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역시 노동위원회에 양대노총 출신 대규모 인사들을 포진시키며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중요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노동자 대통령 후보를 선언한 무소속 김소연 후보는 아예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핵심 슬로건으로 내걸고 출마했다.
유독 2012년 대선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주요 의제로 부상한 이유는 뭘까. 지난 5일 민주노총과 민교협 등 교수 4단체가 주최한 ‘비정규직·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대선 토론회’에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근본적 접근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김대중 정부로부터 시작된 정리해고법과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법은 노동유연화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재벌의 규제를 완화했고, 이명박 정부는 두 개의 법을 본격적으로 현실에 적용하며 노조법 개정을 통해 노동기본권의 최후 보루인 노동조합마저 무너뜨렸다. 김대중 정부에서 이명박 정권까지 지난 15년간 신자유주의 규제완화 노동정책은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를 통한 양극화와 노동자·가족의 자살 같은 사회문제를 드러냈다.
문제의 심각성은 사회적 연대를 만들었고 2012년 대선에선 각 후보들이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를 논하지 않으면 표를 얻지 못하게 됐다. 다시 주요 후보들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은 문제보다는 정치적으로 예단한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자신의 방식이 해법임을 주장하고 있다.
권영숙 교수, “정리해고는 뭐고 비정규직은 뭔지 부터 살펴봐야”
그러나 권영숙 민교협 노동위원장(서울대)은 이런 방식의 접근에 문제를 제기했다. 권영숙 위원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현재 노동의제 관련해서 정치권에서 이른바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방식은 거의 게임에 해당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라며, 예컨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 몇몇 운운하는 숫자놀이로 진행되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모든 게 정치적 구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현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봐야만, 또 문제의 근본을 들여다봐야만 현실적인 안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영숙 위원장은 “97년 이후 노동배제적인 민주주의 15년 동안 우리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렇게 노동배제적인 사회에서 노동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는가”를 질문하면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논의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정리해고는 뭐고 비정규직은 뭔지부터 살펴봐야한다”고 설명했다.
권영숙 위원장은 우선 “해고와 정리해고(massive lay-off)의 차이를 알 필요가 있다”며 “정리해고는 한국자본주의를 흔들리게 한 외환위기 과정에서98년 노동법 개정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97년 이전엔 통상적 해고만 있었고 대량의 정리해고는 없었다”고 이어갔다.
그는 하지만 지금 “15년 전 위기의 산물인 정리해고가 마치 계속 있었던 기본 정책인 양 얘기되고 있다”며, “자본의 위기가 국가의 일방적인 비호와 온 국민의 도움으로 2년 만에 종결된 후, 자본은 더욱 비대해지고 재벌은 더욱 막강해졌지만, 위기 극복의 최종적 완성은 자본이 노동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한 정리해고”라고 설명했다.
권 위원장은 “정리해고 조항이 있는 한 노동은 죽은 목숨이며, 노동의 조직된 힘으로 자본과 정상적인 산업적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런 식의 법조항이 있는 한, 노동자에 대한 학살이 계속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이 정리해고제도 자체를 없애지 않고 정리해고 요건 강화 같은 자본과의 타협적 제도 보완을 내세운 것은 현실성을 감안했지만, 실제 현실의 대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정리해고의 역사성을 이해해야 한다”며, “정리해고는 노동시장의 문제가 산업정책이 아닌 사회적 수준의 문제임을 이명박 정부가 쌍용차 사태 23명의 죽음으로 알려줬으며, 정리해고가 학살이라는 이해가 생겨났고, 국가는 노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권 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두고도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누가 ‘노동자’인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권 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명분과 실제를 일치시키면 된다, 현실과 법의 불일치를 해소하면 된다”면서, “정규직의 ‘일’을 하고 상시적 ‘고용관계’에 있는 모든 노동자를 정규직이라고 간주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를 노동법에 분명히 명기하고, 일시적 고용관계만 비정규직으로 하면 된다”며 “특정 단기고용이나 법정 노동시간 외 하루 몇 시간 만 일하는 시간제 노동자 등만 비정규직으로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권 위원장은 이와 관련 최근 진보정당들을 포함하여 여러 정당들이 최병승(현대차 비정규직 대법 승소자) 법을 만들고 또 무슨 법을 만들고 덧대고 하는데 대해 비판을 가했다. 그는 “그간의 비정규직 보호특별법이라는 것들이, 특별법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비정규직을 허용하고 자본이 다른 핑계거리를 만들 근거를 주는 법안이었을 뿐이었다”고 비판하면서, “문제 해결의 기본방향은 98년이후 자본이 주도한 모든 노동관련 특별법을 폐지하면 된다. 그리고 있는 노동법을 잘 지키고 노동자에게 노동의 권리를 부여하면 된다”고 밝혔다.
