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이들과 함께 경기지역의 사회단체, 촛불시민들이 <희망김장> 1천포기를 담갔습니다. 그 이야기를 담은 책이 <사람꽃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발간됐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경기지역 해고노동자들의 삶과 고민, 가족의 아픔 그리고 희망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인터뷰는 경기지역의 주부, 작가 등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책 출간과 함께 6월 1일 북콘서트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참세상 기고는 <사람꽃을 만나다> 책 출간과 북콘서트 준비를 하면서 경기지역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삶과 고민, 그리고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네 번에 걸쳐 싣고자 합니다. 6월 1일 수원 아주대학교에서 열리는 북콘서트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사람꽃을 만나다> 책 주문 및 기금모금 http://www.socialfunch.org/flower
“칠괴동에 동물원이 생겼다”
2009년 7월, 쌍용차 77일의 혹독한 농성이 벌어지던 때 한 노동자가 그랬다. 쌍차가 있는 평택의 칠괴동은 동물원이 되었다고. 사람을 죽일 듯 몰아붙이는 회사와 정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어제는 함께 일했지만 오늘은 회사와 용역깡패와 전투경찰과 한편이 되어 정리해고자를 공격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개밥그릇에 먹이 내던져 주면 개싸움이 벌어진다. 서로 먹기 위해 물고 뜯는다. 내가 경험한 정리해고는 꼭 이랬다. 어떻게든 줄어든 일자리를 지키려고 서로 적이 되어 싸우게 만든다. 동물원에서는 사육사들이 동물들에게 그나마 때 맞춰 적당량의 먹이라도 준다. 하지만 2010년부터 경기지역의 사람들을 만나보니 평택의 칠괴동만이 아니라 안산, 시화, 화성 등에 야만의 정글들이 수두룩했다.
영풍그룹소속 반도체 공장인 안산의 시그네틱스는 2001년 조합원을 전부 해고했다가 일부가 복직했었다. 그런데 2010년 또다시 정리해고를 당했다. 파주에 으리으리한 공장을 지어 놓고 순이익 200억 원 가까이 남기면서 해고했다. 아가씨들은 중년여성이 된 10년 세월동안 계속 싸운다. 이들은 스스로 율동과 노래를 하면서 즐겁게 파주와 서울과 안산을 돌아다니고 있다. 걸 그룹 카라의 멤버 구하라의 허리도, 애프터스쿨 멤버 유이의 꿀벅지도, 화려한 율동도 없지만 그녀들이 가는 곳엔 웃음도 떠나지 않는다.
▲ 프랑스 기업인 <포레시아>에서 해고된 노동자들 [출처: 희망김장 기획단] |
경기도에 생긴 정글들
내가 아는 프랑스는 낭만적 문화국이다. 하지만 한국에 건너온 프랑스회사는 그렇지 않다. 화성장안 공단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포레시아 노동자들은 2009년 26명이 정리해고 당했고 지금도 19명의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싸운다. 회사는 고용불안에 떠는 노동자들의 일부를 부추겨 조합원들을 집단왕따와 폭행까지 서슴지 않고 있었다. 생계도 어렵지만 어제의 동료들이 적이 되어버린 공장 앞 농성장에서 인간에 대한 마지막 믿음을 부여잡고 씨름하고 있다.
그렇게 쉴 새 없이 쌍욕을 들은 건 평생 처음이었다. 34명의 정리해고 노동자가 싸우는 시화의 파카한일유압에 갔을 때, 관리자들은 세 시간 넘게 인정사정없이 욕설과 몸싸움을 걸어 왔다. 식스팩이나 쵸콜렛 복근이 없어도 이곳에 가면 어김없이 짐승남이 되곤 했다. 하물며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어떤 취급을 받을까.
