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건설
2003년 3월 19일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협력업체 세화산업에서 일하던 송성훈씨가 관리자에게 식칼로 아킬레스건을 잘리는 엽기적 사건이 벌어졌다. 현대차 아산공장 하청노동자들은 관리자 처벌을 요구하며 이틀 동안 파업을 벌였고 3월 28일 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을 건설했다.
아산공장 사내하청노조 건설은 5월 2일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투쟁위원회 결성과 7월 8일 현대차비정규직노동조합 건설로 이어졌다. 전주공장에서도 하청노동자연대투쟁위원회가 만들어졌고 2005년 2월 비정규직지회가 건설됐다.
현대차 울산, 아산, 전주공장에 사내하청노동자들이 급증한 건 1998년 이후부터다. 1만명 넘게 정리해고로 빠져나간 정규직 일자리를 채운 것은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2000년 6월 현대차 노사는 1997년 8월 이전 하청인원 투입 비율인 16.9%까지 비정규직 투입을 허용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다. 1998년 8월 기준 5,000여명이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0년대 중반 1만명 가까이 배로 늘었다.
2004년 노동부 불법파견 판정
2004년 5월 27일 금속연맹, 현대차비정규직노조,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가 울산공장 12개, 아산공장 9개, 모비스 1개 업체 등 22개 업체를 노동부에 불법파견으로 진정했다.
8월 20일에는 현대차 정규직 노조가 현대차와 113개 사내하청업체(울산공장 101개, 전주공장 12개)를 파견법 위반으로 노동부에 진정했다.
9월 22일 노동부는 금속연맹과 현대차비정규직노조, 아산사내하청지회가 진정한 22개 업체 중 울산 12개 업체와 아산 9개 업체를 불법파견으로 인정했다. 모비스 1개 업체는 불법파견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현대차 정규직노조의 진정에 대해 노동부는 10월 21일 전주공장 12개 업체의 불법파견을 인정했고, 12월 16일 울산 101개 업체와 아산 14개 업체에 대해서도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2005년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에 따라 울산 현대차비정규직노조는 2005년 1월 18일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에 돌입했다. 5공장사업부가 파업에 들어갔고, 1,2,3공장사업부는 3일 동안 잔업을 거부했다. 5공장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농성투쟁은 9월 하순까지 계속됐다.
1월 22일 비정규직노조 최남선 조합원이 원하청 연대를 요구하며 정규직노조 사무실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5공장 파업으로 비정규직노조 안기호 위원장을 비롯한 100여명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이 해고됐다.
8월 25일 새벽 2차 하청업체인 현대세신, 신한, 계림, 해성 노동자들의 파업을 시작으로 비정규직노조는 2차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2005년 류기혁 조합원 자결
2005년 9월 4일 사내하청업체 부경기업에서 해고된 류기혁 조합원이 현대차 울산공장 맞은편에 있던 비정규직노조 사무실 옥상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다음날 새벽 비정규직노조 김형기 조직쟁의팀장, 김태윤 조직4부장, 최병승, 손현상 해고자가 승용3공장 베타엔진공장 앞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태풍 나비의 북상으로 거세진 비바람 속에서 21시간을 맨몸으로 버틴 농성자들은 6일 농성을 풀고 철탑을 내려왔다.
9월 13일 현대차 노사는 단체교섭 체결 후 1개월 안에 현대차, 정규직노조, 비정규직노조 3자 실무단위가 협의를 통해 특별교섭을 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 원하청 3주체는 10월 두 차례 특별교섭을 벌였다. 하지만 노사간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2006년 8월 파상 파업
2006년 3월, 5개월만에 불법파견 특별교섭이 다시 열렸지만 노사는 평행선을 달렸다.
6월 29~30일 비정규직노조는 희망퇴직 공고가 붙은 3공장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부분파업을 벌였다.
6월 29일 정규직노조가 조합원 71.54%의 찬성으로 산별노조로 전환했고, 다음날 비정규직노조도 조합원 91.46% 찬성으로 산별 전환이 가결됐다.
7월 29일 정규직노조의 임금협상이 타결된 뒤 비정규직노조는 33개 업체의 쟁의권을 확보하고 8월 14일부터 독자 파업에 나섰다.
