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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과음 경고 문구, "임신 중 술 마시면 기형아 낳는다"

복지부 새 행정예고 고시, '장애아 출산' 공포 강화.. 남성 과음률은 여성의 3배, 그런데 왜 '여성 음주'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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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알코올은 발암 물질로 지나친 음주는 간암, 위암 등을 일으킵니다."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기형이나 유산, 청소년 음주는 성장과 뇌 발달 저해, 지나친 음주는 암 발생의 원인입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산을 일으킵니다.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이제 내년부터는 술 마실 때마다 이러한 문구를 마주해야 할지 모른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22일 '흡연 및 과음 경고 문구 등 표시내용'에 관한 고시 일부개정안을 행정예고하며 8월 10일까지 의견을 수렴한다고 밝혔다. 이 배경엔 올해 2월 국회를 통과한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있다. 당시 7건의 안이 통합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이중엔 작년 5월 신경림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신 의원이 제안한 안에는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내용의 경고 문구를 표기"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임신부의 음주는 태아 알코올 증후군의 주요 원인이 되는데, 가임기 여성 음주율이 급증했다는 게 이유였다. 태아 알코올 증후군은 임신 중 알코올 섭취로 태아에게 나타나는 정신적·신체적 질환이다. 증상으로는 출생 전후의 성장 지연, 얼굴과 두개골의 형성 이상, 심장기형 등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개정안이 올해 3월 공포되면서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 4조에 있는 '과음 경고 문구'도 바뀌게 됐다.

현재 과음 경고 문구는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로 시작하여, 그 뒤엔 "청소년의 정신과 몸을 해칩니다.", 또는 "특히 임신 중의 음주는 기형아 출생률을 높입니다.", 혹은 "운전이나 작업 중 사고 발생률을 높입니다"라는 셋 중 하나의 문구로 이어진다.

  주류용기에 부착된 현재의 과음경고 문구.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 운전이나 작업 중 사고 발생률을 높입니다"라고 쓰여있다.

그러나 이제 과음경고 문구 '시작'이 달라진다. '기형아 출산' 관련 문구가 전면에 노골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당시 신 의원은 "임신부에 대한 주류 판매 금지 대책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경고 문구 표기로 "임산부 및 태아의 건강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개정 목적을 밝혔다.

남성 과음률은 여성의 3배, 그런데 왜 '여성 음주'만 문제?

개정안을 발의한 신 의원은 가임기 여성 음주율이 급증했다고 하지만, 한국은 음주율 자체가 전체적으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성별로 보면, 2014년 기준으로 남성은 74.4%, 여성은 46.4%로 남성의 음주율이 훨씬 높다. 고위험 음주율도 남성이 여성보다 3배 이상 높다. 고위험 음주율의 경우, 남성은 2014년 20.7%의 수치를 기록한 반면, 여성은 같은 해 6.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지언정 남성에 비하면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이러함에도 음주 문제를 왜 여성에게만 한정하는가, 차라리 음주로 인한 보편적인 건강상 부작용을 경고하는 것이 '국민 건강'을 위해 더욱 적절하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유림 건강과대안 젠더건강팀 연구원은 "6대 암과의 연관성, 만성질환 등 음주의 수많은 건강상 부작용에 대해선 개입하지 않고 음주가 임신 중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라면서, "정부는 주류 판매 규제, 주류 광고 규제 등은 전혀 하지 않고 '과음 경고 문구' 따위를 통해 국민 건강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복지부는 왜 모든 주류용기에 이를 부착하려는 걸까.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담당자는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기형아 출산이 경각심 제공 측면에서 효과 있다고 판단하여 의무적으로 포함시켰다"고 답했다. 즉, 장애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을 강화해 사람들이 음주를 기피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제까지 임신부에게 임신 중 음주에 대한 정보제공의 의무를 다했을까. 지난 4월, 복지부가 발표한 제4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을 보면 태아 알코올 증후군에 대한 국가 정책은 이제야 걸음마 수준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 계획에 따르면, 복지부는 내년도부터 보건소와 병·의원 등록 시 임산부에게 태아 알코올 증후군 교육을 실시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임신부에게 임신 중 음주에 대한 정확하고 공식적 정보를 알려주는 절차는 이제까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가 밝힌 '과음 경고 문구' 신구조문 대비표

개정 목적이 '임산부와 태아 건강 보호'? 어디에도 '임산부 건강 보호'는 없다

이번 고시에 대해 여성계도 여성의 선택권과 건강권에 위배되는 방침이라고 말한다. 쎄러 민우회 여성건강팀 활동가는 "여성을 임신하고 '아이 낳는 몸'으로만 보는 국가의 관점이 드러난다"며 "임신부의 건강이 아니라 '아이의 건강'만을 담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신 의원은 개정안 발의 취지에서 '임산부와 태아의 건강 보호'라고 밝혔으나, 개정안과 하위법령 어디에도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은 없다.

2010년 기준으로 OECD 국가 평균 모성사망비(임신과 관련 원인으로 임신 또는 분만 후 42일 이내에 발생한 여성사망자 수)는 출생아 10만 명당 9.8명이었으나, 한국은 15.7명으로 평균을 훨씬 웃돈다. 한국의 높은 모성사망비의 배경엔 출산 연령의 고령화가 있다. 즉,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수많은 사회·구조적 해법을 필요로 하는데, 한국 정부는 고작 음주 경고 문구로 '협박'해 해결하려는 것이다.

결국 행정예고된 고시는 여성의 존재를 대상화하고 장애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는 방침이 될 공산이 크다. 정부는 지금 '기형아 낳기 싫으면 알아서 조심하라'고 여성에게 '경고'하고 있다. '기형아 출산'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고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려는 발상은 근본적으로 우생학과 맞닿아 있다. 국가는 이를 통해 장애아의 존재를 지우려는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이 '경고 문구'를 달리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덧붙이는 말

강혜민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