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는 2차 시범사업을 서울 구로구, 노원구, 충남 천안시 등 10개 지방자치단체 4000명의 장애인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복지부는 지난해 하반기에도 서울 구로구 등 6개 지자체에서 장애인 2565명을 대상으로 1차 시범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복지부는 두 시범사업 결과를 토대로 2017년 하반기 개편된 장애등급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이번 사업 목적으로 장애등급 개편과 서비스 전달체계를 만들어 “장애인 맞춤형 서비스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서비스 종합판정체계’를 도입한다. 이는 장애인의 신체 기능, 일상생활 수행 능력, 장애 특성, 사회·환경적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새로운 판정 도구’다. 서비스 종합판정체계는 우선 활동지원제도, 거주시설 입주 등 현물서비스에 우선 적용할 예정이다.
이번 시범사업에서 서비스 전달체계는 어떻게 바뀔까. 첫 번째로 장애인이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면,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가 ‘의학적 기준으로’ 장애 등록 여부를 심사한다. 이후 국민연금공단 장애인지원센터가 신청자의 상황을 조사하고, 개인별 서비스 이용계획을 수립한다. 지자체는 이를 심의·의결한다.
여전히 ‘의학적 기준’이 먼저, 예산 확대는 ‘없어’… ‘장애등급제 문제’ 해소 못해
이러한 사업 계획은 복지부가 지난해 5월 장애계 대상 간담회에서 소개한 ‘장애등급제 개편 시범사업 계획안’(아래 개편안)을 거의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은 개편안이 장애등급에 따라 개인의 복지 서비스를 제한하는 현재의 장애등급제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고 지적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는 2차 시범사업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당시 복지부가 내세운 서비스 종합판정체계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 기능·장애·건강 분류’(ICF) 등 장애인의 사회·환경적 욕구를 고려한 지표가 아니었다. 2차 시범사업에서 제시한 서비스 종합판정체계에는 평가 항목에 가족 구성원의 나이·건강·사회활동 여부, 거주 위치 등이 일부 반영되긴 했다. 그러나 장애인의 사회적 욕구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종합판정체계 이전에 의학적 기준으로 장애를 등록하는 절차도 여전히 남아있다. 사실상 의학적 기준으로 서비스 제공 여부를 결정하는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또한 복지부가 이번 시범사업으로 확보한 총예산은 13억3600만 원에 불과하며, 지자체 한 곳당 9000만 원의 예산이 배분된다. 시범사업에 투입되는 70여 명의 인건비, 종합판정체계 운영비용 등을 고려하면 정작 서비스에 사용될 예산은 터무니없이 적다. 실제 시범사업으로 시행되는 서비스는 주간활동, 야간순회, 응급안전 등 4개뿐이다. 이중 주간활동 서비스는 복지관 등과 연계되어 제공되는 교육, 직업훈련 등의 프로그램을 장애인활동지원 급여를 변경해 사용하는 거다. 즉, 기존 활동지원 급여에서 사용하면 되기에 서비스 예산 확대와는 무관하다. 야간순회, 응급안전 등도 장애계가 요구하는 ‘하루 24시간 활동지원 보장’에 역행한다. 사실상 2차 시범사업에서도 장애인 욕구에 근거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시행 효과를 평가해 정식 제도에 반영하는 과정이 이뤄지긴 어렵다.
복지부는 장애인연금의 경우, 종합판정체계와는 다른 별도의 기준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속내를 들여다보면, 재정적 부담을 이유로 현행 대상자 기준(1~2급, 중복 3급 장애인 중 소득 하위 70%)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이다. 감면·할인 서비스도 중·경증으로 나뉘는 장애등급 개편에 따라 기존 장애 등급 1~3급을 중증, 4~6급을 경증으로 대체하게 된다.
이에 대해 장애등급제 폐지를 주장해온 전장연 등은 이러한 방식으로는 장애인의 소득을 현실에 맞게 보장할 수 없다고 비판해왔다. 이들은 장애인연금의 등급 제한을 없앤 후,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비용’을 보전하는 기초 급여와 ‘1인 최저생계비 수준의 비용’을 추가 급여로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감면·할인 서비스는 장기적으로는 직접적인 소득 보장인 장애인연금으로 통합하는 안을 제시했다.
장애인개발원에서도 복지부의 장애등급제 개편을 염두에 두고, 지난해 ‘장애인 감면·할인서비스 지원기준현황과 개선방안 연구’를 발표했다. 보고서를 보면 감면·할인 서비스의 장기적 개편 방향은 전장연 등의 요구와 유사했다. 단기적 개편 방향은 일상생활과 사회 활동을 지원하는 서비스의 경우 장애등급과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제공하고, 소득 보전 성격의 서비스는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지원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복지부 시범사업엔 장애계, 학계의 요구와 연구 내용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2차 시범사업의 문제점 낳은 복지부의 ‘밀실 행정’… 장애계 “시범사업 전면 재검토해야”
장애등급제 개편 과정에서 보여준 복지부의 밀실 행정은 이와 같은 시범사업의 문제점을 낳은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복지부는 2014년 개편안을 논의했던 민관 협의체인 ‘장애종합판정체계 개편 추진단’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장애인단체들을 배제했다. 복지부는 개편안을 발표하고 이번 2차 시범사업에 들어갈 때까지도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장애계의 의견 수렴 과정은 일체 거치지 않았다. 결국 이들 항의가 빗발치자 복지부 장애등급제 개편 TF팀 관계자들은 지난 12일에서야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시범사업 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전장연 활동가들이 서비스 예산의 부족을 지적하자, 복지부 관계자는 “예산을 확충하려고 해도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삭감한다”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시범사업에서 서비스를 추가하지 않는 부분에 관해서는 “올해 시범사업 예산에선 인건비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2017년부터 본 사업을 시작하고 욕구 조사할 때 예산이 부족하면 추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경증 단순화 폐지 요구에도 복지부 관계자는 오히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신청한 장애인이 근로능력 평가를 면제받는 것과 같은 특례 제도가 있는데, 만약 등급을 폐지하면 특례로 면제됐던 심사들도 받아야 한다. 중·경증으로 등급을 나누는 것이 편하지 않는가.”라며 “당장 등급을 없애면, 감면·할인 제도나 특례 제도의 자격을 개별 평가해야 하는데 이는 행정적인 비용이 많이 든다”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복지부 관계자가 의견을 수렴하고 대안을 검토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해명하고 관철하려 한다고 항의했다. 이에 전장연은 복지부 관계자에게 2차 시범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조현수 전장연 정책실장은 “감면·할인 제도에 대한 연구 결과가 있음에도, 복지부는 대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제도 개선 없이 감면·할인 서비스를 중·경증 단순화의 정당화를 위한 방패로 삼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복지부는 장애인 연금과 감면·할인 서비스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복지 예산과 대상자의 확대, 급여 현실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감면·할인 서비스도 장애인 연금과 통합할 수 있는 부분은 당장 시행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조 정책실장은 “장애종합판정체계의 1차 관문으로 의학적 손상을 판단하고, 장애종합판정체계가 기존 활동지원 인정조사를 확대 재구성한 의학적 관점의 평가가 되는 것이 우려된다”면서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 개인별 지원계획에 반영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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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홍식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