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이후, 현장조직들의 금호타이어지회에 대한 탄핵 운동
2009년 초부터 시작된 금호타이어 투쟁이 종결되었다. 지난 4월 22일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가 제출한 임단협 합의안이 조합원 투표를 통과하며 금호타이어 지회의 파업 투쟁이 종결되었고, 5월 10일 비정규직 지회의 파업 투쟁 역시 잠정 합의에 도달해 조만간 종료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의 싸움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금호타이어 현장 조직들은 현 노조 집행부의 굴욕적 임단협 합의와 무기력한 집행력을 비판하며 집행부 탄핵 운동을 벌이고 있다. 금호타이어 공대위는 조합원 1/3 이상이 발의할 경우 총회를 소집하게 되어 있는 금속노조 규약에 근거하여 3기임원 탄핵을 위한 총회소집 요청을 3천5백여 조합원 중 2천여 명의 서명으로 금호타이어 지회에 제출한 상태다. 하지만 금호타이어지회는 정파들이 집행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탄핵을 추진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히며 총회 소집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지회는 심지어 공대위가 총회 소집권자를 금속노조나 금속노조 광전지부로 요청해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다.
금호타이어지회 집행부의 양보안은 올바랐나?
- 박삼구회장도 채권단도 이득, 결국 손해본 건 노동자뿐
문제의 발단은 금호타이어지회 집행부가 올초부터 유지해온 양보교섭 기조다. 금호타이어지회는 금호타이어 워크아웃이 박씨 일가의 투기성 인수합병으로 인해 발생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투쟁보다는 끊임 없이 양보교섭에만 매달렸다.
사측이 2월 1,377명에 대한 구조조정안을 발표하자 지회는 3월 임금삭감을 골자로 하는 양보안을 제출하였고 이마저도 사측이 거부하자 조합원들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높은 찬성률로 가결시켰다. 하지만 집행부는 파업 돌입 날짜를 계속 미루며 결국 4월 2일 임금삭감, 조건부 정리해고 유보, 단계적 도급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양보안을 사측과 합의했다. 이 합의안은 8일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되었다. 집행부는 합의안이 부결되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민주노조의 관행도 무시한체 다시 교섭에 돌입하여 상여금 반납 조건을 완화하고 정리해고 유보를 철회로 바꾸는 조정안을 총투표에 부쳐 통과시켰다. 합의안에는 경영진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았으며, 비정규직에 대한 어떤 보호 조항도 없었다.
최근 발표된 금호타이어의 2010년 1/4분기 경영 자료를 보면 금호타이어지회 집행부의 양보교섭안은 결국 사측의 압박에 노조가 굴복한 것이라는 점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지난 4월 30일 금호타이어가 발표한 1/4분기 영업실적 공시에 따르면 금호타이어는 1분기에 213억의 영업 이익을 냈고, 당기순이익도 208억에 달했다. 5분기 넘게 계속되었던 영업손실, 6분기 넘게 계속되었던 당기순손실이 모두 이익으로 전환된 것이다. 금호타이어지회는 회사가 당장이라도 망할 수 있다는 공포에 끝도 없는 양보교섭을 했지만, 사실 금호타이어는 2010년 1월부터 3월까지 세계 경제 위기 완화와 자동차 판매 증가로 경제 위기 이전인 2007년 1분기 수준의 이익을 내고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다른 글을 통해 밝힌 것처럼 금호타이어의 문제는 영업이 아니었다. 금호그룹 차원의 투기성 인수합병 때문에 발생한 재무 구조 악화가 문제였다. 금호타이어는 세계 경제 위기 이전까지 단 한번도 영업 손실을 기록한 적이 없었지만, 대우건설 인수 직후인 2006년부터 단기차입금 증가로 인한 과도한 이자 비용 등으로 매년 당기순손실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2010년 1월 이후 워크아웃 기간 중에 차입금 상환이 유예되고 금호사옥 등 일부 자산을 매각하면서 영업외비용에 여유가 생겼고, 2010년 1분기에는 순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박삼구 회장이 노동조합에게 임금삭감과 도급화를 강요한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가 밀어붙인 구조조정은 채권단에게서 자신의 경영권을 보장받기 위한 제스처였다. 과감한 비용절감을 통해 채권단의 빚을 앞으로 갚을테니 자신의 경영권에 대해서는 손대지 말라는 것. 다시말하면 금호타이어의 빚은 노동자들이 갚아 나갈 것이라는 거다.
실제로 노동조합이 임단협안을 통과 시킨 직후 4월 24일 경 주요 채권단과 금호타이어 경영진은 비밀 회동을 통해 박삼구 회장의 경영권을 보장하고, 이후 채권단 출자 전환 과정에서 감자될 박삼구 회장의 주식을 워크아웃 이후 최우선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협조한다는 내용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5월 6일 산업은행, 우리은행 등의 채권단과 금호타이어는 5천8백억 원 규모의 빚을 주식으로 전환시키고(출자전환) 6천억 원의 신규자금을 대출해 주는 대신 기존 대주주들은 자신의 주식을 100대1로 감자시키는 합의안을 도출했다. 박씨 일가가 대주주인 금호석유화학이 가지고 있던 금호타이어 주식이 대폭 줄어들어 대주주 지위를 상실하지만, 박삼구 회장의 경영권은 보호받는다. 물론 워크아웃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박삼구 회장은 금호타이어 법인의 돈으로 자신의 주식을 채권단으로부터 되살 것이고, 채권단은 그동안의 이자까지 더해서 빚을 회수할 것이다.
