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6일 아침부터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핵심은 '충돌' '마찰' 등이었다. 건설노조가 18대 정부요구안을 내걸고 7월 6일, 상경한 가운데 경찰청은 '엄정대처'를 말했다. 마치 폭도들이 떼로 몰려올 것처럼 기대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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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7월 7일 <조선일보>에 실린 7월 6일 시청광장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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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6일 시청광장 집회 후 청소 다한 모습 |
우리는 착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어리석을 정도로 참고 살았다. 새벽별 보고 나와 다시 밤 별보며 들어가고, 천형 같은 노동을 하며 저놈이 떼먹고 이놈이 등쳐먹어도 '못 배운 죄' 탓하며 소주 한잔 털어넣고 쓰린 속 달래가며 참았다. 그렇게 죽도록 일하다 죽었다. 건설현장 노동조건은 끝을 모르고 막장으로 치달았다.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 극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고 7월 6일처럼 투쟁한 것이다. 그러나 건설노조 투쟁에 담겨있는 한과 응어리는 온데간데 없었다. 경찰들은 발생하지도 않을 '충돌'을 넘겨 짚었고, 결국 평화로웠던 투쟁은 청소 건으로 <조선일보> 사회면 전면 보도를 장식했다. 그리고 ‘<조선일보> 가라사대’가 있은 후 보수 매체들이 이를 받아쓰기 시작했다.
우선 일간지의 나태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7월 6일 행사를 7월 8일에, 이틀이나 지나 보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도 내용도 왜곡이다. 요즘 집회하면서 청소하는 건 기본 센스다.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은 순간이다. 집회 후 청소차량을 동원해 청소했다. 이런 걸 해명해야 한다는 게 슬플 정도로 말끔했다.
이 기사를 쓴 기자들의 양심에 묻고 싶다. 당신들은 건설노동자가 지은 집에서 살고, 건설노동자가 지은 회사에서 일하고, 건설노동자가 지은 공원에서 쉰다. 그 노동, 그 땀의 가치가 제대로 대접받고 있는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나. 상경투쟁에 온 그날에도 건설노동자는 현장에서 2명 죽었다. 그날 시청광장에 모였던 건설노동자는 모두다 임금을 제때 못 받는다. 당신들이라면 어떡하겠는가. 이번 달 월급을 조선일보 회사에서 일단 이번 달에 안주고, 2~3개월 밀려서 주고 때때로 떼먹는다면. 하루 2명씩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서 죽어나간다면 당신들은 어떡하겠는가. 당신들의 언론보도에 누군가는 억울하고 분해서 피눈물을 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