묽은 미음 흰죽 한 숟갈을
입 속으로 밀어 넣으며 생각한다
결국 인간이란 죽 한 숟갈이라는 걸
열나흘 단식 후 처음 뜨는 이 한 숟갈
이 한 숟갈이 모든 세포들을 다시 일깨우고
그래서 생은 지탱되고 삶은 유지 된다는 걸
기껏 물 한 모금 밥 한 숟갈로 살아가면서
그 한 모금 한 숟갈 서로 나누며
그렇게 살아가면 될 것을
남의 숟갈을 뺏어 내 숟갈에 얹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아니 알면서도
내 힘이 세다고 함부로 약자의 것을 빼앗아
내 배를 불린들
그 부른 배 때문에 나만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걸
단식을 하며 살이 내리며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정결해짐을 체험하고서야
깨닫게 된다
어떻게 보면 나도 욕심 때문에
아닌 척하면서도 남의 것을 탐하고
내 가진 것 조금 내놓기 싫어서
아등바등 비굴하게 산 적이 한두 번이었나?
위선의 살 디룩디룩 찌워
숨쉬기조차 어려워 헉헉거리면서도
남 험담하기에 더 급하지 않았던가?
내 생각과 내 말만 옳다고 우기고
교묘히 남을 무시하고 짓밟으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오늘 아침 흰죽 몇 숟갈 앞에 놓고
오늘따라 너무도 고운 햇살 환히 비취는 창가에서
또 나는 한없이 부끄럽다
결국 인간은 흰 죽 한 숟갈인 것을
* 14일 간의 단식을 끝냈다. 겉보기에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그 동안의 우리 고투의 흔적이 어디엔 간 묻어 있을 것이다. 내 마음에도 그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