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노동자 정치세력화, 비정규직·불안정 노동자의 힘으로

[불안정노동자 정치대회](1) 9월14~15일, 불안정노동자 정치대회를 제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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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투쟁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노동자들

99년 최초의 비정규직 투쟁이라 불리는 한라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 대교 재능교육 등의 학습지 노동자들, 레미콘 운송 노동자들의 투쟁,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 2000년대 초반 벌어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발전시켰다. 비정규직 문제를 자기 과제로 하기 위한 노동조합 운동 차원에서의 노력도 있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에 대한 인식은 그만큼 확대되었다.

또 최근에는 조직된 노동자들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비정규직 운동의 전전을 보고 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고, 이들의 활동은 2010년 동희오토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을 거치면서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사회적 연대를 광범위하게 형성하는 기틀이 되었다. 특히 지난 해 희망버스 운동을 통해 대중의 자발적인 연대가 형성되는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로부터 비정규운동의 사회적 확장을 위해 광범위한 권리 주체의 형성으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2012년, 지금도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는 권리의 주체로 인식되기보다 처절한 투쟁을 통해서만이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상황에 있다. 비정규직 노동의 열악함과 고용의 불안정성은 알려졌으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주체로서 사회적, 정치적 발언력을 부여받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산별노조 또는 정규직 노조로 흡수되어 온 비정규직 노조의 경우 독자적인 자기 발언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파견법 폐기, 비정규악법 폐기라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여전히도 국회에서의 논의 가능성, 입법 가능성을 이유로 늘 흔들리고 있다. 악법폐기라는 투쟁의 과제를 견고히 지켜내고 있는 것 역시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물이지만 그는 비정규직 주체의 미약함으로 인해 여전히 누군가에 의해 대리되는 것이 되고 있기도 하다.


투쟁의 주체로서, 정치의 주체로서 불안정 노동자가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활동은 제도정치 내에 노동자 국회의원을 진출시키는 것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문제,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되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노동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정치권의 손으로 넘겨버리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었다. 2012년 선거정세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의 주요 핵심이슈로 등장하고 있지만, 제도 정치권의 공약과 정책은 여전히도 신자유주의의 지향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이러한 정치권의 태도에 대한 근본적 질문과 신자유주의 지향 가운데 제출되는 비정규직 정책의 허구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야권의 연대를 통한 여소야대 및 정권교체 등을 통해 노동계가 유리한 지형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불안정 노동자 주체가 서지 못했을 때, 즉 누군가가 대신해서 교섭해주거나 대리하여 협상테이블에 앉아 타협안을 주고받는 모양새가 되었을 때 비정규직 문제가 결코 제대로 해결될 수 없다. 제대로 해결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시키는 것으로도 이어지지 못한다. 비정규악법 제정 당시에도 노동자 국회의원이 있었으나, 그 손에 의해 우리의 요구는 왜곡되어졌다는 사실이 그를 증명한다.

제도 정치의 영역에서 불안정 노동의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 우리에게도 있다. 우리 운동 내에서도 불안정 노동자가 세력화되어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당사자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증언’되지만 고려해야 할 현장의 의견일 뿐, 제도적 요구를 정선하고 제출하는 몫은 어느 새 전문가의 몫이 되어 버리고 주체의 목소리는 치열한 투쟁으로만 겨우 알려질 수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지금 다시, 불안정 노동자의 주체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불안정 노동자는 노동운동 전체가 불안정 노동 철폐의 문제를 자기 과제화하도록 추동하는 주체이다. 그 주체를 많이 조직할수록 운동 내에서의 불안정 노동자의 세력화가 앞당겨 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조직화를 위해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보다 많이, 보다 광범위하게 주체를 형성해 내야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 노동조합은 정치권이 아니라 노동자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하는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불안정 노동자들 스스로 정치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노동권의 문제에 있어서의 권리의 주체로 서는 것만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로 스스로를 선언해야 한다. 지난 시기 노동자 정당을 세우고, 국회로 노동자 국회의원을 보내는 것, 그리고 그를 우리의 입으로 삼아 제도정치 내에서 발언하는 것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부였다. 또 정치적 의제나 노동계 내의 노선 논쟁 등에 대해 비정규직 사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외면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신자유주의 정당이라 하더라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정책을 낸다면 그 내에서 개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불안정 노동 문제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문제임을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이의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정부의 시혜적 태도에서 찾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불안정 노동 주체 스스로를 대상화시킨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정치권으로의 수렴은 결국 노동자를 끊임없이 참고인으로 만들 뿐이다. 스스로 정치의 한가운데에 서서 주체임을 선언하고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불안정 노동자 정치세력화, 투쟁의 확장에서 시작하자

불안정 노동자가 정치의 주체로 선다는 것은 삶과 노동의 불안정성을 어떻게 깨부수고 권리를 쟁취할 것인가의 문제와 떨어져 있지 않다. 정치는 곧 삶의 문제이고, 우리의 삶을 어떻게 구성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즉, 자본주의를 넘어 이후 우리의 삶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상을 제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상이라는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이라거나, 지금 전개하고 있는 개별적 투쟁과 분리되는 문제는 아니다. 각각의 투쟁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확장시킬 것인가의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임금 인상 투쟁이 과거 자본과의 관계에서 계급의식을 자각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매개였다면, 현재에 있어서 개별 사업장 단위의 임금인상 투쟁이 가지는 의미는 훨씬 축소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본의 위계화로 인해 대공장의 임금투쟁의 성과는 하위의 노동자에게로 자본의 부담을 전가시키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에 지금에 있어 임금인상 투쟁은 곧바로 노동자의 계급적 의식을 확대하는 것은 되지 못한다. 생활권에 대한 투쟁, 생활임금 및 최저생계비 확보에 대한 투쟁, 임금제도 유연화에 맞선 투쟁, 실업부조 도입을 위한 투쟁 등이 더욱 노동자 계급의 단결과 권리 확장을 위해 중요한 투쟁이다.

