이라는 시간을 되돌아보면 아쉽다. 1년이라는 시간은 관료화가 뿌리내린 국가기구인 인권위에서 관료화된 인권위 직원들과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에 짧은 시간일 수 있다. 청와대나 새누리당이 임명한 반인권 무자격 인권위원들과 인권에 기반을 둔 논의를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권 기준이 아닌 법으로 사안을 판단하거나 소수자에 대한 편견 있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인권위원들과 논의를 맞추기 위해서는 위원장인 그가 더 인권을 배우고 시민사회와 협력해야 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1년간 과연 얼마나 시민사회와 협력하였나?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 등급심사소위원회에서 A등급을 받기 위한 간담회나 하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시민사회 신뢰를 회복하려면 더욱 인권적 관점을 견지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과거 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 인권전문가들과 함께 인권정책이나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자문을 구하고 토론하고 활동하던 모습을 회복하려면 최소한의 신뢰 기반이 필요하다. 지금 이 위원장은 바로 그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권력 눈치 보기, 어디까지인가

그 신뢰는 인권위가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인권원칙을 단호하게 지키는 모습을 통해서 마련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굵직한 인권침해 현안이나 정책에 대해 인권위는 팔짱만 끼고 있었다. 인권위는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는 정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시행령에 대해서만 의견표명을 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민중총궐기 때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직사된 물대포를 맞고 의식을 잃은 백남기 농민에게 자행된 국가폭력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조사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농민대회 때 경찰폭력으로 사망한 고 전용철 농민 사망사건에서 보여준 태도와 정반대다. 당시 조영황 전 위원장은 민간조사단과 협력하여 진상조사단을 구성, 조사하고 결과를 발표했다.

성소수자 혐오가 극심한 현실도 수수방관하고 있다. 이 위원장 인사청문회 때 밝혀졌듯, 그는 법원장 시절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과정에서 성소수자 인권감수성 부족으로 트랜스젠더에게 수치심을 주는 부당한 자료제시를 요청한 바 있다. 그런 만큼 성소수자 인권에 관해 관심 갖고 배우고 성소수자인권 진영과 함께해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2015년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위원회(약칭 자유권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권고한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단호한 입장 표명을 아직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하기에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에 관한 성명에서 장애인, 이주민 등 여러 사회적 소수자를 언급하면서도 성소수자만 빠진 것이 실수라고 보긴 어렵다. 백남기 농민 사건에서 국가권력을 눈치 보았듯, 성소수자 혐오에 앞장서는 일부 종교 세력의 눈치를 본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인권위가 인권에 기반을 둔 기구로 거듭나려면 국가권력만이 아니라 사적 권력에 대해서도 인권 원칙을 지켜내야 한다. 인권위원장이라는 자리는 ‘출세를 위한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법정책연구회 등은 작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이성호 인권위원장을 성소수자 차별로 진정했다. 인권위가 보수 기독교 단체의 눈치를 보며 성소수자 차별 실태조사 보고서 공개를 미루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물론 최이우, 이은경 등 성소수자 혐오를 주도한 사람들이 인권위원으로 있는 현실에서 이 위원장이 처한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국제인권 문헌들을 보고 국제사회가 어떻게 성소수자 인권을 보장했는지 거론하며 인권위의 역할을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

익명에 가린 인권위원의 막말들, 투명하게 드러내야

그런 점에서 이 위원장이 취임 후 인권단체들과 만난 자리에서 약속한 ‘인권위 회의록 상 인권위원 실명공개’를 조속히 시행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이은경, 최이우 같은 사람들이 인권 기준에 반하는 말들을 자유롭게 하거나, 안건조차 제대로 읽어오지 않는 인권위원들의 무책임한 행태는 줄어들 것이다. 세상이 알까 두려우면, 인권에 대해 열심히 배우고 고민하며 제대로 된 인권위원 역할을 하려 하지 않겠는가.

인권운동 하는 사람으로서 이 위원장 취임 2년째는 좀 더 달라진 점이 있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국가권력이나 기업·종교 등 사적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인권단체들은 필요한 모든 자원을 들여 협력할 것이다. 인권위의 새 시대는 그렇게 해야 올 수 있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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