이날 비정규직노조 최병승 사무국장이 경찰에 연행됐고 며칠 뒤 김태윤 수석부위원장도 구속됐다.
비정규직노조의 8월 파상파업은 현대차 울산, 아산, 전주 비정규직 세 노조와 정규직노조, 현대차의 3자 협상을 이끌어냈다. 3자는 9월 15일 기본급 7만3,920원 인상과 단체협약에 잠정합의했다. 하지만 잠정합의안을 둘러싼 비정규직노조 내부 논란이 격화되면서 박현제 위원장이 사퇴했다.
9월 29일 울산공장 조합원총회에서도 53.1% 반대로 잠정합의안이 부결됐다. 노조는 3기 신병두 집행부를 선출하고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다시 벌여 손배가압류와 고소고발 취하 등 면책 합의를 추가한 잠정합의안을 다시 도출했다.
11월 29일 치러진 조합원총회에서 2차 잠정합의안은 조합원 81% 찬성으로 가결됐다.
검찰의 면죄부와 법원 불법파견 판결
2006년 7월 12일 울산지방검찰청은 노동부가 고발한 현대차의 파견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혐의 판정을 내렸다. 같은 날 중앙노동위원회는 비정규직노조 조합원 89명이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 판정을 기각했다. 다음해 4월 18일 부산고등법원은 노동부 고발에 대해 원심과 마찬가지로 무혐의 판정을 내렸다.
7월 10일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 15명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은 행정법원에서 원고 패소로 끝났다.
이듬해 2월 12일 서울고등법원도 사건을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0년 7월 22일 비정규직지회 안기호, 최병승 조합원이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상고심에서 “2년 이상 근무한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판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2011년 2월 10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은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최병승 조합원의 정규직 지위를 다시 확인했다.
2012년 2월 23일 대법원은 현대차의 불법파견과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최종 확정 판결했다.
2007년 6월 1일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조합원 7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아산공장 사내하청노동자로 2년 이상 근무한 조합원 4명이 승소했다.
2010년 11월 12일 고법에서도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이겼다.
2010년 11월 4일에는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 1,940명이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과 임금차액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구제 명령도 줄을 이었다.
2011년 9월 15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조합원 193명이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신청에 대해 187명의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이 사건에 대해 2012년 6월 1일 중노위는 물류와 도장부 등 3개 업체를 빼고 의장, 엔진 등 6개 업체의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지난해 12월 16일 울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 484명이 부산지노위에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신청도 승소했다.
2012년 3월 8일 전북지노위도 현대차전주비정규직지회 조합원 23명이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신청에서 17명에 대해 구제 명령을 내렸다.
5월 2일 중앙노동위원회는 최병승 조합원 부당해고재심판정에서 최 조합원에 대한 해고가 해고절차를 위반한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다.
하지만 현대차 회사는 중노위 판정에 불복, 6월 8일 행정소송을 냈다.
2010년 울산공장 CTS 점거파업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2010년 11월 15일 현대차 울산 1공장 CTS(도어 탈착 작업장)를 점거하고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25일 동안 파업을 벌였다. 울산공장 파업은 전주와 아산공장으로 확대됐다.
11월 20일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영남권대회에서 황인화 조합원이 분신했다.
12월 9일 농성을 푼 비정규직지회는 특별교섭을 이어가며 재파업을 시도했다.
2011년 2월 12일 노덕우 전 수석부지회장과 김태윤 조합원이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광고탑 위에 올라 농성에 들어갔다.
17일 비정규직지회는 재파업 출정식을 열고 21일 2차 파업을 벌였다. 2010년 점거 파업으로 17명이 수배됐고 6명이 구속됐다. 253명이 8억2,180만원의 벌금에 약식기소됐고, 336명에게 82억원의 손해배상이 청구됐다. 울산 48명, 아산 41명, 전주 15명 등 104명이 해고됐고, 정직, 감봉 등 1,500여명이 징계를 받았다.
2012년 파업과 송전탑 고공농성
2011년 2월 23일 3대 이상수 집행부가 조합비 유용 건으로 사퇴하고 3월 2일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비정규직지회는 그 뒤로 1년 2개월 동안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다 2012년 4월 4일 4대 박현제 집행부를 선출하면서 정상화됐다.