이는 개별 자본에 맞서는 투쟁에서 전체 자본을 타격할 수 있는 투쟁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자본의 위계서열화로 인해 원청 대자본을 타격할 수 있는 투쟁은 대공장 노동자들만으로 형성되기는 어렵다. 노동의 불안정화의 심화는 그만큼 노동을 세분화하였고, 그 가운데 일부 노동자들의 투쟁만으로는 더 이상 자본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투쟁을 형성하기 어렵다. 그래서 말단에 있는 공단지역 노동자의 조직화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불안정 노동자를 조직하고 주체로 세우는 것, 그리고 삶의 양식을 재구성하기 위한 권리 확보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것, 그 투쟁의 결과물로서 자본이 가진 것을 사회로 되돌리게 하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그에 불안정 노동자의 정치 주체화는 반드시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불안정한 노동은 곧바로 삶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진다. 잠깐 일하고 또 사업장을 이동해 일하는 정착할 수 없는 노동자, 언제든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나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에 최저임금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노동자. 비정규직, 최저임금이 당연한 공식이 되면서 노동자들은 삶의 안정을 잃었고, 내일의 꿈도 빼앗기고 있다. 이렇게 불안정한 노동은 삶의 기반을 흔드는 것을 넘어, 불안정한 노동이 일반화되면서 삶의 양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삶 전반의 권리를 박탈한다.

하기에 그 빼앗긴 권리에서부터, 불안정 노동자가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설 수 있어야 한다. 노동과 삶의 불안정화에 맞서 우리가 요구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제시하고 그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이는 때로는 제도 개선의 요구로 수렴될 수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노동법 등의 개정으로 드러날 수도 있을 테지만, 더 중요하게는 삶의 양식을 직접적으로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 그를 위해 노동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와 연동되어 있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삶의 양식을 재설계하는 것, 그로부터 노동을 다시금 재구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노동자의 정치이다. 그런 투쟁이 필요하고 우리의 투쟁은 충분히 그렇게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조직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아래로 조직을 확대하고 끊임없이 조직하는 것을 자기 과제로 삼아야 한다. 자기 조직 내에 안주할 때 이는 정규직 노동자 운동에 대해 비판해 온 모습과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사업장 내에서 잘 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래로 조직을 확대하면서, 투쟁의 과제를 사업장을 넘어 사회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9월 14-15일, 불안정 노동자 정치대회로 모이자

불안정 노동자 정치대회는 불안정 노동자가 권리의 주체임을 선언하고, 권리는 누군가가 대리해서 찾아주는 것이 아님을, 주체의 투쟁으로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선언하는 자리이다. 지난 시기 불안정노동 철폐운동을 함께 해 왔던 동지들과 함께 그간의 운동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정치대회는 크게 활동가대회와 문화제의 두 축으로 구성될 것이다. 활동가 대회는 불안정 노동자를 조직하고 주체로 세워내기 위한 방안과 그로부터 어떤 투쟁을 만들어 나갈 것인지 투쟁 전략에 대한 의제, 불안정 노동으로 인해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광범위한 주체들을 투쟁의 주체로, 권리의 주체로 세워내기 위한 방안, 그리고 불안정 노동자들의 투쟁을 정치적 투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 이 세 가지를 주제로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지난 투쟁을 돌아보고 이후 투쟁의 방향과 전략을 세우기 위해 불안정 노동철폐에 동의하고 실천하는 모든 동지들의 힘과 혜안을 모아주기를 바란다.

문화제는 정치대회 조직위원회와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가 함께 준비하며,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우리의 권리를 드러내는 공간으로 열고자 한다. 지금까지 불안정 노동에 대한 요구는 노동조건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그만큼 우리의 삶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고, 그 노동의 열악함으로 인해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에 요구의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권리는 노동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 전반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권리를 가진다. 지금까지는 그러한 권리는 미처 권리로 주장할 여지조차 없었거나, 권리로 인식하지도 못했었다.

이제는 우리의 모든 권리를 다양하게 드러내고, 삶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삶을 누리기 위해 노동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제기할 수 있다. 문화생활을 누리기 위한 권리,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일터에서만이 아닌 사회에서 다양한 관계를 형성할 권리는 곧 적정한 임금을 받을 권리와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을 권리, 주말노동을 하지 않을 권리 등과 함께 한다. 이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말하지 못했던 권리, 말하지 않았던 권리. 그 모든 곳에 우리가 있고, 우리의 권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문화제라는 형식을 빌어 말하고자 한다.

불안정노동자 정치대회는 철폐연대가 제기하고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준비하지만, 이에 동의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하는 자리로 열려있다. 다양한 정치적 발언과 투쟁 발언, 춤, 노래, 이야기 등 노동자의 모든 삶과 노동을 담아내고 싶다. 욕심이라 할지라도,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다. 그것이 행복의 나라로 가는 더욱 넓은 길을 여는 또 하나의 투쟁이라 생각하며.
덧붙이는 말

* 엄진령 님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처장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