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한라중공업 사내하청과 재능교육 교사노조, 2000년 시설관리 노동자들과 롯데호텔, 2001년 한국통신 계약직, 2003년 근로복지공단, 그리고 또, 또…
비정규직 운동 10년 동안 큰 투쟁들만 열거하려다 포기했다. 너무 많은 지면을 차지한다. 그리고 어떤 것이 ‘큰’ 투쟁이었을까. 지원도 받지 못하고 외롭게 싸운 투쟁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아니, 그걸 다 열거한다고 해도 그 속에 담긴 눈물과 피를 가늠할 수 있을까. 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는 이제 17분 열사에 대한 추모제를 하고 있다. 울분 속에서, 그러나 지난 역사가 보여주었듯이 열심히 투쟁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인간다운 권리를 쟁취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믿음 속에서, 정신없이 보낸 10년이었다.
10년 동안의 성과는 분명히 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은 자본이 떠들어대는 ‘유연화’의 기만성을 만천하에 폭로했고, 이제 이 사탕 바른 거짓말에 곧이곧대로 속는 사람은 없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조와 조직들이 힘겨운 싸움 속에서 명멸해갔지만, 힘들게나마 조직을 유지하고 나아간 곳들도 있었으며, 그렇게 조직률은 조금씩 높아졌다. 그 결과 비정규직들도 투쟁을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던 10년 전에 비하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비정규직 문제는 전사회적인 문제가 되었고, 노동운동 내에서도 비정규직 운동의 중요성은 크게 부각되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비정규직 운동의 전망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물론 그 어떤 때라도 운동 전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은 시기란 없다. 하지만 예컨대 비정규직이라는 말도 생소하던 10년 전이라면, 비정규직 투쟁을 알리고 사회화하는 데 전략적으로 집중해야 했다. 그에 비해 이제 비정규직 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할 필요는 없지만, 그 대신 비정규직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할 때이다. 지금도 비정규직 운동이 잘 되어가고 있다고 자부할 수는 없고 투쟁은 아직도 힘겹다. 하지만 그러할수록 이 투쟁들이 나아갈 곳을 제대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자본의 전략 변화와 기존 운동의 관성
이 시점에서 비정규직 운동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 흔히 비정규직 운동에 의미를 부여하기를,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저항하는 것이며 또 노동운동을 혁신하는 운동이라고 하였다. 사실 이 둘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지난 10년간 비정규직의 투쟁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데자뷰를 느꼈을 것이다. 민주노조운동 초창기의 탄압과 어려움들, 그것을 뚫고 간신히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는 것처럼 보이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다시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은 우연도 아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조건에 따른 시간차에서 기인한 것도 아니다.
민주노조운동의 세력이 성장하자, 자본은 그것을 무력화하기 위한 전략을 짜고 실행하였다.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공세이고 비정규직 사용을 통해서 이를 실현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에게 있어 ‘비정규직 문제’란, 고용불안과 저임금으로 직접 착취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은 비정규직의 도입 및 사용을 통해서 정규직과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들을 포함하여 노동자계급을 위계적으로 분할하고 개별화한다. 비정규직을 사용함으로써 민주노조운동이 겨우 현실화시킨 노동자의 권리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즉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란, 비정규직 사용을 통해서 그동안 노동운동이 해왔던 성과와 방식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여러가지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우선, 비정규직 운동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운동으로 간주해 버릴 수가 있다. 기존 조직화된 정규직들은 이를 도와주는 역할로만 생각된다. 그러나 비정규직이란 노동자계급을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하는 과정의 매개이며, 이른바 ‘정규직 노동운동’ 또한 이에 의해 무력화되는 것이다. 비정규직 운동이 이 신자유주의 공세에 저항하는 것으로 규정되는 한, 이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을 넘어서는 단결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정규직 운동은 ‘비정규직의, 비정규직에 의한, 비정규직을 위한’ 운동은 아니다.
또한, 이는 기존 노동운동이 해왔던 방식을 비정규직 운동에 적용시킬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자본의 전략 자체가 그것을 해체하기 위한 수단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에 성과를 거두었던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성과를 거둘 수가 없다. 즉 단순히 주체의 조건상 시간차가 있을 뿐인 비슷한 방식과 흐름으로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상에서는 기존 운동의 관성이 비정규직 운동에도 작용하고 있다. 사실 근본적인 숙고(熟考) 없이는 쉽게 사라지기 어려운 게 관성이다. 비정규직 운동이 노동운동을 혁신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킨다.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전략 변화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의 내용과 구조가 완전히 재형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운동 전망 토론회를 열며
<비정규직 운동 전망 토론회>를 제안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통해 실현시키려는 신자유주의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노동운동이 이에 맞설 수 있도록 재구성하기 위해서. 그러한 과정 없이는 관성만 작용할 뿐이며 결국 자본의 새로운 공세에 패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우리는 비정규직 운동을 ‘열심히’ 해 왔다. 치열한 논의와 실천과 투쟁들이 있었다. 하지만 절박함 속에서 깊이 숙고하지 못한 한계도 있었고, 오해와 오류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제는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잘’ 해야 한다. 땅을 일구고 싹이 튼 다음에는, 빛이 쬐는 방향을 가늠하고 튼튼한 지지대를 만들어야 제대로 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자본의 전략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운동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성찰하며, 현재의 상태를 냉철하게 진단하자. 원칙을 명확히 세우고, 방향을 가리켜 짚어내며, 전략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자. 여기서 이를 고민하는 모든 동지들과 함께 비정규직 운동의 전망을 만들어나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