결국 이 판에서 손실은 본 것은 노동조합 뿐이다. 박삼구 회장은 경영권과 미래의 소유권을 보장받았고, 채권단은 당장 회수하지는 못했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채권을 온전히 회수할 수 있게 되었다. 파업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백기를 든 노동자만 임금 및 고용에 관해 손실을 입은 것이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신뢰를 잃고 지도력을 상실해 앞으로의 투쟁을 조직할 능력을 잃었다. 이쯤되면 박삼구 회장의 경영권이라도 박탈할 수 있는 법정관리보다 현재가 무엇이 나은지 불명확하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미루며 금속노조의 비정규직 관련 정책에도 어긋나는 도급화 방안까지 찬성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다. 노동조합의 양보합의안은 사실상 노동자 임금 삭감으로 박삼구 회장의 경영권을 보장해 준 것 이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다시 구조조정은 온다. 노조를 혁신하고 노동자 단결을 재건해야 한다
금속노조와 지역지부는 금호타이어지회가 이러한 양보교섭안을 작성하는 것에 제대로 개입하지 못했다. 금속노조가 아직은 무늬만 산별이라는 점이 다시 한 번 드러난 것이다. 조직적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금속노조니 대공장지회에 대한 개입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객관적 한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금호타이어 투쟁에서 금속노조가 자본의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유리한 정세에서 과감한 투쟁을 만들어 내는 분석력과 전략적 집중성도 보이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 평가가 필요한 지점이다.
한 예로 금속정책연구원에서 나온 보고서는 노조 역시 경영상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전향적으로 고통분담에 참여할 것을 이야기하며, 비핵심부분에 대한 도급화, 임금 및 복리후생에 대한 한시적 삭감, 노동친화적(?)인 명예퇴직방안을 고려하며 사측과 타협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보고서는 법정관리로 갈 가능성, 쌍용차 등의 예를 봤을 때 시간은 노동조합 편이 아니라며 노조에 전향적 태도를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금호타이어의 영업상황, 채권단과 박삼구 회장의 결탁을 볼 때 시간은 오히려 노동조합 편이었다. 금호타이어는 시장에서 내몰린 한계기업이 아니라 금호그룹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었을 뿐이었고, 노동조합 투쟁으로 생산이 멈추면 경영진과 채권단이 크게 손실을 보는 상태였다. 노동조합에게 유리한 투쟁 조건이었던 것이다. 금속노조가 유리한 투쟁 조건 속에서 오히려 공세적으로 재벌 경영진의 문제를 제기하며 노동 배제적 구조조정이 아니라 노동권 보장과 재벌 오너의 책임을 묻는 경영 재편을 요구할 수도 있었던 투쟁이었다. 비정규직 확산하는 도급화를 통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채권단의 연대 책임을 물으며 이자 비용 절감을 통한 지역 사회 고용 창출 방안을 이야기 할 수 있었던 투쟁이었다. 바로 산별노조답게 요구하고 투쟁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는 새로운 지도 집행력을 갖추고 향후 투쟁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금속노조와 지역지부 역시 재벌 그룹의 막무가내식 인수합병, 구조조정, 채권단과의 밀약 등에 대해 맞서 싸울 수 있는 정책 개발과 전국적 지역적 투쟁 의제를 만들어 내야 한다.
구조조정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아니 구조조정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박삼구 회장은 하루라도 빨리 워크아웃을 끝내기 위해 사활을 걸고 비용 절감에 나설 것이다. 그의 꿈은 금호타이어의 장기적 발전, 노사 공생의 기업 같은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잃어버린 소유권을 최대한 빨리 찾아오는 것이다. 저임금 지역의 해외공장 생산 확대, 더 많은 도급화를 통한 저임금 인력 확보를 단행할 것이다.
남유럽발 경제 위기가 급속도로 세계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처럼 2009년 경제 위기 이후 세계 자본주의는 작은 충격에도 크게 흔들거릴 정도로 취약해져 있다. 자본가들은 더 많은 비용절감을 통한 현금 확보와 생산 유연성 강화에 온 힘을 쏟을 것이다. 자본주의 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동차 산업의 한 부분인 타이어 산업 역시 그러하다. 또한 재벌 수출 기업을 필두로 한국 전 산업에 걸친 구조조정 가능성도 크다. 이명박 정권은 재벌을 위해 노동조합은 아예 다 없애버리기라도 할 듯이 노동조합을 탄압할 것이다. 그리고 강성 노조로 분류되는 자동차 노조와 금호타이어노조 역시 정권의 정조준 대상이 될 것이다.
노동조합을 재정비하고 투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이제 잠시도 뒤로 미룰 수 없는 일이다.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 모두 하루 빨리 조직적 정책적 정비를 마루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