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양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불안정노동이 정치운동과 만나야 한다
지금 ‘정치’라는 것은 수많은 오해를 낳고 있다. 노동자 계급 정치,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노동자 정당을 만들고 노동자 국회의원을 제도 정치권으로 보내는 것이 노동자 정치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야기한 왜곡은 적지 않았다. 노동자의 요구가 제도정치권 내에서 왜곡되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정치’ 자체가 왜곡되고 협소해졌다. 그러나 정치는 삶의 문제이고 우리의 삶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지금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자본주의를 넘어 이후 우리의 삶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우리의 상을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를 변혁하는 노동자 정치의 첫걸음이다.
불안정노동은 삶 전반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저임금은 생존 때문에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우리의 삶의 풍성함은 파괴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서 노동자들은 피폐해진다. 이렇게 우리의 삶의 권리를 박탈하는 불안정노동에 맞서기 위해서 우리가 요구하는 새로운 삶에 대해서 제시하고 그를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 이것은 때로는 제도개선 요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노동법 개정 투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우리의 삶의 양식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를 위해서 우리의 노동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정노동자들의 정치 주체화가 중요한 것이다. 불안정노동자정치대회에서 ‘불안정노동철폐운동이 왜 정치운동과 만나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대리주의를 넘어 정치적 주체로 서야 한다
정권과 자본은 성장과 질서라는 말로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고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 사회적 권리의 배제는 노동현장 뿐 아니라 한국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배제와 포함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이며, 배제되지 않기 위해 타인을 밀어내고 자발적 복종과 침묵을 강요하는 것으로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위기를 전가시키고 있다. 1997년 이후 2012년까지 진행된 대중적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운동이 근원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할 시점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가 체제 그 너머로 나아가는 것을 차단하고 자유민주주의라는 법제도의 틀 안에서 정치적 소외구조를 재생산할 뿐이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애초에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는 착한 자본주의로 고쳐보자는 것이 아니었으며, 위기라는 레토릭의 반복은 자유민주주의를 재구성하자는 것이 아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불안정노동자들 역시 그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대리해야 하는 것, 정당정치를 통해서 만들어진 법과 제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노동자 정치라는 것도 불안정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나서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정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 노동자들을 대상화해왔다. 좌파정치는 배제된 사람들의 삶과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을 ‘보호’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배제된 이들 스스로가 주장하고 말할 수 있도록 ‘함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불안정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주체로 서야 한다. 정치인들에게 기대거나 혹은 정규직에게 기대거나, 혹은 상급단체의 힘에 기대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삶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힘을 합하고, 바로 그 힘을 통해서만 세상이 변화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이 변한다는 사실을 더 많은 불안정노동자들에게 알림을 통해서 큰 힘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기존의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조정하는 것에 맞서 싸워야 한다
불안정노동자들은 지배적 질서 속에서 삭제되었던 말과 행동을 통해, 기존 질서에 대항해 싸우는 것을 통해 비로소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다. 노동하는 사람의 절반이 비정규 불안정노동자로 이루어진 현재, 자본이 강요하는 수직적 위계를 뭉뚱그린 채 노동중심을 말하는 정치는 현실에 눈감는 것일 뿐이다. 이는 정치를 체제 안에서 경제적 이해의 실현을 도모하는 분업화된 대리정치로 전락시키는 것과 곧바로 이어진다.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지금 사회에서 이것이 보편적인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이자 욕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의 사회에서 우리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이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다. 