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해양부의 정책설명에 따르면, ‘보행문화 개선 추진계획에 따라 우측보행 원칙이 정착되면, 보행자 교통사고 감소(20%), 심리적 부담 감소(13~18%), 보행속도 증가(1.2~1.7배), 충돌 횟수 감소(7~24%), 보행밀도 감소(19~58%) 등 긍정적 효과로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한다.
느리게 살면 안돼?
어라? 사고율을 낮추기 위해서? 정말? 선진국이 하면 무조건 따라해야해? 국토해양부의 설명을 나의 생활에 적용하고 싶었지만 개인적으로 우측보행이라는 걸 접했을 때, 심리적 부담은 증가되고 보행속도는 느려지더라. 허허. (사람이 붐비는 장소에서는 걸어보지 못했음^^;;) 그리고 왼손잡이는 어쩌라고?
게다가 굳이 보행속도를 빠르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느리게 살자는 이야기를 한 쪽에서는 해대면서 보행속도를 높이라는 것은 얼마나 모순인가.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도 되는 세상이며, 그래도 되는 회사의 업무량이면 굳이 걷는 방향까지 규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혼란과 사회적 비용을 가중시키는 정책
좌측통행을 하라고 수십 년간 얘기했을 때도 그렇게 지켜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바꾼다고 쉽게 통일될까. 과연 이 새로운 원칙이 정착하기까지 더 많은 혼란을 감수하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우측보행’에 걸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빨리 가는 사람을 위한다며 에스컬레이터 한 줄 타기를 권장하다가,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 다시 두 줄로 타라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사고율이라는 것이 이 보행방향을 규정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을까 싶다. 정부가 내놓는 그런 원칙들이 오히려 사람들의 안전에 혼란을 가중시키지는 않을까.
혼란스럽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좌측보행을 해왔는데 새삼 우측보행이라니. 왠지 자연스럽게 ‘좌측’으로 걷고 있는 나의 발길이 편하지 않다. 하긴 평소에 좌측이니 우측이니를 따져가며 걷지도 않는다. 내가 걸어가야 할 방향을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기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내가 편한 데로 걸으면 그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을 배려하며 타인과 충돌하지 않게끔 조절해가며 걸으면 될 텐데. 좌측이든 우측이든 굳이 그런 규칙을 정할 필요가 있을까.
걷는 것까지 통일하라고?
좀 더 삐뚤게 생각해보면, 걷는 것까지 통일하려는 발상 자체가 나의 생활에 군대문화와 전체주의를 침투시키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 왜 걸음마저 제약받아야 하는 것인지, 사람들은 모두 한 방향으로만 걸어야 하는 거냐고……. 이런 ‘그들의 원칙’들은 사람들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고려하지 않는 건 아닌가 싶다.
또한 정부는 규범을 만들려할 때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 굳이 규범이 없어도 되는 것이라면 규범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자율성 속에서 만들어진 규범과 공동체 문화가 더 생명력 있다. 개인의 생활양식이나 규범은 외부에서 생산하여 강제하려 하면 안 된다. 더구나 삶의 방식만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행위까지 통일하려 하면 자율성을 사라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안전과 질서라는 허울 속에 사람들을 하나의 잣대로, 하나의 틀로 묶어나가려는 걸 제발 그만두길 바란다. 나라가 만들어내는 규범들은 사람들의 일상과 사고 속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아, 나는 자유롭고 싶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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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