정규직노조와 울산, 아산, 전주 비정규직 세 노조로 이뤄진 현대차원하청연대회의는 4월 25일 사내하청노동자 전원 정규직화와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 중단 등 불법파견 특별교섭 6대 요구안을 확정하고, 8월 10일부터 부분파업과 전면 파업을 벌였다. 8월 18일 사측 경비들이 김성욱 조직부장, 이진환 선전부장, 천의봉 사무장, 이도한 총무부장을 폭행하고 강제로 차에 실어 공장 밖에 내버렸다.
현대차는 8월 20일 정규직노조와의 단체교섭과 21일 7차 불법파견 특별교섭 자리에서 2015년까지 사내협력업체노동자 3,000여 명을 직영화하겠다고 제시했다.
비정규직지회는 “사측이 제시한 불법파견 안은 회사 채용기준에 맞는 3,000명만 신규로 채용하고 나머지 5,000여명은 공정재배치로 합법도급화하겠다는 쓰레기안”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비정규직지회는 노조 간부 폭행과 3,000명 신규 채용안에 반발해 20일 밤 공장 진입 투쟁을 벌였다.
또 비정규직지회는 정규직지부에 불법파견 문제를 정규직지부 단체교섭에서 다루지 말 것을 요구하며 8월 22일 정규직지부 사무실 앞에서 연좌농성을 했다.
정규직지부는 24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불법파견 문제를 정규직지부 교섭에서 다루지 않는 안을 놓고 찬반 논란을 벌였지만 결론을 내지 못 하고 심의 보류됐다.
8월 27일 비정규직지회는 투쟁하는 조합원을 우선 정규직 전환한다고 결정했다. 29일 회사와 정규직지부는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특별교섭에서 다루기로 합의했다.
9월 15일 이재환 조합원이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10월 17일 밤 대법에서 불법 파견 판정을 받은 최병승씨와 비정규직지회 천의봉 사무장이 명촌 주차장에 있는 송전탑에 올라 농성을 시작했다.(기사제휴=울산저널)
파견법 14년, 고용 유연성 확대 VS 질나쁜 일자리 증가
<파견법 역사>
김영삼 정부 때 새벽 날치기 통과로 시작된 파견법
98년 민주노총의 ‘자살골’ 법 제정 노사정 합의
노무현 정부 들어 재계 주장대로 개악 거듭
파견법 제ㆍ개정의 역사는 고용 유연성을 합법적으로 확보ㆍ확대하기 위한 재계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여 온 과정이다. 정부는 파견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고 말해왔지만 노동계는 질 나쁜 비정규직, 파견 일자리만을 확산시킨다며 반발해왔다.
96년 12월 26일 새벽 신한국당이 ‘근로자 파견제’를 포함한 노동법 개악안을 날치기 통과 시켰다. 민주노총이 이에 반발해 이듬해 2월 28일까지 파업을 해 근로자 파견제 도입을 일단 막았다.
97년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근로자 파견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한다. 결국 98년 2월 6일 정부와 경총,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열어 근로자 파견법 제정에 합의했다.
2월 20일 마침내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7월 1일 부로 시행됐다. 이 법에서는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 업무를 제외하고 26개 직종에 한해 전문 지식, 기술 또는 경험 등을 필요로 하는 업무의 경우 2년, 일시적, 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6개월까지 근로자 파견사업을 행할 수 있다고 정했다.
또 사용사업주가 2년을 초과해 계속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정했다.
파견법시행 2년이 다가오자 사용사업주들이 파견노동자 직접고용을 피하기 위해 해고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KBS에서 운전을 하던 노동자들, 길병원 간병인 노동자들이 2년이 되기 전 해고를 당했다.
2003년 10월 정부는 파견근로대상업무를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정해진 직종을 제외하고 모두 파견근로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으로 확대하고 2년 넘게 근무한 노동자들에 대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재계약을 거부할 수 없게 한 파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는 사용사업주가 직접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당시의 법보다도 후퇴한 것으로 노동계의 반발로 결국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 했다.
