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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의무자 폐지’되면 너도나도 수급자 된다?

‘부양의무자 폐지’ 둘러싸고 ‘시민사회계-복지부’ 공방 벌여
복지부 관계자 “부양의무자 폐지되면, 공무원연금 자식 주고 나도 수급자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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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상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빈곤층을 옥죄고 있다’는 시민사회계의 비판에도 보건복지부는 요지부동이었다.

14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부양의무자 기준과 사회적 기본권 보장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시민사회계는 기초법 상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둘러싸고 보건복지부와 날 선 공방을 벌였다.

‘송파 세모녀법’이라고 불린 ‘기초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오는 7월로 1년이 된다. 그러나 복지사각지대의 주범으로 불리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여전히 건재하다. 2010년 기준으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임에도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자가 되지 못한 ‘비수급 빈곤층’은 117만 명에 달했다. 이에 2015년 7월, 정부는 기초법 개정으로 사각지대가 해소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개정 후,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로 수급자로 흡수된 이들은 약 12만 명에 그친다. 사실상 여전히 많은 이들이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


현행법에서 수급자격 선정 기준은 소득인정액과 부양의무자 기준에 따른다. 소득인정액은 가구별 소득평가액과 재산의 소득환산액을 합산한 금액이다. 즉, 경제적 능력을 평가하는 소득인정액이 이미 개인이 아닌 ‘가구 단위’로 평가된 것이다. 그런데 기초법은 또다시 부양의무자 기준을 통해 1촌 직계혈족과 배우자의 소득까지 합산하는, 이중의 ‘가구 단위 소득평가’를 시행한다.

그런데 이 부양능력 평가에 있어 ‘실질 부양 능력’이 아닌 ‘잠재적 부양가능성’을 평가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김지혜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교수는 바로 이 지점이 부양의무자 기준의 주요 특징이라면서 “이는 잠재적 부양가능성이 실질적 소득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타당한가. 김 교수는 ‘민법상의 부양청구권 이행’을 가정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민법상 부양청구권은 자기 생활이 어려울 때 부양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를 상대로 소송하여 사적부양비를 청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는 사실 현실성이 결여된 가정”이라고 지적한다. 법원 판결을 거쳐야만 하는데, 실질소득이 없는 빈곤층이 대부분일 것으로 기대되는 이들이 장기간의 소송 기간과 비용을 부담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설령 부양의무 거부‧기피에 대한 공방이 법정으로 가도 인용 받긴 어렵다. 배진수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부양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양 거부‧기피로 보지 않는 판례가 대부분”이라면서 “이러한 까닭에 거부 처분받으면 이의신청해보고 그마저 인정되지 않으면 더는 다투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부양의무자의 의무 불이행 사정에 대한 입증 부담은 고스란히 수급자의 몫이다. 입증하지 못할 시, 수급자 입장에선 수급 탈락 혹은 삭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김지혜 교수는 “부양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부양권리자)에게 ‘부양받을 책임’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구조적 모순이 있다”면서 “사회보장급여의 거부나 정지가 형사적 제재는 아님에도 그 영향력은 형사적 제재만큼 심각하다”고 말했다.

박성민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는 “본질적으로 같은 자를 달리 취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등권에 위배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부양의무자가 없고 소득인정액이 생계급여 선정기준보다 낮은 A는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A와 경제적 상황이 동일하고 부양의무자가 있지만 실제 부양받지 못하고 있는 B는 생계급여를 받을 수 없다. 설령 부양받을 수 없는 상태일 때도 ‘증명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수급 자격 여부는 결정된다.

결국 빈곤층이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비를 받지 못하면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곳에서 벗어날 탈출구는 없다. 따라서 이날 발제자들은 현재 산적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부양의무자 폐지’만이 방법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러나 복지부의 견해는 달랐다. 실제 부양이 아닌 잠재적 부양을 이유로 수급 탈락시키는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에 박재만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 과장은 “잠재적 가능성이 아니라 실질 가능성만 본다면 ‘의무’는 없어진다. 부양 안 하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반박했다. 또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사적 부양은 보지 않겠다는 거다. 그러면 일정 소득 이하는 모두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가.”라면서 “제도 시행 과정에서 불합리한 게 있다고 제도 자체를 없앤다면 기본적인 게 없어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 과장은 “부양의무자 기준이 없어지면 나 같아도 공무원연금 일시에 받아 자식에게 다 주고 수급자가 될 것”이라면서 “이는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합리적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복지부 입장에 이날 토론자와 참여자들은 일제히 공분했다. 윤애숙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이 복지부 과장으로 있다는 게 놀랍다”면서 “현재 생계급여가 1인 가구 47만 1000원, 2인 가구면 80만 원가량”이라고 꼬집었다. 현재 보장 수준은 ‘최저’에 그쳐 일상적인 생계조차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윤 활동가는 “현재 부정수급 90%가 기관이 저지르는 것이다. 없는 직원 있는 척 등록하고, 정신병원은 실제 없는 병상 수 늘려서 부정수급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해선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수급자 개개인이 저지르는 것에 대해 ‘굉장한 부정수급’이라니, 이게 복지부가 할 말인가”라고 질타했다.

김지혜 교수는 “공무원 연금 포기하고 수급비 받는 것이 얼마나 현실적인지에 대해 조사하여 논의하면 좋겠다. 전 국민이 국가로부터 일정 금액 받는다면 그게 현재 유럽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이다”면서 “이는 새로운 사회보장제도인데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상상할 수 있지 않나. 결국 원칙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모든 제도를 운영할 땐 지키는 사람이 있고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는 제도의 오류”라면서 “현재는 제도의 오류에 대한 부담을 수급 신청자에게 전부 떠넘기고 있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미 부양의무자 기준 산정을 위한 복지부 지침만 600쪽에 달하는 ‘행정적 비용 발생’을 지적하며, “이젠 추상적 논의를 넘어 TFT를 꾸려 구체적 논의를 진행할 단계”임을 강조했다.
덧붙이는 말

강혜민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