“특별법 폐기, 노동법으로 해결”
권영숙 위원장은 각 당 후보의 공약을 두고 “새누리당의 노동 공약은 이야기는 그럴듯하지만 기존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이라며 “기간제법에서 ‘사용사유’ 제한을 택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노동시장 경직성과 고용시장 위축을 내세우는데, 그럼 과연 비정규직을 계속 늘려나가는 게 고용시장 팽창이냐”고 비판했다.
민주당에는 “문재인 후보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50%로 줄인다고 하는데 50%는 어디서 나온 수치이며, 로드맵을 만들 수나 있는지 궁금하다”며 “매우 기계적이며, 그런 점에서 공약자체가 허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일자리 혁명으로 일자리 개념을 바꾼다며 비정규직 ‘직접고용’이라고 표현하는데 무기계약직을 만들면 다 직접고용이고 ‘정규직 전환’이냐”며 “존재하는 특별법을 두고 조금 개선하는 것은 그냥 우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권 위원장은 “통합진보당의 노동공약은 민주노동당을 전신으로 하는 정당에서 비정규직·정리해고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 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기간제 1년 초과 시에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여전히 ‘사용사유’ 제한보다도 더 후퇴한 ‘기간’ 개념에 빠져 있다. 민주당보다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김소연 후보의 공약을 두고는 “제 주장과 가장 부합하는 노동정책”이라며 “김소연 후보의 기본요지는 특별법들을 폐기하고, 있는 노동법의 강화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 같다. 직업안정법을 강화하고 온갖 위헌적인 변태적 행위에 대해 징벌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실 관철 가능성 아닌, 현실 문제 해결 가능성의 문제”
조돈문 카톨릭대 교수는 노동에 대한 규제 관점에서 접근했다. 조돈문 교수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제외한 후보들은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 규제강화 입장을 공유하며 규제강화 블록을 구성하고 있다”며 “야권 후보들은 상시적 업무 직접고용 정규직 사용에 동의하고 있는 반면, 비정규직 사용 사유제한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 법제화 방법에서는 기간제법의 개정을 지칭하고 있어 비정규직 전반에 대한 사용사유 제한의 법제화에는 못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조돈문 교수는 이어 “문재인 후보와 김소연 후보가 상시적 업무의 직접고용 정규직 사용을 구체적으로 공약한 반면, 김순자 후보와 이정희 후보가 비정규직 사용 규제의 핵심인 상시적 업무의 직접고용 정규직 사용 원칙 공약을 포함하지 않은 것은 진보후보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또한 “야권 후보들은 정리해고제와 관련하여 사유를 업격히 제한하고 해고회피 노력의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며 “그 가운데 문재인 후보와 김소연 후보는 정부개입을 강화하여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고 정리해고 추진 절차에 대한 노동조합의 개입을 강화한다는 공약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김소연 후보는 노동조합의 개입 방식을 단순한 노사협의가 아니라 노사합의를 강제함으로써 부적절한 정리해고 가능성을 차단하는 강력한 장치를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돈문 교수는 진보후보 쪽에 “진보후보들은 대선운동을 통해 시민들에게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과 정리해고의 부당성 등을 알리는 데 큰 의의를 두고 있으며, 이중 김소연 후보가 의제화 투쟁 전략을 가장 분명하고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며 입법화 전략과 입법화를 위한 민주당과의 협력 필요성을 묻기도 했다.
이를 두고 김소연 후보 선거본부의 김혜진 정책위원은 “현실적으로 관철할 수 있느냐가 현실성의 기준이 되는 게 아니라 어떤 안이 현실에 적용될 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며 “많은 후보가 문제를 해결 한다고 한 공약이 정말 해결할 수 있느냐의 질문이 필요하다. 파견법이나 정리해고법을 폐지하지 않으면 제도 개선을 해도 그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고 밝혔다.
김혜진 위원은 “당선 가능성이 없어서 입법화 전략에 있어 민주당 측과 협력 필요한 것 아니냐는 고민이 있을 수 있지만, 협력의 조건은 우리가 더 밀고나갈 힘을 축적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며 “일정하게 유연성을 보장하고, 다른 권리를 주고받는 방식이면 오히려 우리 내부의 힘을 축적하는 것이 아닌 흐트러뜨리는 방식이 된다. 그런 측면을 분명히 할 때 어떻게 현실화 전략에서 연대가 가능할 건가의 문제로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노총과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조, 학술단체협의회, 한국비정규교수노조가 주최한 가운데 이도흠 민교협 상임의장의 사회로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에서 열렸다.
패널로는 권영국 민변 노동위원장, 김성희 고려대 교수, 권영숙 민교협 노동위원장이 참석했으며, 각 대선후보 캠프에선 정태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김인재 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 일자리위원, 김성혁 통합진보당 진보정책연구원 연구실장, 김혜진 무소속 김소연 대선 후보 선투본 정책위원, 김성일 무소속 김순자 대선 후보 선대본부장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