2004년에도 정부는 파견근로대상업무를 네거티브방식으로 전환하고, 파견기간을 최장 3년으로 연장하는 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파견 근로자를 늘여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려는 재계의 끊임없는 요구 때문이었다.
한편 노동부는 2003년 현대차 하청 노동자 1만여명에 대해 불법 파견을 인정했다. 현대차에 이어 하이닉스, INI스틸, GM대우 창원공장,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불법파견 판정이 이어졌다.
2006년 12월 파견법 개정안이 4년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파견가능업무를 기존 26개에서 32개 업종, 191개 직종으로 확대하고, 2년초과 파견노동자의 경우 직접고용으로 간주한다는 고용의제 조항에서 과태료를 물면 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고용의무 조항으로 바뀌었다.
2011년 12월 ‘파견기간 위반이나 무허가파견 등의 불법파견이 확인되면 사용기간에 관계없이 사용사업주가 해당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파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2012년 8월 2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9월 4일 고용노동부는 사내하도급 활용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을 벌여 씨제이대한통운, 협성정공, 우리산업 등 5개 업체에서 불법파견을 적발하고 근속기간 2년 미만 노동자 93명을 포함 123명을 직접고용하도록 시정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고용의무 조항을 피하기 위해 불법파견 소지가 있는 사내하청업체 공정을 계약해지하고 그 자리에 직고용 촉탁계약직 노동자를 투입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투쟁일지
2003.3.28. 현대차 아산사내하청지회 건설
5.2. 현대차비정규직투쟁위원회 결성
7.8. 현대차비정규직노동조합(위원장 안기호) 건설
2004.5.27. 금속연맹, 현대차비정규직노조,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노동부에 22개 사내하청업체 불법파견 진정
8.20. 현대차노조 현대차와 113개 사내하청업체 파견법 위반으로 노동부 진정
9.22. 노동부, 울산 12개 업체와 아산 9개 업체 불법파견 인정
10.21. 노동부, 전주공장 12개 업체 불법파견 인정
12.16. 노동부, 울산 101개 업체와 아산 14개 업체 불법파견 판정
2005.1.18. 5공장사업부 파업, 1,2,3공장 잔업거부
1.22. 최남선 조합원 분신
2. 현대차전주비정규직지회 건설
8.25. 2차 부분파업
9.4. 류기혁 조합원 자결
9.5. 김형기, 김태윤, 최병승, 손현상 철탑 고공농성
10. 불법파견 특별교섭
2006.7.12. 검찰, 노동부 고발 무혐의 판정
중앙노동위원회, 부당해고구제재심 판정 기각
8. 파업
9. 단체협약 잠정합의, 잠정합의안 부결, 2기 박현제 위원장 사퇴, 3기 신병두 위원장 선출
11. 추가 잠정합의, 가결
2007.4.18. 부산고법, 노동부 고발 무혐의 판정
6.1. 아산사내하청지회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승소
7.10. 행정법원,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 원고 패소
2008.2.12. 서울고법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 항소심 기각
2010.7.22. 대법원,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상고심 “2년 이상 근무한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한다”
11.4.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 1,940명 근로자지위확인과 임금차액청구소송 제기
11.12. 아산사내하청지회 근로자지위확인소송 고법 승소
11.15. CTS 점거파업(25일)
11.20. 황인화 조합원 분신
2011.2.10. 서울고법 파기환송심 현대차 불법파견 인정
2.21. 2차 파업
9.15. 충남지노위 아산사내하청지회 부당해고 인정
12.16. 부산지노위 비정규직지회 부당해고 인정
2012.2.23. 대법원, 현대차 불법파견 최종 확정 판결
3.8. 전북지노위, 전주비정규직지회 부당해고 구제 명령
4.4. 4기 박현제 집행부 선출
4.25. 불법파견 특별교섭 6대 요구안 확정
5.2. 중노위, 최병승 조합원 부당해고 판정
6.1. 중노위 아산사내하청 의장, 엔진 등 6개 업체 불법파견 인정
8.10. 파업 시작
8.20. 현대차, 2015년까지 사내하청 3,000명 정규직 신규채용안 제시, 사측안에 반발해 공장 진입 투쟁
9.15. 이재환 조합원 자결
10.17. 최병승, 천의봉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 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