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과 선거의 정치공학
한국의 제도정치가 후진적이라는 보편타당성은 정치인들의 정치인식이 허접하기 때문이다. 지난 10.28 재보궐 선거 결과에 대한 한나라당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수준을 명확히 알 수 있다. 한나라당이 “이해가 안 되는 결과”라면서 실망감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들의 상황인식과 속내야 말로 정말 이해가 안 된다. 40%대의 MB 지지율로 3석 이상의 결과를 기대했다는 얘긴데, 정말 도둑놈 심보, 어이상실이다. 단순 계산으로 해도 5석의 40%면 2석에 불과하다. MB 정권 출범 후 지금까지의 반민주적·반민중적 행태에 비춰보면 그것도 감지덕지해야 한다. 그런데 실망했다는 것을 보면 아직도 안하무인 정권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그들의 텃밭인 양산에서조차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고도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승리”라는 박희태 전 대표의 강변은 정말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재보궐 선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정치상식이며 한나라당도 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 그들의 행태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 보인다. 그것도 어쩌다 겨우 50%를(54.3%, 리서치앤리서치 10월 6일 조사) 넘었을 뿐인데, 생색은 너무 요란하다. 정몽준 대표도 “재보선은 대통령의 지지도가 60%가 넘어도 여당이 승리한 적이 별로 없다”고 경계를 했는데도 말이다
한나라당 참패로 평가를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10.28 재보궐 선거 결과를 한나라당의 참패로 평가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선거에 대한 냉철하고 과학적인 평가에서 벗어나 자의적 해석을 통한 주관성과 감성적인 평가의 오류를 범한다면 향후 투쟁의 방향을 상실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패배(?) 원인으로는 MB 중도실용·친서민의 거품, MB 지지율의 고공행진으로 인한 여당의 오만함, 4대강 사업과 세종시 수정 논란 등 정책적 문제, 그 외 김제동 퇴출, 박근혜의 외면 등등 다양한 요소를 들 수 있다.
일단 지난 2003년부터 올해 4.29 재보궐 선거에 이르기 까지 7차례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한 여당이 이번 선거에서 무려 2석을 획득했다는 사실은 대단히 의미있는 성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보궐 선거가 정권의 중간심판론과 견제론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MB의 중도실용 국정운영 방식은 처음부터 일관성과 체계성이 매우 부족했고 즉흥적이고 인기영합적인 포퓰리즘의 성격이었기 때문에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벤트성 현장방문은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대중에게 그 어떠한 감흥을 줄 수 없다. 그래서 일반대중들은 중도실용을 전혀 체감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이러한 본질을 전혀 꿰뚫지 못하고 오히려 MB의 지지율에 탄력을 받아 오만하고 위압적인 자세로 선거에 참여했던 것이다. 또한 MB의 지지율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법칙을 망각했다. 아마 한나라당이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친서민적인 선거 전술을 구사했으면 선거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
MB지지율의 착시현상과 함정
문제는 MB의 지지율 상승이 착시효과와 조작된 욕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용은 없고 인기영합적인 중도실용·친서민 행보, MB의 일방주의 포기, 호전된 경제지표, 정치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국민들의 피로증후군, 대안 부재 등이 지지율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자본가들이 소비자들에게 상업적 기획을 통해 소비욕망을 조작하여 상품을 판매하는 것처럼, 정치지도자들도 스타일, 이미지, 심리학을 통해 적극적으로 국민들의 욕망에 개입하여 동의하게 만든다. 이미지가 개인들에게 강요되어 이미지 속에서 사람들을 자신의 세계로 끌고 간다. 그런 측면에서 지지율은 상품화에 의해서 조작되거나 연출된 것이다.
부자대통령이나 경제대통령이 등장하면 괜히 부자가 되거나 경제가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을 갖는 것처럼, 국민들은 대통령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은 이미지로서만 경험되기 때문에 이미지로서 충족되는 만족은 허구적이다. 그것은 조작되고 왜곡된 것이며 이미지를 통해서만 존재하지 실재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MB의 국정운영지지도가 44.6%를 기록해도, ‘친서민 정책이 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82.3%)는 상반된 평가를 보여주고 있다(경향신문, 10월 6일 여론조사). 이 같은 이중성은 국정운영·경제에 대한 ‘기대감’과 현실적 ‘체감’ 사이의 간극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떠한 형식의 여론조사도 무한 신뢰를 보내서는 안 된다.
이번 선거 결과 MB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 징후를 광범위하게 확인했지만 MB의 행보가 달라질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결과적으로 2석에 대해서 MB가 대수롭지 않게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어느 누구의 승리도 패배도 아닌 것이다. 심히 우려가 되는 부분은 MB와 청와대가 지지율의 덫에 걸려 일방주의를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 밀어붙이기 등 그런 징후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조심해라 그러다 한방에 훅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