고용불안으로 인해 생존의 고통에 시달리고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하지 못하고, 경쟁 속에서 시달리는 지금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노동자들의 삶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의 지배질서는 이러한 불안정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삭제한다. 사회 전체를 뒤바꾸지 않는 이상 자신의 권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급진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는 불안정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순치시키고, 시혜의 대상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불안정노동자들의 정치는 지금이 얼마나 왜곡된 사회인지를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더 이상의 경쟁을 거부하고, 위계질서 속에 낮은 위계에 위치하기를 거부하고 삶의 불안정성이 마치 자신의 책임인 것처럼 내모는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불안정한 미래를 거부하고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과정이 바로 기존의 질서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투쟁과 정치의 분리를 뛰어넘어 의제를 급진화하고 일상에서 정치와 투쟁이 만나게 하자
지금껏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투쟁과 정치를 의도적으로 분리해 왔다. 현안 해결을 위한 투쟁의 집중은 투쟁의 수위를 정치적 파고를 만드는 것으로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방해했고, 내부의 노선 논쟁에 대한 회피는 비정규직 영역을 노동자 정치의 영역이 아닌 노사정합의의 영역 혹은 시민의 영역으로 내몰아 오기도 했다. 그리고 삶의 권리에 대하여는 제기할 기회조차 사실 얻지 못했다. 정치와 투쟁을 분리하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정치는 정치인의 몫이고, 투쟁은 투쟁하는 이들의 몫이라는 분리를 뛰어넘어야 한다. 정치는 그들의 몫이 아니라 투쟁하는 이들의 몫이라는 의지를 드러내고 정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 시작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왜곡되고 협소화된 ‘정치’의 개념에 갇힐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치의 주체임을, 나의 삶과 노동에 대하여 스스로가 주체임을 선언해야 한다. 불안정 노동의 철폐를 위한 투쟁의 주체로서 자신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자신이 하고 있는 현재의 투쟁을 최대한 삶의 영역으로, 전체 노동자의 문제로 확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를 위해 우선, 의제의 보편화를 넘어서는 급진화가 필요하다. 사내하청 문제가 중요하니 이것을 전체 사내하청의 문제로 확대하자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문제를 만든 정몽구를, 정권을 끌어 내리는 운동으로 모아가야 한다. 정리해고자들이 복직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회사의 운영과 관련한 모든 것을 ‘경영권’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이 배타적으로 소유하면서도 온전히 책임은 노동자들에게만 떠넘기는 지금의 구조를 넘어설 것을 요구해야 한다. 투쟁하는 이들이 직접 정치적 요구를 시작해야 한다.
비정규 문제가 제도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라는 인식을 형성하는 것을 뛰어넘어 자본주의에 대한 제기로 나아가는 급진적 의제화가 필요하다. 또한 일상에서 정치와 투쟁이 만나는 실험과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현장과 지역이 만나는 사례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노동복지센터와 같이 노동자를 시혜적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지역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이 아니라 오히려 지역 노동정치에 개입하기 위한 수단을 찾아내야 한다. 지역에서부터 삶과 정치가 부딪치는 매개를 찾아내고 이를 통해 정치를 실현하는 사례를 만들고 경험하는 것으로부터 뿌리깊은 정치와 투쟁의 분리 이데올로기는 극복될 것이다.
마치며
불안정노동철폐는 단지 우리의 고용형태가 정규직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금도 많은 정규직들이 고용불안에 고통당하고 위계와 경쟁 속에서 피폐해지고 있다. 이런 삶을 지속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자본은 불안정한 노동을 만들지 않고는 도저히 유지될 수 없는 상태이다. 불안정노동은 망해가는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발악에 불과하다. 노동하는 이들을 내몰고 심하게 착취함으로써만 간신히 버티고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를 뛰어넘어 우리의 삶과 노동이 우리의 것이 되도록 만들자는 의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도 불안정노동자 자신의 몫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불안정노동철폐운동이 정치운동과 만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정치운동이란 우리는 표를 찍고, 누군가가 우리를 대리해주는 것이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투쟁이 확장됨으로써 스스로 그렇게 삶과 사회를 바꿀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치영역에서의 노력과 투쟁하는 현장에서의 노력이 하나로 만나, 진정한 정치를 실천하는 투쟁이 실현되도록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대리주의를 넘어, 정치와 투쟁의 분리를 넘어, 기존의 사회질서를 넘어 우리의 목소리가 발현될 수 있도록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불안정노동 철폐를 위한 정치대회에서 이 논의가 더욱 풍성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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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아 님은 진보신당 부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