“이게 뭔 사진이죠?” 넓은 마당에 수많은 남성들이 쓰러진 한 사람을 폭행하는 사진이었다. 화성의 한국쓰리엠에서 용역깡패들이 노동자를 집단 폭행하는 사진이었다. 학용품, 일상용품, 자동차에 들어가는 필름 등 온갖 제품을 만드는 세계적인 기업 쓰리엠은 노조를 만들자 200명 이상의 노동자를 징계하고 8명을 해고했다. 도대체 인권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학교폭력? 끔찍하다. 하지만 더 끔찍한 기업폭력은 누가 들춰보기라도 할까. 애비애미가 왕따 당하고 맞고 사는 세상에 애들이 무사할까.
“노조가 해고자들 농성하는 천막을 뜯어갔습니다” 이게 대체 뭔 소린가. 2009년 4번씩이나 희망퇴직으로 사람을 자르더니 15명이 정리해고 당한 자동차 피스톤 생산하는 안산의 동서공업에서 벌어진 일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했다. 잘리지 않기 위해 뭔 짓을 못하겠는가. 공장에 남은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조가 오히려 어제의 동료들을 짓밟고 있었다.
2명이 해고되었다가 다행히 부당한 해고라는 대법원의 판결로 복직하기 전까지 주연테크도 아팠다. 회장님은 한국의 7위 주식부자였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받고 산다. 복직까지 오는데 해고자들이 몇 번이나 목 놓아 울던 기억이 떠나질 않는다.
“삼성이 하면 뭐든지 된다”고 했던가. 하물며 해고는 누워서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삼성에서 해고된 박종태, 조장희 등은 그래도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 백혈병 등 기업살인으로 죽어간 영혼들 앞에선 감히 해고 수준의 불행을 논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경기지역의 금속노조 소속만 해도 포기하고 떠난 사람을 뺀 106명의 해고자들이 잘리고, 밟히고, 버려진 채 싸우고 있다. 버려진 채 죽고, 이혼하고... 그런 사연을 이 짧은 글에 어찌 다 담을 수 있겠는가.
벌과 나비는 왜 없을까?
지역의 시나리오 작가 등 몇 분들이 작년 말부터 ‘사람 꽃을 만나다’는 제목으로 이런 노동자들을 인터뷰 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 꽃이라고? 꽃이라면 향기가 있고 나비와 벌도 날아들어야 하는데 과연 꽃과 나비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해고당했다고 다 죽진 않는다. 오히려 정리해고 당하면 분노한다. 1차 절망에 이어 2차 절망이 찾아온다. 어제의 동료들이 적이 되고, 외면하고, 주변이웃들은 눈을 돌린다. 절망과 외로움에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힘을 내련만 아니었다. 벌과 나비는 고사하고 냉정한 반응들이 쏟아지면 마지막 믿음이 사라진다. 믿음이 떠난 자리에 죽는 것 보다 살기 위한 용기가 더 필요함을 느끼는 순간, 목숨은 부질없다.
‘슈퍼스타 K’를 비롯해 수많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넘친다. 수백만까지 이르는 응모자들이 경쟁한다. 고비고비 경쟁을 통해 마침내 스타가 탄생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한다. 나는 이런 프로그램을 볼 때 아프다. 그 스타들이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탈락의 아픔을 맛보지 않던가.
어차피 생존에 몸부림치는 세상이다. 경쟁하다 보면 당연히 탈락자가 생긴다고? 그렇다. 화려한 스타탄생에는 희생양이 필요하지 않던가. 누군가 살려면 누군가 희생하는 세상이다. 나만 아니면 되는 거다. 어차피 생존싸움인데 복걸복이다. 생존을 위한 개 밥그릇 싸움으로 보면 어차피 모두가 개가 아니던가. 만인은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한다. 너는 나의 적이다.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다.
나는 주변의 노동자들에게 처절한 해고자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애를 쓰곤 했다. 처절한 해고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충격이었다. 바로 곁의 좀 안정된 직장에 있는 노동자 중에는 그들의 처절한 상황을 들으며 “나는 다행이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단다. 이런 상태에서 MB정권 OUT시키면 무슨 새 세상이 온다는 건가.
