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4.11 총선에서 다수당이 못 될 것 같아 야당의 발목을 잡기 위해 꼼수로 만든 국회 선진화법이 오히려 새누리당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2월 초 정부조직법 논란이 시작될 때 민주통합당이 안건조정위원회를 요구한 후 우원식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한 말이다.
우원식 수석부대표가 이 말을 뱉은 지 한 달여 만에 새누리당은 국회 선진화법 개정 여론에 군불을 지피고 나섰다.
18대 국회 막바지에 통과된 일명 국회 선진화법은 국회법 개정안을 뜻하며 당시 새누리당이 주도했다. 다수당의 독주를 막고 이견 발생 시 안건 조정 장치를 마련해 몸싸움을 방지한다는 의미에서 선진화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국회 선진화법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안건조정위를 통한 안건조정제도다. 안건조정제도는 이견을 조정하기 위해 안건조정위 회부를 요구하면 자동적으로 회부요구일로부터 안건조정위에 회부되는 제도다. 안건조정위는 조정 개시구성일로부터 90일간 안건을 다루게 돼 이 기간 동안 상임위 표결이나 직권상정이 불가능해 진다. 즉 안건조정위에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안건 처리가 최대 90일까지 미뤄진다는 뜻이다. 국회선진화법 개정 요구엔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에 몸이 달은 여당의 날치기라도 할 수 있게 하자는 속내가 담긴 것이다.
여기에 민주당이 지난 4일 국회 윤리위 전체회의에서 이종걸, 배재정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안건조정위원회 회부 요청으로 무산시키기도 했다.
극회선진화법은 또 국회의장 직권상정의 요건을 천재지변, 국가비상사태, 교섭단체대표 합의 등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 제도도 담았다. 재적의원의 3분의 1(100명)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무제한 토론을 종결하기 위해선 재적의원의 5분의 3(180명) 이상이 찬성하도록 한 것.
상황이 이러니 새누리당은 국회 선진화법 개정 요구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5일 확대 원내대책회의에서 “요사이 국회 선진화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너무 빈번하다”며 국회 선진화법 개정을 시사했다.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도 7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국회 선진화 법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사실 선진화법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저희가 과반수를 가진 정당인데도 야당이 합의해 주지 않으면 표결할 수도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김 수석부대표는 “표결을 반드시 보장하는 제도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며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과반수 정당을 만들었으면 국회에서 과반수가 표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국회 선진화법 개정 추진을 강조했다.
이런 여당의 움직임을 두고 박원석 진보정의당 원내대표는 7일 논평을 통해 “이한구 원내대표의 여야 합의로 마련된 지 불과 1년도 안 된 국회 선진화법을 개정하자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라며 “결국, 새누리당은 정부조직법 협상에 있어 야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오직 대통령의 과욕을 국회에서 관철시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음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