3차의 절망
폭음하는 나는 웬만해선 술자리를 1차에 끝내지 않는다. 2차, 3차까지는 간다. 그런데 해고당한 노동자들의 절망도 1,2차로 머물지 않았다. 우라질, 턱 막히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도 알려진 한진, 쌍차는 나아요. 우린 아예 가려져 있어요”
한진이든 쌍차든 중소사업장이든 해고자 처지를 잘 아는 이들이 알콜 기운을 빌려 조심스럽게 이런 얘기 꺼낼 때 할 말을 잃었다. 먼저 상징적인 곳부터 풀어야 중소사업장의 당신들 문제도 풀린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국가대표가 1등 한다고 응원하는 우리가 야구를 잘하게 되던가. 이건 해고라는 1차 절망, 외면당하는 2차 절망 보다 깊숙이 찔러오는 3차의 절망이 아닌가.
“지랄 같은 회사가 뭐 그리 좋다고 돌아가려 그토록 오래 싸웁니까. 찌질하게...” 이런 얘기도 했다. 평생직장 사라지고 비정규직 넘치는 판에 다른 곳 가면 안될까. 이렇게 혹독하게 꼭 싸워야 하냐고 했다. 생계라면 그냥 떠날 수도 있단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 인간에 대한 자존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거라고 했다.
“저 생존의 바닥에 버려진 해고자들을 위해, 차비도 없이 떠도는 노동자를 위해, 모금이라도 합시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해고노동자들은 그런 얘기 싫다고 했다. 그럴 거면 오지도 말라고 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맞지 않다. 저토록 버티는 사람들은 구걸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 버려진 인권을 위해 싸우는 등불이다. 사람 꽃을 피워보려 안간힘을 쓰는 씨앗이 아니던가.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다. 이 씨앗에 필요한 것은 따스한 햇볕 한줄기, 물 한바가지, 따스한 온기처럼 듣고 보고 함께 느끼는 당신의 마음과 몸이다.
▲ 지난해 12월 17일, 경기지역 해고노동자들과 시민들이 함께 한 <희망김장> 1천포기 담그기 행사 [출처: 희망김장 기획단] |
나는 욕망한다. 반란의 축제를
“나쁜 놈을 나쁘다고 분명히 얘기 하자.” 그렇다. 맞다. 자학적인 성찰만 하지 말고, 인간을 개로 만드는 기업권력, 자본권력, 국가권력에 분노의 전투를 해야 한다. 그러나 말하고 싶다. 그 돈 많고 권력 강한 분들에게 몇 몇이 분노를 던진다고 순순히 바뀔까. 우리가 함께 차곡차곡 힘을 모으지 않으면 그들은 바뀌지 않을 거다. 그들에게 공범들이 없고 사람 꽃을 피우려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 한줌의 권력자들의 욕망은 물거품일 뿐이다.
작년에 희망버스를 탔던 지역시민들이 바로 이웃 노동자들을 위해 뭔가 하자고 입을 모았다. 12월에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모여서 1천 포기의 김장을 담갔다. 천만원 넘는 시민들의 정성이 모여 김장 천포기가 되어 노동자, 장애인 등이 나눴다.
경기지역 해고자의 얘기와 김장을 담근 사연들을 담아 책을 냈다. 선뜻 함께할 출판사가 없었다. 뭐 잘 팔리는 내용이 아니라서 그럴까.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되고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된다고 했다. 중소사업장의 일들이 무슨 이슈라도 될까. 그렇다고 이 사연을 묻을 수는 없었다. 알리기 위해 금속노동자들과 지역시민사회단체들이 책을 엮었다.
1천 포기의 김장이 1천권의 향기로 피어나기를 바라면서 6월 1일 7시 수원의 아주대학교에서 북콘서트를 연다. 잘리고, 밟히고, 버려졌지만 마침내 사람 꽃을 피우려는 그 소망을 담아 햇볕 한줄기, 물 한바가지, 따스한 온기가 되어 달려올 사람들이 있으리라 믿는다. 언젠가는 흐르러지게 사람 꽃이 피어나는 반란의 축제를 간절히 소망하며 벌과 나비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